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직원이 세계 7대륙 최고봉 14년 만에 등정 ‘쾌거’

전문 산악인도 하기 힘든 세계 7대륙 최고봉인 ‘세븐서밋(Seven Summit)’을 일반인인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등정하는 쾌거를 이뤘다. 직장생활과 해외 원정을 병행하면서 시작한지 정확히 14년 만이다. 그 주인공은 국립공원관리공단 덕유산사무소 자원보전과정으로 근무하는 손영조(49)씨.

지난 12월 초 마지막 오세아니아 최고봉 칼스텐츠(4,884m) 등정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아내와 첫 대화에서 아내가 ‘이젠 그만 할거지’라고 말을 하는데, 답을 못했습니다. 1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완성돼서 그런지, 더 이상 말을 못하겠더라구요. 7대륙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고 철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등산의 철학적 의미가 뭔지에 대해서 골몰히 생각중입니다. 다음 목표는 몇 가지 있지만 아직 아내한테 조차 얘기하지 않은 부분도 있어 섣불리 꺼내기가 그렇습니다. 명확한 것은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큰 애가 4살이고, 작은 애가 2살일 때 시작한 세븐서밋을 끝내고 나니 애들이 고2, 중3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2001년 유럽 최고봉인 엘부르즈(5,642m) 등정 당시 정상에 있는 나와 마지막 칼스텐츠 정상에 있는 나를 비교해보니 많이 늙었더군요. 자연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많이 변했더라고요. 마지막 등정 순간 환호성을 지르긴 했지만 오르고 안 오르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죽을 고비 넘기며 지나쳐온 과정이 마음 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게 더 큰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에베레스트 정상 직전 눈 쌓인 칼날 능선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다.

에베레스트 정상 직전 눈 쌓인 칼날 능선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다.

그가 이번 칼스텐츠 등정을 성공함으로써 2001년 엘부르즈를 시작으로, 2003년 남미 최고봉 아콩가구아(6,959m), 2004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 2006년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 2008년 아시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2011년 남극 최고봉 빈슨 메시프(4,895m) 정상을 모두 밟는 ‘세븐서밋’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국내에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한 전문 산악인은 세계 최초로 달성한 고 박영석 대장과 오은선, 허영호씨 몇 명 되지 않는다. 직장생활과 병행하면서 성공한 사람은 손씨가 처음이다.

 

그는 산에 가기 위해서 직장을 3번이나 옮길 정도로 산에 매력을 갖고 있었다. 지금 있는 직장, 즉 국립공원관리공단(이하 공단)이 산에 가기 가장 수월해서 눌러앉았다. 그가 애초부터 세븐서밋을 목표로 삼은 건 아니었다. 단순히 산을 좋아했고, 등산을 즐겼다. 산이 좋아서 조직한 산악회에서 암벽과 빙벽을 배웠다. 그가 직접 산악회를 창립해서 암벽훈련도 했다.

산의 매력과 마력은 그를 우연히 키나발루로 이끌었다. 그게 1999년. 혼자 배낭 메고 무작정 떠났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정상을 밟았다. 자신감이 생겼다. 이듬해에는 히말라야 고봉인 초오유를 등정했다. 이 때 목표가 생겼고, 세웠다. 초오유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앞으로 계획성 있는 등반을 하자며 ‘세븐서밋’의 대장정의 각오를 한다.

 

지난해 11월 말 세계 7대륙 마지막 등정지였던 칼스텐츠 정상에서 깃발을 들고 자축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세계 7대륙 마지막 등정지였던 칼스텐츠 정상에서 깃발을 들고 자축하고 있다.

2000년에 세운 목표를 2001년 엘부르즈로 ‘세븐서밋’의 첫 장도에 오른다. 그가 공단에 직장을 잡고 내려간 그의 고향 남원에서 그가 1995년 창립한 ‘큰바위산악회’ 회원들을 꼬드겼다. 유럽은 매우 이국적이며, 고기와 보드카를 많이 먹을 수 있으며, 저렴하게 특색 있는 등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동조한 2명의 회원이 그와 같이 나섰다.

