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진경산수화 발원한 늦가을 정취 남은 포항 내연산

포항을 대표하는 산인 내연산에 조성된 아름다운 숲길인 내연산숲길이 있다.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면서 포항의 속살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내연산은 겸제 정선이 청하 현감으로 있으면서 진경산수화를 그린 장소이기도 하다. 그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내연산 계곡을 이루고 있는 12폭포는 여느 산의 풍광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오죽하면 금강산에 빗대 소금강이라고 했겠나.

오전 보경사의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이면서 더없이 푸르고 높았다. 전날은 일본에 몰아친 태풍의 간접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 만에 청명한 하늘로 바뀌었다. 계곡엔 물이 철철 넘쳐흘렀다. 보경사 뒤로 내연산이 휘감고 있다. 예로부터 명산이라 불리던 산이고 아득하다.

내연산 관음폭포에서 연산폭포로 가는 구름다리 뒤로는 신선이 내려왔다는 비하대가 있다. 아래 관음굴에는 30여년 전만해도 수도승이 있었다고 한다. 관음굴 아래가 감로담이다.

내연산 관음폭포에서 연산폭포로 가는 구름다리 뒤로는 신선이 내려왔다는 비하대가 있다. 아래 관음굴에는 30여년 전만해도 수도승이 있었다고 한다. 관음굴 아래가 감로담이다.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2)에 창건한 고찰이다. 지명법사가 중국 유학 때 도인으로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외국의 침입을 막고 삼국을 통일하리라는 말을 들었다. 왕에게 이 사실을 고하자, 왕은 기뻐하며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 내연산 아래 있는 큰 못 속에 팔면경을 묻고 금당을 건립한 뒤 보경사를 명명했다고 전한다.

내연산은 군립공원이다. 아니, 보경사 군립공원이다. 내연산 전체가 군립공원 지역이 아니고 보경사 터만 군립공원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노송들이 길을 뒤덮고 햇빛을 가려줘 더욱 운치를 더한다. 여름에 어느 길보다 시원한 숲길이 되겠다. 동행한 정성진씨는 “내연산숲길은 봄에 신록이 파릇파릇하게 나올 때 물 소리 들으며 걸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며 추천했다. 물론 계곡 따라 조성했기 때문에 여름에도 좋고, 가을엔 낙엽을 밟으며 걷기 때문에 이 또한 운치 있다고 자랑한다. 겨울을 제외하고 다 좋다는 말이다. 실제로 주변을 살펴보면 겨울에도 노송과 어울린 눈과 계곡, 그리고 길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할 것 같다.

보경사 입구에 들어서면 길을 뒤덮은 노송이 제일 먼저 반긴다.

보경사 입구에 들어서면 길을 뒤덮은 노송이 제일 먼저 반긴다.

보경사를 지나자 본격 계곡 옆으로 물소리를 들으며 올라간다. 물소리가 매우 우렁차다. 바위도 굴러 내릴 것같이 흐른다. 계곡은 양쪽으로 능선을 끼고 있다. 한쪽은 내연산, 다른 쪽은 신구(천령)산이라고 한다.

길옆 바위 밑에 비석 두 개가 있다. ‘內延山山王大神之位(내연산산왕대신지위)’와 ‘故母堂神之位(고모당신지위)’라고 돼 있다. 내연산을 지키는 남녀 산신이라고 한다. 새로 세운지 얼마 안 되는 듯 새것이다.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다.

정씨는 “내연산숲길은 내연산의 자랑인 12폭포를 따라 조성했다. 폭포 8개를 길을 걸으면서 바로 볼 수 있고, 나머지 4개는 200~300m 걸어가면 된다, 그 중간쯤 내연산 풍광의 하이라이트인 연산폭포를 만난다. 겸제 정선이 2년여 청하 현감으로 있으면서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곳이다”고 했다. 진경산수화를 완성할 정도면 어느 정도의 풍경일까, 사뭇 궁금해진다.

