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자연늪인 우포늪, 당연히 람사르습지에 등록됐다. 환경부 고시 생태계특별보호구역이며, 천연기념물 제524호로 지정된 천연보호구역이며, 문화체육관광부에 선정 ‘한국관광 으뜸명소’ 8곳 중의 한 곳이다. 2011년엔 세계자연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다.
우포늪은 약 2.31㎢(약 70만 평)으로 축구장의 210배 면적이다. 우포는 우포늪,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4개의 습지로 구분되며, 그 중 우포늪이 가장 크다. 그 뒤로 목포․사지포․쪽지벌 순이다. 우포를 주민들은 소벌이라 부른다. 소벌이라는 이름은 옛날 주민들이 소벌에서 소를 키우면서 풀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했다고 해서 붙었다. 또 다른 설은 소벌 북쪽에 우항산(牛項山)이 있어, 거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이곳의 마을 이름도 ‘소목’이라 한다.
사지포는 상류에서 흘러들어온 모래가 다른 늪보다 많이 가라앉아 있어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말로는 모래벌이다. 모래늪을 한자로 표기하면 ‘砂旨浦’가 된다. 목포는 옛날에 땔감으로 쓸 나무를 많이 모을 수 있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원래 이름은 나무개벌이었다. 여름철이 되면 많은 나무들이 떠내려 온다. 나무개벌의 한자표기가 ‘木浦’인 것이다. 쪽지벌은 네 개의 늪 중에서 크기가 가장 작기 때문에 쪽지벌이라고 불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쪽지벌은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우포늪 출발에 앞서 생태관에 잠시 들렀다. 우포늪의 모든 것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설명만 듣고도 가슴이 설렌다. 한폭의 동양화 같은 왕버들수림, 융단 같이 우포늪을 뒤덮고 있는 물풀, 물풀의 왕으로 불리며 가시 속에 화려한 보랏빛 꽃을 피우는 가시연꽃, 시심을 절로 자아내는 장대를 저어가는 배, 기러기의 비상, 온갖 새들의 군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이 밀려온다.
한껏 감동을 받은 상태서 우포늪관리사무소 노용호 연구관의 안내로 출발한다. 그는 전문대 교수를 역임한 박사이자 생태춤 창시자이기도 한 사람이다. 그와의 동행이 은근히 기대됐다. 그는 <우포에는 맨발로 오세요>라는 시인을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맨발은 자연과 함께 속살을 섞는다는 의미로 들린다. 다르게 표현해서 ‘물아일체(物我一體)’로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과 내가 일체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 우포늪과 대화하며, 자연과 교감을 나누며 걸으려면 맨발로 걸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추운 겨울이다. 여름에 반드시 다시 와서 맨발로 걸어보리라.
가시연꽃 사진이 있다. 장미보다 훨씬 더 많은 가시에, 꽃도 장미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손도 대지 못할 정도의 가시를 뚫고 꽃을 피운다. 그 꽃은 너무 아름답다. 정말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생태관의 영상에 감동받고, 우포늪의 수생식물을 찍은 사진에 감동 받고, 감동의 연속이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구기자 군락이 나온다. 겨울인 지금은 구기자를 볼 수 없다. 습지에 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속세도 있다. 왕버들 군락도 넓게 퍼져 있다. 이순신 장군이 과거시험 볼 때 말에서 떨어져 피가 흐를 때 이를 멈추기 위해 다리에 묶었다는 느릅나무도 소개한다. 노 박사는 “느릅나무를 이순신나무라고도 한다”고 말한다.
기생식물인 한삼덩굴과 우포늪의 대표적 수생식물인 마름나무도 빠지지 않고 설명한다. 식물을 설명하느라 진도가 나가지 않을 정도다. 정말 1억 4천 만 년 전에 생성된 원시 늪지대 그대로의 모습이다. 겨울이라 분위기는 쓸쓸하고 을씨년스럽지만 자연의 속살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신비, 그 자체다.
우포늪을 자세히 위에서 들여다보라고 전망대가 나온다. 잠시 들러본다. 주변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이 귓전을 스민다. 몸을 더 움츠린다.
노 박사는 “우포늪은 화왕산․열왕산에서 발원한 물이 낙동강으로 흘러가기 전에 모이는 곳”이라며 “홍수가 났을 때는 낙동강보다 수위가 낮아 물이 역류해서 모이고, 낙동강보다 수위가 높을 때는 자연스럽게 강으로 흘러간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포늪은 물이 마를 날이 없다는 의미다.
노 박사는 수생식물인 줄을 지나치면서 “스쳐 지나지 말고 느껴라”고 말한다. “생명길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자연이 말을 걸어오는 길이고,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줘 우포늪을 ‘천의 얼굴’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우포에서 왜가리가 날아간다. 노랑부리저어새는 물을 헤집고 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노 박사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설명을 한다. “왜가리는 조용히 없는 듯 기다리다 먹이가 오면 순식간에 낚아채고, 노랑부리저어새는 부리로 이리저리 헤집으며 먹이를 찾는다. 그 모습이 기다리는 자와 설치는 자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농업수리시설인 배수펌프장을 지나자 ‘비밀의 정원(Secret Garden)’ 같은 곳이 나온다. 고라니가 살포시 몸을 숨기며 물을 마시기 좋은 작은 연못이 있고, 버드나무와 왕버들이 둘러싸여 있는 아늑한 곳이다. 동물이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은 사람도 숨기에 안성맞춤이다. 물억새와 갈대도 있다. 노 박사는 갈대를 가짜대나무라고 한다. 갈대숲 사이엔 고라니, 멧돼지들이 은신처로 사용한 듯 보금자리 같은 둥지흔적이 보인다. 자연의 모습 그대로다.