그가 원정등반 갈 때마다 항상 경비가 문제였다. 손씨는 1995년부터 공단 상조회에서 500만월을 대출 받아 월급에서 의례히 월 30만원씩 빠져나간다. 여태 한 번 걸러본 적이 없다. 다 갚으면 자동갱신 한다. 그 비용만 지금까지 1억 원 가까이 된다. 이 돈은 그에게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븐서밋을 마친 지금도 그에게 빚은 4,500만 원 가량 남아 있다. 한동안 그 빚을 계속 갚아야 한다. 손씨도 “원정경비가 사실상 원정기간을 가늠 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고 했다. 비용과 기간 때문에 결정적 위험에 처해지는 상황도 맞는다.

손영조씨가 동료들과 함께 정글을 헤치며 칼스텐츠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손영조씨가 동료들과 함께 정글을 헤치며 칼스텐츠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다행히 엘부르즈 원정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 1인당 500만원이 채 넘지 않은 비용은 각자 부담하기로 했다. 그는 상조회에서 빌린 돈으로 대처했다. 그는 “상조회에서 빌린 돈은 빚으로 여기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다. 월 30만원의 돈은 등반비용으로 아예 내놨다는 말이다. 그는 옷을 사 입거나 밥을 먹을 때도 몇 만원이 나오면 비싸다고 더 싼 것을 찾지만 산에 가는 비용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한다. 산에 가려는 의지와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스스로 분석했다. 그는 “저질러놓고 보면 자연 해결되더라”고 말했다.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 정상 직전 설산을 헤치며 오르고 있다.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 정상 직전 설산을 헤치며 오르고 있다.

2004년 매킨리 등반 때 후배와 둘이서 가서 정확히 죽을 고비를 3번 넘겼다. 모두 원정기간과 비용 때문이었다. 그는 직장 관계상 경비도 문제였지만 원정기간을 길게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산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니 날씨가 좋을 때도 있지만 좋지 않을 때는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 정상에 도전해야 한다. 고산에서는 대부분 악천후의 연속이다. 여러 나라의 등반대들이 모여 있는 베이스캠프에서도 한 팀도 움직이질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짜는 다가오고 악천후는 계속되고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마침 루마니아팀이 “올라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같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동행한 후배는 이미 고소를 먹어 꼼짝 달싹도 못했다. 천생 혼자 갈 수밖에 없었다. 루마니아팀 두 명과 같이 나섰으나 이들도 몰아치는 눈보라에 도저히 갈 수 없다며 갈아가고 말았다. 결국 혼자 남았다. 계속 전진했다.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 정상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 깃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 정상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 깃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악천후 속에 가던 그는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매킨리 5,500m쯤에서 화이트아웃(White Out․강설과 산안개로 인해 시계가 주변이 하얀색으로 변해 원근감이 없어지는 현상, 시야상실이라고도 한다)에 걸린 것이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배낭을 깔고 앉아 마냥 기다렸다. 가족과 직장동료 등 갖가지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 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를 산으로 이끈 두 롤모델(Role Model)이 있었다. 한 명은 한국인 최초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산악인 고상돈과 일본인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자이자 세계적인 탐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 특히 우에무라가 쓴 책은 거의 다 읽었을 정도로 그를 닮고 싶었다. 그의 정신적 멘토였던 두 사람은 공히 매킨리 등반 도중 추락사했다. ‘아, 나도 매킨리에서 그들의 전철을 밟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무서웠다. 온갖 두려운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몇 시간을 기다리니 어느 덧 그렇게 퍼붓던 눈보라가 걷히고 구름이 서서히 물러갔다. 갑자기 하늘이 열렸다. 이럴 수가 없었다. 이건 하늘이, 아니 신이 내려준 가호다. 정신을 다시 추슬러 정상 재도전에 나섰다.

남미 최고봉 아콩가구아 정상을 향해 가는 중에 눈 위를 걷고 있다.

