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내로라하는 풍수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일반적으로 풍수만을 공부한 사람들이 아닌 풍수를 학문으로 전공한 정통 학자들이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긴 처음이다. 풍수를 제대로 학문으로 승화시키고, 전국화하고, 나아가 세계화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나아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전 단계의 모임이기도 하다.
이들이 모인 장소는 다름 아닌 한국의 5대 명당에 꼽히는 안동이다. 전국에서 고택과 종택이 가장 많은 곳이다. 지난 4월3~4일 1박2일 동안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소장 강명구 교수) 주관으로 안동에 있는 고택과 종택 답사에 나섰다. 이들은 가칭 ‘동아시아 풍수연구회’라는 단체를 발족하기 위한 모임이자 활동이기도 했다.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경상대 최원석 교수는 “전국의 풍수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답사를 하는 건 풍수역사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며, 풍수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계기이자 한국 전통풍수가 현대화 하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 모임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환경협력분과위원회에서 주관한 행사라 더욱 의의가 깊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풍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풍수가 토지의 효율적 이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전통풍수에서 그 방법을 찾는 일환이기도 했다.
이날 참석자는 서울대 박수진 지리학과 교수, 서울대 이도원 환경계획학과 교수, 인하대 정경연 부동산학과 교수, 대구한의대 김병우 교양과정부 교수, 대구가톨릭대 이형윤 지리교육과 교수, 원광디지털대 조인철 동양학과 교수, 영남대 박재락 환경설계학과 교수, 청운대 한종구 건축공학과 교수 등이다. 그 외에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 신혜섭과 김충원(서울대 지리학과 대학원생) 조교 2명과 ㈜지오북 황영심 출판사 사장도 함께 했다.
첫 답사 장소는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 있는 풍산 김씨 영감댁과 학암 고택. 앞뒤로 자리 잡고 있는 고택들이다. 박재락 교수가 안내와 설명을, 조인철 교수가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안동 풍산 김씨 영감댁(令監宅)은 경북 민속자료 제39호, 학암 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179호로 지정된 지방문화재와 국가문화재다. 사람들은 영감댁이란 말부터 궁금했다. 박재락 교수는 “정2품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은 대감, 그 아래인 종2품부터 당상관 위에까지 영감, 당상관 이하는 나으리라고 불렀다”라고 설명했다.
마을 지명인 ‘오미리’는 자식들이 전부 과거 급제한 명당이라 해서 붙여졌다. 오미리 종택마을은 풍산 김씨 500여년 터전이다. 풍산 김씨 유연당 대현공의 아들 8형제가 모두 진사에 이르렀고, 그 가운데 5형제는 문과에 급제했다. 이 사실을 들은 조선 인조는 팔연오계(八蓮五桂)라 하여 오미동이라는 지명을 하사했고, 이후 마을이름으로 정착됐다. 박 교수의 풍수적 입지조건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오미리 종택마을은 문수지맥의 대봉산이 주산을 이룬 후 현무봉이 좌우 본신용호를 감싸듯이 마을의 정주공간과 중명당을 포함한 보국을 안고 있는 형국입니다. 즉 청룡이 180도 이상 감싸고 있는 형태의 청룡안산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5부자가 과거에 급제한 것은 이러한 지세의 영향이 미친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주하는 종택마을의 좌(坐)로 하여, 향(向)인 안산은 현재 경북도청 이전지의 주산인 검무산(332m)인데, 산세가 필봉형국입니다. 이러한 입지유형은 현무․청룡․백호․안산이 갖춰진 장풍국을 이룬 곳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은 주변을 설명을 듣고 주변을 살펴보느라 분주하다. 큰 지맥을 보고 주변 물의 흐름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풍산 김씨 영감댁은 첫 지맥이 떨어진 곳보다는 조금 앞에 위치해 있다. 반면 영감댁 배후에 있는 안동 학암 고택은 첫 지맥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터전을 잡아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이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고택이다. 다들 “첫 터전을 잡은 곳은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하고 조금 뒤쪽, 즉 안정적인 안쪽으로 들어와 기운이 맺히는 곳으로 옮긴 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건축가이면서 풍수학자인 조인철 교수가 설명을 덧붙였다.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은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주택을 건립했습니다. 행랑채인 대문채와 사랑채, 그리고 안채와 사당이 주택구조의 4대 요소입니다. 이 중 안채는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밖에서 보이지 않게 설계합니다. 잘 보여주지 않죠. 이를 어떤 식으로 조합하느냐는 가족구성원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리 나타납니다. 또 은둔형이나 농사를 짓느냐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집 구조가 사람의 동선적 측면을 중요시하고 이와 연결되기 때문이죠. 지형적 측면은 주변 산세에 따릅니다. 어떤 산세를 중요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ㄴ’자 ‘ㄱ’자 ‘ㄷ’자 형태의 구조가 나타나는 것도 이같은 원리입니다. 또 대개 대문채와 안채는 일직선으로 배치합니다. 안채가 보이는 구조는 수치로 여깁니다. 가리기 위해 내벽을 건립합니다. 건물 구조에는 다 의도된 바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읽는 것이 중요하고, 읽어내야 하는 것이 풍수입니다.”