왕버들 밑에는 자운영이 서식하고 있다. 군락을 이룬 자운영이 보랏빛 꽃을 피우는 봄에는 그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에 흠뻑 빠질 것만 같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다.
이어 사초군락도 나온다. 배우 장동건이 영화를 촬영했고, 신민아가 드라마를 촬영한 장소라고 노 박사는 설명한다. 완벽한 생태에 완벽한 미를 갖춘 늪지다. 정말 없는 게 없다. 한삼덩굴은 왕버들을 완전 뒤덮어 마치 하나의 대형둥지로 만들어 놓은 듯하다. 고라니와 멧돼지 등의 은신처로 사용한 듯하다.
징검다리가 나온다. 주변은 왕버들이 군락을 이뤄 서식한다. 왕버들도 청송 주왕지보다 더 오래되고 더 멋진 듯하다. 안재욱의 드라마 촬영장소라고 한다. 가는 곳마다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한 장소다. 내가 감독이라도 이런 장소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다. 징검다리는 여름에 물이 넘치면 건널 수 없다고 노 박사는 말한다. 이 물이 흘러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겨울인데 쑥부쟁이가 연보라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햇빛이 드는 따뜻한 자리다. 철 모르는 쑥부쟁이가 아니라 쑥부쟁이는 지금 아니면 자기 모습을 뽐 낼 수 없을 것 같아 지금 피우는 꽃을 피우는 것 같다. 다른 아름다운 꽃들과 식물들이 원체 많다는 의미다. 그 옆 참나무 줄기에 딱따구리가 둥지를 만든 듯 달걀 크기 모양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작은 가지에는 새 둥지와 벌집이 나란히 걸려 있다. 이 겨울에 도저히 감동을 멈출 수 없는 장면의 연속이다. 다른 계절에 오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다른 계절에, 각각의 계절에 맞춰 적어도 3번 이상은 더 와봐야 되겠다. 노 박사도 딱히 어느 계절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한다. 각 계절마다 모두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고 강조한다. 정말 그럴 것 같다.
목포제방을 건넌다. 물밑으로 자맥질을 하는 큰기러기, 큰고니와 각종 오리들이 물 위에 고요한 척 유유히 움직인다. 이 환상적인 삶터에 철새인 왜가리와 백로는 텃새가 됐다. 먹을 것 있고 인간의 침범이 멈춘 이곳이 그들의 안식처가 되기에 충분하지 싶다.
대대제방을 지나 우항산이 나온다. 산이 소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벌, 즉 우포라는 이름이 유래한 바로 그 산이다. 유일하게 산자락으로 살짝 오르는 생명길이다. 산이라 해봤자 100m도 채 안 된다. 그 옆 소목마을은 우포에서 유일하게 어업활동을 허가받았다. 못 살던 마을이 우포늪의 가치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자 방문객이 몰려들면서 상전벽해가 됐다. 사람들도 살만해졌다.
조금 더 가면 주매마을이 저 만치 보인다. 노 박사의 고향이라고 한다. 노씨들이 500여년 이상 거주해온 집성촌이다. 우항산 정상에 소목정이란 정자가 있다. 정자 위에 올라가서 우포를 바라본다. 모든 게 평화스럽다. 인간과 자연의 완벽한 공존이다. 아름답다. 길을 걸으면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와 물소리가 들린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인간의 소리는 마치 잡음 같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계속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소목마을 사람들이 장대배를 타는 소목나루터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불안해서 못 탈 정도로 작다. 작아서 좌우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아 보인다. 길은 주매제방으로 이어진다. 우포늪으로 연결된 길과 우포늪을 보면서 가는 길, 두 갈래가 나온다. 자연 속으로 계속 들어가기로 한다. 우포늪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고요한 잠을 깨운 듯 수많은 새들이 울음을 터트리며 비상한다. 엄청난 군무다. 이런 걸 두고 장관이라 한다.
개구리를 닮은 개구리바위를 지나 사지포제방 방향으로 가면 팽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딱 한 그루뿐이다. 우아하고 둥글게 자태를 뽐내는 듯하다. 달리 보면 뭔가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듯도 하다. 500여년이 넘었다고 한다.
사지포제방으로 들어서자 고니들이 다양한 울음소리를 낸다. 먹이를 찾는지, 구애를 하는지 알 수 없다. 쫓고 쫓기고, 안고 엉기고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속된 표현으로 완전 ‘새판’이다. 신천지일 뿐만 아니라 ‘새천지’다. 그리고 새들의 천국이다. 이들의 천국이기에 인간이 찾아와서 감동한다.
우포늪생명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감동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다. 정말 다른 계절에 와서 꼭 다른 모습을 확인하고픈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