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무려 4,500㎞에 달하는 로키(Rocky Mountains)에서 캐나다에 있는 부분만 ‘캐나디언 로키(Canadian Rocky Mountains)’라고 칭한다. 거기에 있는 재스퍼, 밴프, 요호, 쿠트네이 등 4개의 국립공원과 햄버, 아시니보인, 롭슨 등 3개의 주립공원에 수백 여 개의 트레일 코스가 있다. 특히 요호, 재스퍼, 밴프 3개 국립공원에만 모두 260여개 코스에 총 1만여㎞의 트레일 코스가 있다고 현지 가이드는 전한다.
매년 전 세계에서 1천 만 명 이상의 트레커가 찾는 캐나디안 로키 3개 코스를 안내한다.
◆볼드힐 트레일(Bald Hill Trail)
재스퍼국립공원은 밴프의 북쪽에 있으며, 차로 약 3시간 걸린다. 재스퍼(Jasper)는 ‘푸른 옥’을 뜻한다. 재스퍼는 캐나다 대륙 철도 건설 당시 소규모로 형성된 도시가 로키 탐험가와 모피업자들이 이곳을 왕래하면서 정착한 이후 커졌다. 1907년 재스퍼와 그 주변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밴프와 함께 캐나디언로키의 관광기점으로 성장했다. 천혜의 휴양지로 자리 잡아 연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스퍼 시내에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볼드힐트레일 출발지점인 멀린 호수(Maligne Lake)에 도착한다. 멀린 호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빙하호수다. 이름답지 않게 캐나디언 로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중의 하나로 투명한 물을 자랑한다. 멀린이란 이름은 이곳의 첫 방문자인 메리 샤퍼(Mary Schaffer)가 방문기념으로 파티할 장소를 뗏목으로 찾다가 도저히 넓어서 찾을 수 없어 ‘나쁜(Maligne) 호수’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어이없는 이름의 유래가 아닐 수 없다.
멀린 호수는 실제로는 잔잔하고 고요하기 그지없다. 그 배경으로 있는 설산 봉우리들과 잘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출발지점에 티하우스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트레킹 준비를 이곳에서 한다. 이 호수에는 한때 송어가 서식했지만 물이 너무 차가워 지금은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한다. 출발지점을 GPS로 확인하니 고도 1,614m. 한국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산 높이다. 볼드힐을 향해서 출발이다. 볼드힐을 우리 말로 하면 ‘대머리 언덕’이나 ‘대머리 고개’쯤 되겠다.
출발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쭉쭉 뻗은 전나무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트레일엔 햇빛을 가려주지 않을 정도로 넓은 임도 같은 길로 간다. 길이 제법 넓다. 이곳엔 의외로 소나무가 많다. 마치 한국의 어느 등산로를 걷는 기분이다. 하지만 공기 감촉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다. 외국 트레커들도 어디를 가든 만난다.
갈림길이 나온다. 숏코스와 롱코스로 나뉜다. 조금 가파르지만 숏코스로 질러 올라간다. 나무들은 관목으로 변한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그런지, 고도가 점점 높아져서 그런지, 나무들이 전부 무릎 높이보다 조금 더 큰 정도다.
멀린호수와 만년설 어울린 경관은 환상적
나무뿌리가 드러난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오른다.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다. 고도는 높지만 제법 덮다. 조금 전 갈림길이 1,919m로 나왔으니 이제 해발 2,000m를 넘는다. 관목이 많아 마치 한라산을 오르는 분위기다.
맞은 편에 보이는 만년설 봉우리들이 깎아지른 듯 하늘을 향했고, 그 아래 멀린 호수가 푸른빛을 내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고도를 높일수록 수목은 적어지고 돌과 눈이 많아진다.
마지막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 능선 위에 올라선다. 전망대(View Point)다. 사방이 확 트인다. 정상이 저만치 보인다. 완만한 능선으로 약 1㎞ 더 가야한다. 정상을 향해서 다시 발걸음을 하나씩 옮긴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나무는 없고 돌뿐이다. 이름 그대로 볼드힐이다. 정상 바위는 마치 인디안 추장의 옆 얼굴을 닮은 듯하다. 인디언 추장이 저 멀리 바라다보고 있는 형상이다.
정상에 올라앉아 인증샷으로 확인한다. GPS는 고도를 2,311m를 가리킨다. 정상 주변 능선길에서 바라보는 멀린호수의 경관은 “역시 로키!”를 연신 나오게 한다. 정말 로키는 로키다.