박재락 교수와 조인철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던 정경인 교수가 문제제기를 했다.
“풍수는 맥을 정확히 찾고, 맥이 다하는 곳이자 혈이 있는 용진처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에는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합니다. 합수가 돼야 하는 것이죠. 맥은 앞쪽으로 흐릅니다. 주혈이 되려면 마을의 중앙에 있어야 합니다. 오미리 마을은 우백호는 층층이 겹겹이 감싸고 있습니다. 산은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동시에 경관적 측면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산관(山觀)이란 말이 있습니다. 산이 바라보고 있어야 하고, 산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자리가 명당입니다. 이를 종합적으로 얘기하면 용혈사수향(龍穴砂水向)입니다. 용혈사수향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중심이 되는 위치의 집터를 용의 자리로 보는 것입니다. 영감댁과 학암 고택을 비교하면, 영감댁은 합수는 되지만 마을 주혈을 이 집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반면 학암고택은 합수가 안 되고 기운이 빠져나갑니다. 주혈은 고택으로 내려옵니다. 향은 경관이 좋아야 하지만 햇빛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두 집 다 조금씩 문제는 있는 것 같습니다.”
조인철 교수가 다시 건축학적 관점에서 본 풍수설명을 이었다.
“가옥의 중심성을 어디로 둘 것인가에 따라 가옥구조는 달라집니다. 풍수의 중심성, 건축측면에서의 중심성, 위계성 면에서의 중심성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사당(祠堂)은 앞이나 중앙보다 뒤쪽 약간 높은 곳에 둡니다. 이 집과 같이 집성촌의 위계성이 중요시되는 집이 있습니다. 종가집이란 위계성은 마을의 기하학적 중심과 풍수적 중심에서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 종가집이란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풍수적 명당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위치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거죠. 위계는 곁에 있는 곳보다 안쪽으로 맥이 나오는, 또는 근접한 곳에 대부분 중심성을 둡니다. 결론적으로 신성성의 공간을 어디로 둘 것인가에 따라 풍수도 달리 나타납니다.”
이어 박재락 교수가 재차 지명유래에 대한 설명을 추가했다.
“오미동은 원래 산의 지맥이 다섯 개가 흘러내려와 오릉동이었던 것이 인조가 오미동으로 하사해서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맥이 많이 내려와 명당이었던 것이죠. 조선시대의 지맥은 은신처가 되면서 전망 좋고 아늑한 곳을 특히 선호했습니다.”
영감댁과 학암고택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앞쪽에 있는 영감댁은 안산이 확 트여 있으며, 저 멀리 있는 문필봉이 안산역할을 하기엔 너무 멀고 너무 높았다. 하지만 학암고택의 안산은 바로 앞에 있는 동산이 그 역할을 대신 하면서 매우 안정감을 더했다. 포근하고 아늑하기까지 했다. 더욱이 저 멀리 있는 문필봉은 전형적으로 문필봉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이어 가곡리 안동 권씨 고택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안동 권씨 병곡 종택이다. 경북 민속자료 제138호. 가곡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커다란 저수지가 제일 먼저 맞는다. 일종의 합수에 해당하는 것이다. 박재락 교수도 “가곡지가 이 마을의 맥을 막아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종택에서는 지금까지 몇 백 년이 흘렀지만 양자를 한 명도 들이지 않은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덧붙였다. 이도 그만큼 명당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가곡리 병곡종택은 안동시내에서 풍산읍을 거쳐 하회나 구담으로 가는 길목에 가일이 있다. 고려를 개국할 당시 공로를 세운 안동 권씨 태사 행(幸)의 후예들 가운데 복야공파 권항(權恒)이 입향한 이후 지금까지 1000여 년 동안 삶의 자취가 이어진다. 퇴계 선생의 두 번째 부인인 권씨 부인이 이 마을 태생으로, 퇴계에게는 처가 동네다. 본래 풍산현에 속했으나 가일과 지곡의 마을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가곡이라 붙였다. 종택은 조선 초기의 문신 권주(權柱)의 옛집이다. 가일 마을의 풍수적 입지에 대해서 박재락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종택마을의 주산은 문수지맥의 검무산입니다. 현무봉을 이루고 있는 정산(井山)은 검무산의 청룡지맥이 좌선하면서 기봉한 것입니다. 정산을 이루면서 좌우로 여기(餘氣)를 활짝 뻗어 마을을 감싸는 형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산의 중심용맥이 종택으로 입수하여 혈장을 이룹니다. 마을 정주공간 앞 쪽에는 지당인 가일지가 형성되어 있어 중심용맥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안산은 외명당인 풍산들 건너편에 솟아 있는 화산(花山)으로, 검무산의 백호지맥이 우선하면서 하회마을의 주산을 이루는 산이 된다. 따라서 병곡종택의 입지유형은 주산의 현무봉과 좌우 용호가 감싸고 있으며, 안산의 주작인 지당이 형성되어 있으므로 장풍국의 입지를 하고 있는 것을 판단됩니다.”