남미 최고봉 아콩가구아 정상을 향해 가는 중에 눈 위를 걷고 있다.

정상에 우뚝 섰을 때 반대편에 정상이 다시 보였다. 다른 쪽으로 온 것이었다. 다시 가야했다. 하지만 그 능선은 칼날 그 자체였다. 보통 칼날능선은 2인1조로 안자일렌(Anseilen․암벽이나 빙벽을 오를 때 추락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로프로 서로 몸을 묶고 등반하는 방법)해서 오르나 그에게는 혼자뿐이었다. 두 번째 위기였다. 안전확보해 줄 사람이 없었다. 또 두려움이 덜컥 나는 동시에 죽음이 떠올랐다. 그 때 다시 한 생각이 났다. ‘등반은 시작에서 끝날 때까지 두려움과 용기의 갈등관계다. 두려움이 갈등을 제압하는 순간 그 등반은 실패한다. 매순간 용기가 이길 수 있도록 자신을 독려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용기가 이긴다는 신념을 갖도록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었다. 피켈로 아이스바위를 찍으며 홀로 고군분투했다. 몇 시간을 그렇게 했는지 모른다.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직전 포터들과 함께 공단 깃발을 걸고 만세를 외치고 있다.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직전 포터들과 함께 공단 깃발을 걸고 만세를 외치고 있다.

마침내 무사히 매킨리 정상에 올랐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는 산에 가면 항상 1인4역을 한다. 비디오를 촬영하고, 사진을 찍고, 기록하고, 등반을 한다. 보통 원정대에서는 이를 각각 분담해서 기록하고 정리한다. 그에게는 분담할 경비조차 없었다. 그가 설치한 장비들을 내려오면서 회수하는 수고까지 스스로 해야 한다. 베이스캠프로 다시 돌아오니 외국대원들이 “정상등극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촬영한 비디오를 그대로 보여줬다. 모두들 박수치고 난리 났다.

일주일가량 원정기간을 단축해서 무사히 등정을 마치고 하산길이었다. 여기서 세 번째 위험에 처한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크레바스(Crevasse․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를 볼 수 없었다. 같이 온 후배랑 안자일렌 해서 운행했다. 후배는 고소를 먹은 상태라 귀가 멍멍했고 평소에도 귀가 조금 멀었다. 다행히 후배는 크레바스를 거치지 않고 무사히 지나갔다. 하지만 손씨는 크레바스에 빠졌다. 순식간이었다. 그는 빠지는 순간 재빠르게 피켈로 찍고 겨드랑이로 몸을 지탱했다. 배낭을 벗고 후배를 불렀으나 공허한 메아리만 들여올 뿐이었다. 마침 연결된 줄이 있어 썰매를 당겨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한 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기어서 올라왔다. 그는 “크레바스를 빠져나온 그 경험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할 뿐 아니라 영원히 잊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손영조씨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대한민국 국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손영조씨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대한민국 국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죽을 고비와 원정경비를 맞바꿔 무사히 앵커리지에 도착했다. 기상악화로 귀국하는 비행기가 5일 뒤에나 있었다. 체류하는 시간은 모두 비용과 관련된다. 그는 아는 선배에게 앵커리지에서 일을 달라고 부탁했다. 선배는 일당을 줄테니 뾰쪽한 지붕의 눈과 이끼를 제거하라고 했다. 눈이 쌓이지 않도록 만든 지붕은 사람이 아예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 기꺼이 나섰다. 클라이밍 장비로 줄을 묶고 벨트를 차고 올라가 물 세척으로 이끼를 깨끗이 제거했다. 4일 만에 지붕을 완전 리모델링했다. 헌집을 새집을 바꿔준 것이다. 여기저기서 해달라고 신청했지만 비행기 시간으로 귀국해야만 했다. 그 수입으로 원정경비를 상당부분 충당했다.

