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에 있는 ‘서양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가 독배 마시고 죽었던 그 감옥

공자, 예수, 석가와 함께 세계 4대 성인으로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서양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플라톤은 그의 수제자였다. 기원전 469~399년까지 살았으며,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는 그가 태어난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기원전 399년에 고소돼 사형을 당했다.

아버지는 조각가 소프로니코스였고, 어머니는산파 파이나레테였다. 부인은 악처로 유명한 크산티페. 늦은 나이에 철학적 사고관을 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리스토파네스와 아메이프시아스 등의 희곡에서 주인공으로도 등장했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500인회에서 활동했다.

 

아테네 신전 맞은 편 구석진 곳에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고소당해 독배를 마셨던 감옥이 2천년의 세월을 넘어 아직 그대로 보존돼 있다.

아테네 신전 맞은 편 구석진 곳에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고소당해 독배를 마셨던 감옥이 2천년의 세월을 넘어 아직 그대로 보존돼 있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철학적 대화를 많이 했다. 그는 확정된 진리를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대화를 했으며, 이를 통하여 듣는 사람은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했다. 이것을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라고 한다. 이처럼 무지를 깨달음으로써 철학의 참뜻에 다가가는 것이 소크라테스가 대화하는 자세였으며,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깨달음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불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그리스에서 가장 현명하며, 그 이유는 자신만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자처했다.

 

그를 추종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자 소크라테스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으며, 결국 아니토스에 의해 불경죄로 고발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독배를 마셔 사망했다. 기소 이유는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새로운 종교를 끌어들였다는 것이었다. 그의 변론과정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잘 드러나 있다. 흔히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져 있는 ‘악법도 법이다.’는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며, ‘너 자신을 알라’는 델피 신전에 새겨져 있던 말이었다.

 

한 서양 방문객이 소크라테스 감옥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한 서양 방문객이 소크라테스 감옥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죽기까지의 법정 변론 과정을 잘 묘사한 책이 <플라톤(Platon)>이다. 소크라테스 처형 후 몇 년에 걸쳐 씌어진 책으로 보여진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 소크라테스는 먼저 자기의 고발자들에는 두 부류가 있음을 진술한다. 즉 예전부터의 고발자는 불특정 다수인데,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하늘과 땅속의 것을 추구하고 근거 박약한 논리를 고집하는 등 필요없는 짓을 하며,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치고 있다고 중상한다. 그리고 새 고발자는 아뉴토스 일파에게 교사받은 멜레토스인데, 그는 소크라테스가 청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며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예전부터의 고발자에 대해선 자기는 허황된 자연학(自然學)을 연구한 적도 없으며, 다른 궤변론자들과 같이 많은 보수를 받고 교육한 적도 없다고 반론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미움받은 이유로서 델피의 신탁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무지의 자각’을 확실히 하는 것이 ‘신의 뜻에 따르는 것’임을 믿게 된 경위를 말한다. 그리고 새 고발자 멜레토스에 대해서는 대화를 통해 그의 무지와 모순을 지적한 후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복종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에게 복종할 것이다. 즉 나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결코 지(知)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감옥은 자연동굴로 이루어져 있으며, 외부에서 철창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감옥은 자연동굴로 이루어져 있으며, 외부에서 철창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30표라는 근소한 차로 유죄로 결정된다. 유죄 결정 후 형량을 결정하기 위해서 다시 피고인 소크라테스의 진술이 전개된다. 제2부에서 소크라테스는 애걸하기는커녕 자기는 국가적 귀인으로 대접 받아야 마땅하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형량을 표결에 부친 결과 그에게 사형이 언도된다. 여기부터 제3부에 들어가는데, 소크라테스는 유죄 투표를 한 사람들을 향하여 “여러분은 나의 죽음을 결정했지만, 내가 죽은 후 곧 당신들에게 징벌이 내릴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소크라테스 동상

소크라테스 동상

그러고서 무죄 투표를 한 사람들을 향해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반성하면서, 죽음의 의미에 관해 “선한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이나 죽은 후에나 악한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확신을 이야기한다. 본서는 단편이기는 하지만 소크라테스 자신의 치열하고도 경건한 철학 정신이 잘 묘사되어 있는 대화편으로서 객관적 삶의 태도와 정신의 일치가 철학함의 진정한 전형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True knowledge exists in knowing that you know nothing.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

 

The only good is knowledge and the only evil is ignorance.

유일한 선은 앎이요, 유일한 악은 무지이다.

Death may be the greatest of all human blessings.

죽음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축복 중 최고의 축복이다.

 

He is richest who is content with the least.

가장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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