건축가 조인철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조선시대 풍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차경수법을 잘 썼습니다. 경치를 빌려온다는 것입니다. 경치를 빌려올 때 길흉(吉凶)을 따집니다. 길은 보이게 만들고 흉은 안 보이게 차단하는 것입니다. 병곡 종택은 주맥과 지맥이 흐릅니다. 주맥은 종택으로 흐르고, 지맥은 후손들에게 흐르도록 입지를 맞췄습니다. 두 번째로 조선시대 풍수의 특징 중 사당 공간은 청룡자락 동북쪽 약간 뒤쪽에 건립하고 묫자리는 백호자락 약간 높은 곳에 조성했습니다. 묘가 먼저냐, 주택 입지가 먼저냐를 놓고 볼 때 조선시대엔 묘터가 우선이었습니다. 즉 음택이 더 발달했다는 것이죠. 이는 조상 묫자리를 잘 잡아 후손들의 발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매우 큰 것입니다. 그리고 묘지와 집터는 완전 다른 지형입니다. 묘지는 집터보다 상대적으로 높아 씻겨 내려가는 터이고, 집터는 퇴적지형의 안정적인 땅에 씁니다. 최고의 묫자리는 시체가 빨리 산화돼서 백골이 드러나는 자리를 명당 묫자리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가장 강한 생기가 뭉친 자리인 혈은 인식적 개념이 강했습니다. 납득을 시키고 공감을 얻으려는 측면을 강조한 것입니다. 즉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지위에 따라 명당이 달라지고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집니다. 결론적으로 규모나 조건에 따라 명당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질문이 이어졌다. “명당 발복 시기에 대해서 이론과 검증된 데이터가 있느냐”와 “명당인데 망한 집안은 없느냐? 그러면 결과적으로 그 집터는 명당이 아니지 않느냐?”
이에 대해서 “원래 명당이 아니었는데 위치를 잘못 잡았다”는 입장과 “명당이지만 인생에 미치는 변수가 워낙 많아 풍수만으로 결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입장으로 나뉘었다. 그래서 최창조 교수는 “마음이 편한 자리가 명당”이라고 했나.
여하튼 전국의 내로라하는 풍수학자들이 활발한 토론을 하며, 지형과 건축의 입지조건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아 풍수이론과 현장을 하나씩 대조하는 작업을 벌인 매우 유익한 답사를 이어갔다.
첫날 마지막 답사장소인 소곡리 안동 김씨 종택으로 향했다. 경북 민속자료 제25호. 이곳에는 들어서자마자 집 뒤쪽의 석맥(石脈)이 눈에 확 들어왔다. 풍수에서 바위는 금덩어리로 인식한다. 쉽게 발산 안 하면서 오래도록 좋은 기운을 발산한다고 한다. 집 앞으로 안산이 담장 너머 비슷한 높이로 평평하게 뻗어 있다. 이를 풍수에서는 토체의 형상이라고 한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는 평평하다고 해서 “마운틴 테이블”이라고 부른다. 이런 지역에서는 대문장가나 정승과 판서가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형학 전공인 서울대 박수진 교수가 여태 지켜보다 지형학적 설명으로 의견을 표시했다.
“한국의 지형은 대체적으로 높은 지역은 변성암이고 주변 푹 꺼진 지역은 화강암의 특징을 보입니다. 그래서 협곡이 쉽게 만들어집니다. 그 안에서 홍수가 나고 지하수도 형성됩니다. 홍수는 비옥한 농경지를 만들어주는 원천입니다. 풍수에서 살펴보는 마을의 입지는 화강암 침식분지입니다. 원형으로 솟구친 것은 암주입니다. 우리 땅의 33%가 이에 해당합니다. 안산은 감추는 개념입니다. 이를 입지조건과 풍수지표로 환산하면 83점 가량 나오더군요. 거의 완벽한 지형적 조건에 삶터를 마련하고 묫자리를 조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풍수가 현대적 입지조건에 대한 이론을 체계화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첫 날 일정은 마무리했다. 저녁 8시가 다 됐다. 부랴부랴 저녁식사를 끝내고 다시 모였다. 사진으로 리뷰하며 다시 이론적으로 체계화 해갔다.
이튿날은 퇴계 태실과 묫자리에 갔다. 퇴계 태실은 풍수적으로 별다른 특이점을 찾을 수 없었으며, 묫자리는 거북이가 길게 목을 뻗은 형국의 목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전날과 같이 활발한 토론은 없었지만 전국의 풍수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참가자들은 뿌듯한 자신감을 얻는 듯했다. 한국 풍수에 있어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될지 모를 일이다. 풍수의 새로운 변신이 기대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