포항시청 도시녹지과 정성진씨가 이정표를 보고 내연산숲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포항시청 도시녹지과 정성진씨가 이정표를 보고 내연산숲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능선 사이로 깊게 나 있는 계곡이 길게 뻗어 있다. 아직 단풍이 내연산까지는 남하하지 않았다. 계곡 초입부만 조금 물든 듯하다. 내연산의 첫 단풍은 이제부터 시작하지 싶다.

드디어 첫 폭포가 길옆으로 모습을 살짝 비춰준다. 두 개의 폭포가 나란히 흐르는 ‘상생폭포’다. 폭포이정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지금은 상생폭이란 명칭이 통용되고 있지만 ‘쌍둥이폭포’란 의미의 ‘쌍폭’이란 명칭이 오래 전부터 쓰였다. 1688년 5월에 내연산을 찾은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보면 현재의 상생폭포를 ‘사자쌍폭’이라 적고 있는데, 그 당시에도 쌍폭이란 명칭이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상생폭이라 한들, 쌍폭이라 한들 어떠리. 폭포의 모습은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한결같이 흐르고 있는데…. 괜히 인간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하는 듯하다.

내연산 쌍폭이 흐르고 있다.

내연산 쌍폭이 흐르고 있다.

상생폭의 남쪽 바위더미를 ‘기화대’라 하고, 폭포수가 이룬 못을 ‘기화담’이라 한다. 이곳은 옛날 시인묵객들이 기생과 더불어 가무음곡을 즐기다가 취한 기녀가 춤을 추다 실족하여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은 후로 명명됐다고 전한다.

길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더욱 반짝인다. 쉬어갈 때쯤 됐는지 쉼터가 나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대화를 하며, 간식도 나눠 먹고 있다.

상생폭에서 불과 100여m쯤 떨어진 곳에 폭포가 연이어 나온다. 보현폭포다. 보현암 아래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원래는 세 줄기로 낙하하던 폭포였기에 삼보폭이라 전해지나 언제부터, 왜 바뀌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내연산의 폭포는 수량이 풍부해 여름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 더위를 식힌다.

내연산의 폭포는 수량이 풍부해 여름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 더위를 식힌다.

폭포 옆으로 주상절리 같은 기암절벽도 계속 된다. 이어 물길이 세 갈래여서 삼보폭포(三洑瀑布) 모습도 보인다. 맞은편엔 해골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 오랜 침식으로 생긴 것 같으나 눈 같이 생긴 장소엔 사람 한 명 앉을만한 공간이 있다.

네 번째 폭포인 잠룡폭포가 암벽을 모습을 감추고 있다. 우렁차게 쏟아지는 물소리만 들린다. 잠룡폭포 아래는 거대한 암봉인 선일대(仙逸臺)를 낀 협곡이다. 여기에 용이 숨어 살다가 선일대를 휘감으면서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잠룡은 이곳에 아직 승천하지 못하고 숨어 있는 용이 있다는 의미다. 선일대는 신선이 학을 타고 비하대로 내려온 뒤 이곳에 올랐다가 선경에 취하여 내려오지 않았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선일대의 암벽은 마치 주상절리 같이 하늘로 쭉쭉 뻗어 있다. 용이 하늘로 올라가기 좋은 바위같다.

내연산숲길에 놓인 계곡을 건너는 구름다리가 두 개 있다. 그 구름다리를 일행이 지나고 있다.

내연산숲길에 놓인 계곡을 건너는 구름다리가 두 개 있다. 그 구름다리를 일행이 지나고 있다.

잠룡폭포부터 관음, 연산폭포까지 세 개의 폭포를 ‘내연삼용추’라고 한다. 겸재 정선이 청하 현감으로 있으면서 그린 명승 5점 중에 하나가 바로 ‘내연삼용추도 1, 2’다. 정선은 청하에서 총 5점의 명승을 남겼다. ‘청하성읍도’ ‘내연삼용추도1, 2’ ‘내연산폭포’ ‘고사의송관란도’ 등이 그것이다. 특히 ‘내연삼용추도’는 조선시대 회화로서는 보기 드문 대작으로 가히 진경산수의 본격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청하와 내연산은 겸재의 화력에서 기념비적 이정표가 되고, 특히 연산폭포 일대를 진경산수의 발현지로 본다.

