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고 최대 저수지 ‘벽골제’, 그 규모에 감탄… 당시 어떻게 축조했을까?

우리나라의 최고(最古), 최대(最大) 저수지, 김제 벽골제(碧骨堤). 한반도 고대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농업 관개용 시설이다.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와 함께 한반도 3대 저수지로 꼽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상주 공림지를 포함해서 4대 저수지라고도 한다. 모두 삼국시대 때 축조된 저수지들이다.

벽골제는 그 규모면에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삼국사기>에는 ‘길이를 안(岸) 1,800보’라 하고 있고, <태종실록>에는 ‘장(長) 7,196척’, <동국여지승람>에는 ‘제지장(堤之長) 60,843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수치들을 오늘날의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삼국사기>는 약 3,245m, <태종실록>은 3,362m다. 이를 지난 1975년 유적발굴을 하면서 제방길이를 실측한 결과 약 3,300여m로 확인됐다. 제방길이만 3㎞ 이상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저수지다. 저수지 둘레만 40㎞에 이르는 것으로 전한다. 서울시 직경이 40㎞정도 되는데 비하면 정말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저수지 총 면적은 37㎢, 즉 1,120만 평에 달한다고 한다. 사적 제111호로 지정됐다.

벽골제 제방 위에 서서 지평선 연날리기 기네스북에 도전하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벽골제 제방 위에 서서 지평선 연날리기 기네스북에 도전하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아무리 평야지대라고 하지만 삼국시대에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저수지가 필요했을까? 어떻게 축조했으며, 인부는 얼마나 동원됐을까? 궁금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주변 산수지형을 얼핏 살펴보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김제시를 둘러싸고 동북부로는 만경강이 흐르고, 남서로는 동진강과 원평천이 서해로 흐른다. 김제시는 강에 포위된 지형이다. 만경강을 경계로 해서 완주군과 익산시, 군산시 등이 접해 있고, 동진강을 수계로 해서 정읍시와 부안군을 경계로 한다. 서쪽에는 서해바다가 김제시를 막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김제시에는 원평천, 두월천, 신평천, 부용천 등이 강 사이사이로 흐른다. 그 발원은 전부 모악산과 상두산이다. 요약하면 김제시는 동쪽에 있는 모악산에서 발원한 물이 남쪽 동진강과 북쪽 만경강으로 흘러들어 서해 바다에서 합류한다. 그리고 강 사이에 있는 김제시는 동쪽을 제외하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의 평야가 펼쳐져 있다. 지평선의 끝이 수평선의 시작점이 된다. 바로 그곳이 김제다. 강물이 범람하는 끝없이 펼쳐진 너른 평야는 말 그대로 곡창지대가 아닐 수 없다. 그 곡창지대에 물을 대려면 엄청난 규모의 저수지가 필요했으리라.

현재까지 남아 있는 김제 벽골제의 5개의 수문 중의 하나를 보기 위해 가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김제 벽골제의 5개의 수문 중의 하나를 보기 위해 가고 있다.

벽골제는 백제 제11대 비류왕 27년(330)에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의 방죽으로 쌓으려면 단순한 기술로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당한 기술의 토목건축술이 필요했을 성 싶다. 김제시에서 농경사회를 대표하는 동양 최고 최대의 저수지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위해 유적발굴을 하는 도중 올 3월19일 제방 기저부에 흙을 채운 풀주머니인 초저를 이용한 공법을 사용한 흔적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당시에 이런 기술을 사용한 제방은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다. 

벽골제 방조제 규모를 보면 당시 저수지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벽골제 방조제 규모를 보면 당시 저수지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동국여지승람>에 벽골제중수비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군의 남쪽 15리쯤 큰 둑이 있는데, 그 이름은 벽골(碧骨)이다. 이는 옛 사람이 김제의 옛 이름을 들어서 이름을 붙인 것인데, 군도 역시 이 둑을 쌓게 됨으로 말미암아 지금의 이름으로 고친 것이다. 다섯 개의 도랑을 파서 논에 물을 대는데, 논은 무릇 9천8백40결 95복이라 고적(古籍)에 적혀 있다. (물을 대는 도랑은 5개가 있다) 그 첫째 도랑을 수여거(水餘渠)라고 하는데, 한 줄기 물이 만경현의 남쪽에 이른다. 둘째 도랑을 장생거(長生渠)라고 하는데, 두 줄기 물이 만경현의 서쪽 윤부(潤富)의 근원에 이른다. 셋째 도랑을 중심거(中心渠)라고 하는데, 한 줄기의 물이 고부(高阜)의 북쪽 부령의 동쪽에 이른다. 넷째 도랑을 경장거(經藏渠)라 하고, 다섯째 도랑을 유통거(流通渠)라고 하는데, 둘 다 한 줄기 물이 인의현의 서쪽으로 흘러 들어간다. 다섯 도랑이 물을 대는 땅은 모두 비옥하였는데, 이 둑은 신라와 백제로부터 백성에게 이익을 주었다.’

이 같은 기록으로 볼 때 저수지에서 5개의 수문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물을 댄 사실을 알 수 있다.

벽골제 제방을 쌓을 때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청룡과 백룡의 모형이 파란 하늘에 피어오른 뭉게구름과 잘 어울린다. 이 모형을 살려 지평선 축제 때 쌍용놀이를 한다. 사진 김제시청 제공

벽골제 제방을 쌓을 때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청룡과 백룡의 모형이 파란 하늘에 피어오른 뭉게구름과 잘 어울린다. 이 모형을 살려 지평선 축제 때 쌍용놀이를 한다. 사진 김제시청 제공

벽골제 제방을 쌓는데 연인원 32만여 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농경사회의 치수(治水)를 위해서 가히 국가단위 사업을 펼친 것이다.

