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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매킨리 등정 때 크레바스 빠져 죽을 고비 넘겨… 마라톤 풀코스 70여회 완주 - 마운틴
매킨리 등정 때 크레바스 빠져 죽을 고비 넘겨… 마라톤 풀코스 70여회 완주


아시아 최초 7대륙 정상 최고령 등정(2006년 10월), 아시아 두 번째 마라톤 그랜드슬램(2009년 1월),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 등정자가 동시에 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세계 4번째 세계 50개 독립봉 중 29개 등정(2013년 10월 현재). <자세한 내용은 전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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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 최고봉 스텐리 정상에서. 마가릿다라고도 한다.

이런 놀라운 기록들을 가지고 있는 그가 왜, 언제부터, 어떻게 산에 오르고, 시작하게 됐는지, 마라톤은 또 어떻게 입문했고, 기록들은 언제까지 계속 될는지, 궁금한 게 너무 많다. 미국엔 왜 가게 됐는지, 기록을 하나씩 이뤄가면서 심정은 어떠했는지,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있을 것 같아 그를 직접 만나 들어봤다.


보통 사람이 이 정도 기록을 가지려면 특별한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그를 직접 만나보니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인상에 체격도 평범했다. 외면상으로 일단 특출한 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면 내공이 엄청나다는 얘기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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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최고봉 케린치 정상에서.

그는 산도 1995년 즈음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그 이전엔 산과의 인연이 전혀 없었다. 이북 출신인 그가 아버지와 생이별하고 어머니와 함께 피난 와서 정착한 곳이 서울이었다. 서울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뒤 취직하고 미국 국제경영대학원 다니면서 이민을 결심했다. 미국에서 은행을 창립하고, 의류업을 하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찾은 게 산이었다. 사업이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LA 근교의 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산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에 갔어도 한국은 수시로 찾았다. 친구들을 만나고 소식도 주고받았다. 당시 서울에서는 서울고 총동문산악회가 창립된 지 몇 년 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동문들이 산을 중심으로 많이 모이던 터였다. 그 때 그는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19시간 걸려 지리산 종주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회포를 풀면서 우리의 산하를 만끽했다. LA에서도 재미 한인산악회 회장을 맡으면서 본격 산에 취미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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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마라톤에 출전해서 완주 직전의 모습.

50대 초반 뒤늦게 불기 시작한 취미생활은 활활 타올랐다. 어떤 목적에 의해서 보다는 단순히 산에 오르는 게 좋아 세계의 산을 뒷산 삼아 올랐다. 킬리만자로, 아콩카과, 엘 브루스 등을 오를 때까지는 그랬다. 2002년 매킨리를 오르고 나서부터는 조금 욕심이 생겼다. ‘아! 나도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킨리에서 원체 고생을, 아니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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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씨가 여태 그가 겪었던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산악부 출신도 아니다. 중․고교 시절 아이스하키 운동을 한 게 전부였다. 암벽․빙벽이라곤 전혀 몰랐다. 암벽․빙벽을 즐기기 위해 하지도 않았다. 고산에 갈려니 필요해서 했을 뿐이었다. 전문가 수준도 아니다. 그런 그가 2002년 한국에서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환호성에 뒤덮여 있을 때 가이드 두 명과 매킨리를 등정한 뒤 설원을 하산하고 있을 때였다.


가이드 포함 4명이 팀로프(등반 용어로는 안자일렌, Anseilen․등반할 때 여러 명이 안전을 위하여 서로의 몸을 로프로 묶는 행위)로 묶고 조심조심 걷고 있었다. 눈이 녹아 꺼지는지 확인하면서 피해갔다는 싶었는데, “퍽” 하는 순간 순식간에 2명이 크레바스로 내려앉았다. 배낭이 55파운드(약 27㎏), 썰매가 15㎏ 정도로 두 사람의 몸무게에 더욱 무게를 더했다. 밑은 시꺼멓게 끝이 보이질 않았고, 고함을 쳐도 메아리가 없을 정도였다. 배낭과 썰매, 스노우슈즈의 무게 때문에 자력으로는 올라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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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최고봉 아라랏다 정상에서.

‘아,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여태 지나온 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무게 때문에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위에서는 엑스트라 로프로 걸치고 최대한 지탱했다. 잡아 당겼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단 배낭을 벗어 버리고 무게를 가벼이 했다. 스노우슈즈도 벗었다.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다. 위에서 잡아당기는 로프도 움직였다. 짐이 될만한 건 모두 버렸다. 위에서 로프를 당기고 밑에서는 최대한 무게를 줄여 침작하게 올라왔다. 2시간 반 동안의 사투 끝에 모두 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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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최고봉 다나만드 정상에서.

당시 위에 있던 가이드는 그에게 “그런 크레바스는 처음 보는데, 빠진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침작하느냐”하며 놀래더라는 거였다. 그는 “아마 앞에 있던 친구가 제동을 걸지 않았다면 벌써 저 세상에 가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힘들게 매킨리를 하고 난 뒤 세계 최정상 에베레스트 등정 욕심이 생겼다. 산에 대한 욕심은 이 때가 거의 처음이었다. 등산이 아니고 등정을 하려면 기술도 필요하지만 우선 체력이었다. 그래서 마라톤을 시작했다. 1998년쯤 친구가 암에 걸려 체력을 다지기 위해 같이 뛰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각 대륙 마라톤에 참가해서 완주하는 목표조차 세우지 않을 정도였다. 그냥 참가하는데 의미를 둘뿐이었다. 열심히 뛰고 올랐다. 매킨리 등정 이후 에베레스트 등정 욕심이 생겼을 때는 체력훈련을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다. 고소적응을 위해 멕시코 5500m 이상 고산지대를 집중적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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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최고봉 세머루 정상에서.

그런 과정을 겪고 난 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세계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돼 있었고, 동양인 두 번째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룬 상태였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지금까지 70여회쯤 된다. 1년에 최소 5회는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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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씨가 2007년 북극 마라톤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출발 직전에 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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