잠룡폭포 바로 위에 바람을 맞지 않은 폭포란 의미의 ‘무풍폭포’, 경치가 너무 빼어나 관세음보살이 금방이라도 나타나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줄 것만 같은 ‘관음폭포’ 등이 잇달아 나타난다. 무풍폭포는 폭포의 규모가 작아 폭포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계(溪)’를 붙여 무풍계라고도 한다. 관음폭포도 조선 정시한의 <산중일기>에서는 ‘중폭’이라 했다. 상생폭포를 하폭, 연산폭포를 상폭이라 불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관음폭포는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비하대 아래 있다. 선녀들이 반해서 넋을 놓고 하늘로 올라가지 못할 만큼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내연산 폭포의 하이라이트인 연산폭포에 가기 전에 구름다리를 건너야 한다.

내연산 폭포의 하이라이트인 연산폭포에 가기 전에 구름다리를 건너야 한다.

관음폭포에는 또한 물이 쏟아져 내려오는 소(沼)를 감로담이라 하고, 감로담을 에워싸고 있는 해골 같은 바위를 관음굴이라 한다. 감로담은 한 방울만 마셔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 산 사람은 장수하고 죽은 자는 부활한다는 천상에서 이슬만 모아놓은 도리천의 감로수에 비유하여 이름 붙였다. 관음굴에서는 30여 년 전만 해도 수도하는 승려가 있었다 한다. 폭포 소리에 온갖 상념을 날려버리기 좋은 장소다.

이어 내연산의 하이라이트인 연산폭포. 이정표에는 ‘내연산 12폭포 중 가장 규모가 큰 폭포다. 내연산(內延山)에서 ‘내’자를 뺀 명칭이다. 정시한의 <산중일기>에서는 내연폭포라 했다’고 안내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산책하러 왔다가 연산폭포까지 보고 돌아간다. 정씨는 “여성들이 미니 스커트에 힐을 신고 여기까지 오는 경우가 가끔 눈에 띈다”며 “원체 경치가 좋으니 정신없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산폭포의 엄청난 수량이 마치 불을 뿜듯 쏟아지고 있다.

연산폭포의 엄청난 수량이 마치 불을 뿜듯 쏟아지고 있다.

관음폭포에서 구름다리를 건너 연산폭포로 간다. 들어서는 순간 엄청난 수량의 폭포가 쏟아진다. 전날 비가 내린 탓도 있지만 원래 물이 끊이질 않는 폭포라고 한다. 쏟아지는 물보라에 무지개까지 생길 정도다. 바로 그 옆 바위에 ‘鄭善(정선)’이라고 새긴 각자(刻字)가 있다. 연산폭포 바위벽에는 정선뿐만 아니라 많은 인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청하현감 21명과 흥해군수 6명, 경상도관찰사 11명 등 지방수령이 70%, 우담 정시한, 좌의정 이존수, 우의정 오명항, 영의정 조인영, 추사 김정희의 부친인 김노경, 좌․우의정을 두루 지낸 이은 등 대부분 18~19세기 인물들이다. 이는 조선 말에 이미 내연산은 전국에 명성을 얻은 명승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었던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관리들 외에 유일한 여자 이름이 있다. 기생으로서 관리와 함께 놀러와, 관리가 기념으로 이름을 새겨준 것으로 전해진다. 연산폭포와 관음폭포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쉬거나 간식을 먹는다. 그리고 돌아갈 사람과 계속 올라갈 사람이 나뉘는 지점이기도 한 곳이다.

내연산숲길은 계곡 옆 숲길로 내내 걸어간다. 걸으면서 들리는 건 물소리와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뿐이다.

내연산숲길은 계곡 옆 숲길로 내내 걸어간다. 걸으면서 들리는 건 물소리와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뿐이다.

관음폭포에서 급경사의 계단을 오르면 학소대와 비하대가 바로 옆에 있다. 그 사이로 길은 계속 된다. 조금 위로 올라갈수록 단풍이 서서히 물 드는 모습이 보인다. GPS로 확인하니 고도가 300여m쯤 된다.