이 코스는 나름 소나무와 어울린 전나무, 그리고 목본과 잘 어우러진 관목이 트레일 주위를 감싸고 있으며, 저 멀리 멀린호수와 만년설 등의 경관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능선 위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만발해 있다. 마치 산상화원을 가꿔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정상 주변은 이름 그대로 대머리 같이 퍼석퍼석한 돌 지대의 연속이다. 몇 만 년 전에 화산석이 변한 것 같다. 올라가면서 수목한계선을 확인할 수 있다. ‘볼드힐’ 나름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편도는 7.1㎞, 중간에 질러오는 길이 있어 갔던 길로 그대로 왔지만 왕복은 14,1㎞다. 오전 9시15분 출발해서 오후 3시55분에 돌아왔다.
◆요호 패스 트레일(Yoho Pass Trail)
트레일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트레일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요호국립공원에 있다. 이 트레일은 에메랄드호수와 요호호수를 둘러보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요호호수에서 능선을 넘어가면 캐나다에서 제일 큰 타카카와폭포로 연결된다. 에메랄드호수 순환코스는 5.3㎞에 이르지만 요호호수까지 트레킹 하기로 한다. 요호호수는 의미 있는 곳이다. 도착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겠다.
트레킹 출발지점은 에메랄드호수 주차장이다. 이곳에서 역시 로지(Lodge)와 티하우스가 있다. 캐나다에 있는 빙하호수는 모두 200여만 개 정도 된다. 전부 제각각의 색깔을 띠고 있다. 호수를 볼 때마다 신기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이다. 어떻게 호수 빛깔이 모두 이렇게 다를까? 그 해답은 빛의 굴절에 있다. 빙하에서 내려온 물은 암석과 자갈, 토사로 형성돼 있다. 토사는 호수의 바닥, 즉 얼음층 밑에 남게 되고, 미세한 돌조각들만 물 위로 떠다닌다. 이 ‘암석 가루(rock flour)’가 빛에 의해 굴절되고 반사되면서 그 양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연의 신비한 현상인 셈이다.
에메랄드호수 주변엔 역시 방문객들이 많다. 루이스호수만큼은 아니지만. 에메랄드호수는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이 여러 지류를 거쳐 에메랄드호수로 합쳐지고, 에메랄드강을 이뤄 흘러가는 원천이 된다. 빙하의 퇴적층으로 호수가 형성됐다. 에메랄드호수 주변엔 크고 작은 호수가 특히 많다.
에메랄드호수는 고도 1,313m. 그래도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 낮은 편이다. 호수를 끼고 왼편으로 들어선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만년설 봉우리를 배경으로 동화 속에 나오는 듯한 숲과 호수, 그리고 호수에 비치는 에메랄드빛은 마치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숲을 지나자 호수로 들어가는 빙하물이 그대로 노천으로 흐른다. 자갈지대다. 물은 넘쳐흐른다. 자갈지대를 지나 서서히 고도를 올리자 여태 봤던 침엽수림과는 조금 다른 활엽수림이 넓게 펼쳐진다. 하긴 캐나다 국기가 메이플맆(Maple Leaf․단풍잎)이니, 드디어 활엽수가 나오는구나 싶다. 침엽수에서는 아름다운 단풍을 보기 힘들다. 이곳에서는 가을 되면 단풍도 볼만 하겠다.
빙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또 폭포를 이루고 있다. 로키에서는 어딜 가나 폭포와 호수다. 폭포는 계곡을 만들어 여러 지류를 합쳐 흐르게 한다. 만년설로 뒤덮인 암석 봉우리들은 우뚝 솟아 있지만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이 보여주는 위압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한국의 봉우리들이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분위기와는 또 다르다. 로키만의 특색을 분명 가지고 있다.
능선 위로 올라섰다. 트레일 주변엔 아직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눈 위에는 곰의 배설물도 보인다. 가이드는 곰이 얼마 전에 지나간 것 같으니 무리를 지어 움직이라고 주의를 준다. 곰은 사람 말소리와 호각소리에 예민하게 반응, 미리 거리를 둔다고 한다. 눈 위의 고목에 커다란 영지버섯이 자라고 있다. 한국 같으면 벌써 없어졌을 텐데. 기념사진으로 담는다.
이윽고 요호패스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패스는 우리 말로 고갯길 정도 되겠다. ‘요호레이크는 0.7㎞’, ‘타카카와폭포 4.8㎞’, 출발한 ‘에메랄드호수는 7.3㎞’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요호호수까지 가는 팀과 버제스패스까지 갔다가 하산하는 팀들로 나뉜다. 당연히 요호호수 방향이다.