2006년 킬리만자로 갈 때도 혼자 가기 심심해서 친구를 꼬드겼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아느냐. 결코 어려운 산이 아니다. 전문기술 없어도 가능한 산이니 같이 가자.” 두 명이 넘어왔다. 별 비용부담 없이 이들과 무사히 마쳤다.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 정상에서 공단 깃발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 정상에서 공단 깃발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다음 목표는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 비용과 원정기간이 예사가 아니다. 2년 간 준비에 들어갔다. 남원 ‘큰바위산악회’ 회원 둘과 통영 ‘한아름산악회’ 1명이 동행하기로 했다. 에베레스트 등정허가 비용만 1인당 2,500만원 하는 등 원체 많은 경비를 해결하기 위해 전북도지사를 찾아갔다. 당시 전북의 역점사업이던 새만금사업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홍보하겠으니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일정액을 받았다. 또 당시 공단 상임감사(현 수원시장)였던 염태영 감사는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아 2년여의 준비 끝에 무사히 장도에 올랐다. 나머지 비용은 대원들 각자 비용으로 추렴했다. 비용 아끼느라 8,000m 이상에서만 사용할 산소통 2통만 들고 갔을 정도다. 그는 그것도 하나를 남겨 고생하는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그 자신도 “저는 고소에 강한 체질인가 봐요”라고 태연스럽게 말한다. 에베레스트 등정 때도 위기는 있었지만 매킨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무사히 등정에 성공하고 돌아왔다.

2011년엔 남극 빈슨매시프에 도전했다. 혼자서 가기로 하고 비용도 혼자 부담했다. 빚이 누적이 돼서 돈을 빌리기도 쉽지 않았다. 지인 6명에게 500만원씩을 빌렸다. 당연히 상조회 빚은 항상 그대로였다. 이젠 6대륙을 끝내고 마지막 한 봉우리만 남았다.

 

이젠 마지막, 마침내 2014년 11월 칼스텐츠로 향했다. 칼스텐츠는 이미 등정했던 다른 산에 비해 높지는 않았지만 정글과 변덕스런 날씨로 애를 먹었다. 하지만 ‘세븐서밋’을 향한 그의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10일 뒤 정상을 밟고 14년간의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한편으로는 뚜렷한 목표가 없어져 허전하기도 했다.

그동안 든 비용만 지방 아파트 한 채 가격은 족히 되리라고 한다. 그는 이를 “산에 투자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 갚고 있는 빚은 빚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의 생활의 일부이고, 자연스레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세븐서밋’이 아닌 또 다른 목표인 ‘제2의 인생’을 고민하고 있다. 그가 세븐서밋을 하고 남은 것은 몇 천만 원의 빚과 소홀했던 가족, 영광의 상처뿐이다. 오른쪽 발목뼈는 6조각으로 나눠져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

그의 나이도 50줄에 곧 들어선다. 그동안 소홀한 가족에게도 미안하다. 직장의 동료 후배들에게도 민폐 아닌 민폐를 끼쳤다. 이들에게 어떠한 형태로 갚아야 한다. 직장에서는 근무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새로운 공원관리기법 등도 개발할 생각이다. 후배들에게는 부담 없는 좋은 선배로 남고 싶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산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다. 에베레스트 갈 때 봤던 아마다블람이 그렇게 눈에 쏙 들어왔다. 언젠가 가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다. 하지만 아내와 가족이 머리에 떠오른다. 아내의 “이젠 그만 할거지”라는 말이 내내 잊어지질 않는다. 소홀했던 아빠 없이도 잘 자라고 공부도 잘하는 아들에게는 특히 고맙다. 그는 그동안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공부해서 산림기사 자격증도 땄다. 30m 높이의 나무들 베어내는 작업을 하는 ‘아보리스트(Arborist)’도 하고 싶다. 하지만 뭘 할지 아직 결정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이미 결정하고 난 뒤 통보만 했는데, 이번 만큼은 아내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한다.

 

그는 그동안의 신세 졌던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세븐서밋은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 달성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시간을 내준 공단, 동료․선후배, 가족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공단 이사장님께서는 직접 전화 걸어 격려해주시고,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가족들에게도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언제 무슨 일을 하던 항상 그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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