벽골제라는 이름의 유래도 축조와 관련이 있다. 벽골제를 쌓을 때만 하더라도 서해 바다의 조수가 이곳까지 밀려왔다고 한다. 공사 도중 매번 조수가 밀려와 그동안의 제방을 망쳐놓곤 했다. 어느 날 공사 감독의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 벽골, 즉 푸른뼈를 흙과 함께 섞어 제방을 쌓으면 공사가 무난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암시를 줬다. 그래서 뼈가 푸르다는 말뼈를 갈아 흙과 함께 섞어 쌓아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벽골제라는 이름도 거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실제로 말뼈에는 인 성분이 많아 푸른색을 띠며 아교와 같이 물질을 응축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벽골제 옆의 쌍룡이 밤에는 각각의 색을 발한다.

벽골제 옆의 쌍룡이 밤에는 각각의 색을 발한다.

또 다른 이름의 유래도 전한다. 백제가 이 지역을 통합하기 전 삼한시대의 김제 지역은 마한의 영토로서, 54개 소국 가운데 가장 넓은 벽비리국이었고, 마한이 백제에 병합된 뒤 벽골군(碧骨郡)이 됐다. 이 때의 지명을 그대로 벽골제로 사용했다고도 전한다. 

워낙 방대한 저수지다보니 이와 관련된 많은 일화와 지명이 전한다. 우선 주변 지명이 저수지와 관계있는 것부터 살펴보자. 벽골제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6㎞ 떨어진 정읍시 감곡면 오주리(五舟里)가 있다. 오주리에 배가 들어왔다 하여 속칭 ‘배들이’마을이라고 부른다. 또 10㎞ 떨어진 곳에 호락(湖落)마을이 있는데, 이는 호수가 떨어지는 곳이란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용지(龍池)마을은 용이 사는 연못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용문동(龍門洞)은 용이 드나든 동네라는 의미로 쓰였다.

벼가 익어가는 황금들녘 벽골제에서 10월1일부터 김제지평선축제가 열린다. 코스모스와 황금빛 벼, 그리고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린다. 사진 김제시청 제공

벼가 익어가는 황금들녘 벽골제에서 10월1일부터 김제지평선축제가 열린다. 코스모스와 황금빛 벼, 그리고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린다. 사진 김제시청 제공

그리고 농경문화 지역에는 항상 용과 관련된 전설이나 설화가 전한다. 용이 영물(靈物)이고, 마을에 풍요와 안정을 가져오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벽골제에는 단야루, 단야각, 단야로 등 단야낭자와 관련된 용의 설화가 민속놀이로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다. ‘단야의 설화’는 김제 태수의 딸인 단야가 벽골제 제방을 마구 무너뜨리는 청룡에게 제물로 바쳐져 벽골제와 백성들을 살려냈다는 내용이다. 단야가 희생됐다는 사실을 안 백성들은 청룡이 사는 곳에 배를 띄우고 단야의 넋을 위로했다. 또 그녀의 효심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단야각과 단야루를 세웠고, 단야의 영정을 모시게 됐다고 한다.

단야낭자의 설화는 지금 벽골제의 쌍용놀이로 전승되고 있다. 김제 원평천 용추에 살았던 제방을 지키려고 했던 착한 백룡과 제방을 무너뜨리려 했고 단야를 제물로 삼킨 악한 청룡이 서로 싸우는 놀이다. 일종의 농경문화의 대표적인 놀이문화이기도 하다.

한국 농경문화의 메카 벽골제엔 농사를 지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한국 농경문화의 메카 벽골제엔 농사를 지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김제시는 사라지는 이러한 농경문화의 특징과 민속놀이를 현대에 되살려 축제로 승화시켰다. 그게 바로 김제 지평선축제다. 끝이 없이 펼쳐진 광활한 평야, 즉 곡창지대를 개념화한 지평선이 축제 이름이다. 마을 단위로 전승되던 놀이문화를 1960년 음력 9월9일 김제 시민의 날로 지정해서 본격 향토축제를 시행했다. 이어 시에서 1991년 본격 위원회를 발족해서 1999년 축제로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10월1~5일까지 농경문화의 메카로 자부하는 벽골제에서 열린다.

축제는 농경문화를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문화축제, 광활한 평야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지평선 쌀을 알리는 쌀문화축제, 전통문화유적지를 답사하는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즐기는 문화관광축제, 볼거리․먹을거리․체험거리가 있는 생활문화축제, 최대의 곡창지대에서 파생된 조상들의 빛나는 얼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는 역사문화축제를 목표로 했다.

벽골제 입구

벽골제 입구

축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리 전통을 잊고 살아온 현대인들에게 몸속에 살아 꿈틀대는 농경DNA를 다시 끄집어 낸 듯 엄청난 사람들이 지평선축제를 찾았다. 5일간의 축제기간(초기엔 3일) 동안 방문하는 연인원이 100만 명이 넘을 정도다. 김제시는 연중 최고 대목이고, 도시 자체가 발 디딜 틈이 없다고 시민들은 말한다.

성과는 잇따라 나타났다. 2003년 한국대표 10대 우수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됐고, 2004년부터 2012년까지 8년 연속  문광부 지정 대한민국 최우수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고, 2011년엔 세계축제협회 평가 ‘세계축제도시’로 선정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어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2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돼, 축제를 치르고 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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