요호호수는 캐나다알파인클럽의 시원지이기도 한 곳이다. 이곳에서 엘리자베스 파커와 휠러가 1906년 첫 캠프를 열고 캐나다알파인클럽을 창시했다. 당시 미국과 영국, 남아공 등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와서 역사적인 캠프에 동참했다. 그들은 자연보호운동인 내셔널트러스트 선서를 이곳에서 했다. 로키에서도 요호호수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1,819m 높이에 있는 호수는 크지는 않지만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다. 주변은 캠핑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있다.
하산길은 왔던 길로 내려가다가 에메랄드호수에서 순환코스로 올라갔던 방향을 이어받아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올라갈 때는 1.6㎞였지만 내려갈 때는 3.5㎞다.
근데 이 길이 장난 아니다. 여태 본 숲길 중에서 가장 태고적 원시의 모습 그대로다. 아름드리나무와 그 나무에 기생해서 자라는 이끼류…. 숲의 연령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눈이 휘둥그레지게 할 정도로 너무 아름답다.
마침 호수에서 놀고 있는 남녀 한 쌍이 있다. 흘러내릴 듯한 비키니를 입고 그 차가운 호수에 뛰어든다. 젊음의 낭만이 철철 넘쳐흐르는 부러운 장면이다. 물에 나와서는 추워서 덜덜 떠는 모습도 보여준다.
동화 속에서나 봄직한 에메랄드레이크 로지가 나온다. 그게 이 트레일의 끝이다. 원점회귀 15.9㎞.
◆에펠레이크~웬쳄나 트레일(Eiffel Lake~Wenkchemna Pass Trail)
밴프국립공원에 있는 모레인호수에서 출발한다. 모레인은 빙하에 의해 운반․퇴적되는 물질의 집합체를 총칭하는 것으로, 모레인호수는 이들이 밀려와 만든 호수를 말한다. 빙하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레인 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모레인호수에서는 고사목과 바위들이 주변에 많이 흩어져 있다. 그 뒤로는 10개의 봉우리(Valley of the Ten Peaks)에 둘러싸여 있고, 에메랄드빛 물빛에 10개의 봉우리가 그대로 반사된다. 한때 캐나다 20달리 지폐를 장식하기도 한 호수다. 모레인호수도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호수의 색깔이 변한다고 이정표에서 설명하고 있다.
출발지점은 모레인호수 주차장. 고도가 1,887m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10개의 봉우리는 모두 하얀 빙하인 웬쳄나(Wenkchemna)를 뒤집어쓰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출발 이정표에는 가장 쉬운 하이킹 코스라고 소개하고 있다. 고도는 높은 편이지만 트레일은 걷기에 딱 좋다. 호숫가 주위의 나무들을 누비듯 지나간다.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2,000m는 이미 넘었다.
숲길은 길을 잃을 우려도 없을 정도로, 안내판이 목적지까지 명확하게 안내한다. 로키의 다람쥐가 나와서 반겨준다. 고사목 위에 두 다리로 서서 사람들을 빤히 쳐다본다. 도망갈 생각을 안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신기한 모습을 렌즈에 담기 바쁘다.
중간중간에 쉼터도 마련돼 있다. 모레인호수를 사이에 두고 웬참나 빙하지대를 건넌 편에 마주보며 걷는다. 웬쳄나 빙하의 최고봉은 델타폼산(Deltaform․3,424m)이다. 마침 웬참나 빙하 봉우리에서 빙하가 쏟아져 내린다. 날씨가 너무 풀려서 그런지 눈사태라기보다는 빙하사태가 발생했다.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마치 천둥치는 것과 같이 들린다.
또 눈 위로 걷는다. 7월에 정말 한 없이 눈 위를 걸어본다. 7월에 언제 이렇게 눈 위를 걸어보겠나. 조그만 호수가 나타난다. 그 옆이 와스타시(Wastach) 패스다. 와스타시 고갯길인 셈이다. 웬쳄나패스가 저 만치 보인다. 하지만 와스타시패스 이후부터는 완전 눈으로 덮여 있다. 일종의 빙하지대다. 와스타시패스가 GPS로 고도 2,301m다. 이후는 위험해서 이곳에서 끝내기로 한다. 하산길은 왔던 길로 그대로 돌아간다. 편도 6.1㎞, 왕복 12.2㎞. 비교적 수월하게 끝난 트레킹이다.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쉬운 코스였다. 오전 9시40분 출발해서 오후 2시 45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