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산 정암사는 통도사 다음으로 접근하기 쉬운 적멸보궁이다. 사찰 앞에까지 차가 진입할 수 있고, 절 입구에 주차장이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암사의 원래 이름은 갈래사(葛來寺)였다. 자장율사가 정암사 근처에 중국에서 가져온 불사리탑을 세우려 했으나 세울 때마다 계속해서 쓰러졌다고 한다. 이에 자장이 간절히 기도를 올리니 동지섣달 혹한 속에서도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눈 위로 올라와 멈춰 섰다. 그곳이 각각 지금의 수마노탑, 적멸보궁, 사찰터라고 한다. 그런 연유로 해서 정암사를 칡넝쿨에서 온 절이라고 해서 ‘갈래사(葛來寺)’라고 불렀다. 언제 어떻게 정암사라고 바뀌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없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는 수마노탑(水瑪瑙塔)에 대한 유래도 각별하다. 마노석으로 쌓았다고 해서 수마노탑이라 부른다. 마노석이란 보석의 하나로, 원석의 모양이 말의 뇌수를 닮았다고 해서 ‘마노’라 불린다. 이는 수정류와 같은 석영 광물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은․유리․파리․산호․마노․진주’를 예로부터 일곱 개의 보석, 즉 칠보(七寶)라고 해왔다.
수마토탑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돌아올 때 가지고 온 마노석으로 만든 탑이라 하여 마노탑이라고 한다. 마노 앞에 ‘수(水)’자는 자장의 불심에 감화된 서해 용왕이 마노석을 동해 울진포를 지나 이곳까지 무사히 실어다주었기에 ‘물길을 따라온 돌’이라고 해서 덧붙여 진 것이다. 지금도 고한에는 갈래초등학교가 있고, 상갈래․하갈래라는 지명이 있어 갈래사가 상당한 기간 동안 존속했음을 시사한다.
정암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기도 하지만 자장율사가 일생을 마친 곳이기도 하다. 적멸궁 입구에 ‘자장율사주장자’라고 쓰여진 고목이 있다.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주목 지팡이를 꽂아놓은 것이 자랐다고 전한다.
정암사 일주문 위 산 쪽으로 조그만 탑이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탑돌이를 하고, 그 쪽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그 탑이 바로 보물 제41호 수마노탑이다. 일주문을 지나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적멸보궁이 있다. 항상 독경이 울려 퍼진다.
정암사 적멸보궁에도 역시 불상은 없다. 다만 부처님이 앉아 계신 것을 상징하는 붉은색 방석이 수미단 위에 놓여 있다. 사리가 모셔진 빈 방석 너머 장방형으로 난 창문 밖 산 위로 수마노탑이 있다. 보궁 안에서는 직접 볼 수 없다. 적멸보궁 뒤편 급경사를 따라 약 100m 남짓 올라가야 한다. 가파른 오솔길로 올라가면 높이 9m 가량의 7층석탑이 나온다. 그곳에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고 전한다. 좁은 탑 주변에 겨우 한두 사람 종대로 설 수 있을 정도다. 평일에도 기도를 올리거나 탑돌이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하지만 함백산 적멸보궁은 다른 4곳의 적멸보궁과는 달리 임진왜란 때 유정 사명대사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의 진신사리를 나눠 봉안했다고 전한다. 자장이 직접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주장과는 다르다. 그리고 자장이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고까지 한다. 어찌된 일인가. ‘숲과 골짜기가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고 해서 정암사라고 개명한 사찰에 어찌 이리 다른 유래가 전할까. 적멸보궁을 걸으면 한 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