앞에는 은폭포가 물을 흘러보내고 있다. 원래는 여성의 음부(陰部)를 닮았다 해서 ‘음폭포’였으나 상스럽다고 해서 은폭으로 고쳐 불렀다 한다. 또 다른 설은 용이 숨어 산다 하여 흔히 ‘숨은 용치’라고도 하는데, 이에 근거하여 은폭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자세히 쳐다보니 여성 음부와 닮은 듯도 하다.

계곡을 가르는 조그만 구름다리를 건넌다. 계곡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한다. 때로는 나무 데크 길로도 간다. 길이 계곡 따라 계속 되기 때문이다. 곧이어 복호1, 2폭포가 나온다. 호랑이가 곧잘 출몰하여 바위 위에서 엎드려 쉬고 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산은 높지 않지만 깊은 계곡이 있어, 옛날에는 호랑이가 충분히 출몰했을 만하다.

관음폭포 아래 감로담 옆으로 학사대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앉아 경치를 감상한다.

관음폭포 아래 감로담 옆으로 학사대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앉아 경치를 감상한다.

화전민이 살던 시명리로 가기 전 잘피잘골짜기에 접어든다. 그 위로는 마치 벼랑에서 실타래 같이 물을 풀어내리는 듯한 폭포가 하나 있다. 그 이름 실폭포. 실 같이 가늘기도 하다. 곧 이어 12폭포 중 마지막 시명폭포가 저 아래 있다. 골짜기 깊은 곳에 있어, 위험해서 접근하기 힘들다. 물소리만 듣고 그대로 간다.

시명리는 지금은 없어진 화전민터다. 이 깊은 골짜기에 40여 년 전 30여 가구나 살았다. 그 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돌담과 집터가 그 흔적을 대신한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불과 몇 십 년 전의 세월인데,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돌담 주변으로는 낙엽송이 군락을 이뤄 하늘 높이 자라고 있다. 속성수이기 때문에 화전민을 보내고 그 자리에는 전국적으로 일제히 낙엽송을 심었다.

폭포가 끝나면 전형적인 숲길이 나오고 곧이어 임도로 이어진다.

폭포가 끝나면 전형적인 숲길이 나오고 곧이어 임도로 이어진다.

내연산 향로봉으로 올라가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경북수목원까지는 6.6㎞ 남았다고 돼 있다. 이제 볼거리는 없다. 단지 숲길로 계속 걷기만 하면 된다. 계곡도 끝이 나고 임도로 연결된다. 마치 깊은 숲속 같다. 이 길은 이미 경북수목원 원내다. 

다시 이정표는 뒤로는 ‘보경사 8.2㎞’, 앞으로는 ‘경북수목원 4.6㎞’로 표시돼 있다. 산 넘고 물 건너 8.2㎞ 왔고, 그냥 앞으로 묵묵히 걷기만 하면 되는 길 4.6㎞다. 

내연산숲길, 걷기엔 참 좋다. 숲과 물과 폭포와 어우러진, 그리고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그린 빼어난 경치까지 감상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봄, 여름, 가을까지 다 걷기에 좋을 듯하다. 보경사에는 입장료를 받지만 경북수목원은 무료입장이다. 내연산 가는 길에 등산보다 숲길로 걷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내연산숲길의 시종점이 되는 경북수목원의 전경. 깊어가는 가을 분위기를 얼핏 느낄 수 있다.

내연산숲길의 시종점이 되는 경북수목원의 전경. 깊어가는 가을 분위기를 얼핏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순 없다. 일단 시․종점은 보경사와 경북수목원으로서 볼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시명리 화전민터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무미건조하다. 단순히 숲속을 걸을 뿐이다. 때로는 걷기만 하는 길도 필요하지만 왠지 아쉽다. 보경사에서 연산폭포까지의 경치에 취해 오다가 나머지 절반 가까이를 그냥 걸으려니 상대적으로 심심한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또 있다. 보경사까지는 접근성이 좋은 데, 경북수목원에서 보경사로 돌아오기가 영 불편하다. 대중교통도 원활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려면 교통비만 약 4만 원쯤 든다. 보경사에서 원점회귀하던지, 경북수목원에서 원점회귀 하는 코스를 따로 만들던지 하는,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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