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3대 오지를 BYC로 표현한다. B는 봉화, Y는 영양, C는 청송이다. 지금은 교통이 많이 좋아졌지만 옛날에 BYC를 가려면 정말 산 넘고 물 건너 가야한다.
날씨가 더워지는 요즘, BYC에는 아직 시원한 계곡과 더불어 갈만하고 볼만한 곳이 있다. 내성천에서 열리는 은어축제도 볼만하고, 고택들과 정자들도 어느 지역보다 많이 남아 있다. 시원한 계곡과 더불어 걸을 만하고 고택을 볼 수 있는 길이 ‘봉화 솔숲 갈레길’이다. 총 4개 구간 126㎞에 이른다. 일종의 봉화 둘레길이지만 완성된 구간은 얼마 안 된다. 전체 코스 중 제1 구간 내성천에서 석천정사를 거쳐 닭실마을과 추원재에 이르는 3.8㎞코스가 절경이다. 마을과 계곡, 들길을 걸으며 봉화 역사의 한 단편을 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은어축제가 열리는 내성천은 봉화의 진산 문수산에서 발원한 물이 여러 지류를 거쳐 합류한다. 축제가 끝난 뒤 상류를 따라 올라가면 축제에서 살아남은 은어들이 장관을 이룬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수심은 얕아져 좁은 공간에서 바둥거리는 은어의 몸짓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은어 그들에게는 고통이겠지만.
내성천 행사장에서 1㎞남짓 떨어진 상류에 석천계곡 입구가 나온다. 봉화에는 석천계곡․백천계곡․사미정계곡․석문동 참새골․매호유원지․구마계곡 등 총 6개의 계곡이 있다. 그 중의 하나다. 문수산을 분수령으로 창평천과 닭실마을의 뒤에서 흘러내리는 동막천이 유곡 앞에서 합류하여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곳을 석천계곡이라 한다. 크지 않고 아기자기 하지만 이름 그대로 돌과 하천으로 이루어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맑은 물과 울창한 송림, 기암괴석들로 구성된 자연경관은 수려하고, 계곡 중간에 석천정사가 있어 더욱 고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석천계곡과 닭실마을 일대가 사적 및 명승 제3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문화재 지정 규정이 바뀌어 2010년 10월에 봉화 석천계곡과 청암정 일대를 새로이 명승 제60호로 지정했다.
계곡 입구에 석천계곡과 봉화솔숲갈래길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띄기 좋게 세워져 있다. 서너 그루의 노송이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계곡 아래쪽으로는 아이들이 더운 날씨 때문에 웃통을 벗고 물장구를 치는 모습은 여름에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시골의 낭만이기도 하다.
석천계곡은 솔숲과 어우러진 계곡이 일품이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계곡 옆으로 길을 따로 조성하지 않고 자연의 길 그대로 올라가도록 했다. 노송은 그늘을 드리워주고 계곡가의 이름 모를 풀들은 여름을 더욱 싱싱하게 만들고 있다.
길 옆에 커다란 바위가 눈에 띈다. 벽면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초서체로 네 글자를 새겨놓았다. ‘청하동천(靑霞洞天)’이라고 옆의 안내판에서 소개하고 있다.
‘청하동천은 하늘 위에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충재 선생의 5대손인 대졸자(大拙子) 권두응(權斗應: 1656~1732)의 글씨이다. 기암괴석이 많은 석천계곡에는 도깨비들이 몰려와서 놀았고, 이 때문에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는 서생들이 괴로움을 당하자, 권두옹 명필이 바위에 글씨를 새기고 주칠을 하여, 필력으로 도깨비들을 쫓아냈다고 한다.’
아름답긴 아름다운 계곡인 모양이다. 신선이 노닐던 계곡을 도깨비들이 탐내서 놀이터로 알고 설쳤다고 하는 정도이니. 초서의 글씨도 영판 도깨비같이 생겼다.
신선이 살았던 계곡은 계속된다. 계곡은 그리 깊지도 않아 물놀이하기 딱 좋은 정도다. 아마 더운 여름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성 싶다. 마침 청소년들이 지나간다. 더위를 식히러 왔는지 네댓 명이 반바지 차림이다. 그대로 물에 풍덩 뛰어든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석천계곡과 석천정사, 닭실마을 일대는 조선 중종 때 종일품 우찬성을 지낸 문신, 충재 권벌 선생의 유적과 관련이 깊다. 아니 이 일대가 충재와 그의 후손들이 살았던 유적이다. 충재 선생은 사화(史禍)에 휘말려 평안북도 삭주로 유배가, 그곳에서 일생을 마친 인물이다. 명종 때 관직이 복원되고 선조 때 영의정으로 추증됐다.
기기묘묘한 자태의 노송은 계곡과 어울려 길은 운치를 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송 사이로 계곡 옆에 자리 잡은 정자가 눈에 띈다. 한눈에 봐도 신선놀음하는 장소 같다. 바로 석천정사다.
석천정사는 충재 선생의 아들인 권동보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만든 34칸 규모의 큰 정자다.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서원 같다. 계곡 옆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은 정자는 계곡과 접한 기존 지형을 최대한 살려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말 그림 같은 정자로,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느낌이다.
계곡을 건너 석천정사로 간다. 그 다리 또한 정감이 흐른다. 자연 상태의 돌이 돌다리 같이 놓여 있고, 건널 수 없는 부분만 외나무다리로 연결시켰다. 도시생활에서 잃어버렸던 시골 정서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다리다.
석천정사 안에 자연석 벽면에 石泉亭(석천정)이란 글자를 새겨놓았다. 정자 안을 둘러봐도 정자 치고는 꽤 넓다. 정자 밖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옛날 유생들이 모여 앉아 음풍농월을 했을 법하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시흥이 절로 나는 곳이다. 한껏 쉬어가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
계곡 위로 올라서니 녹색의 싱그러움을 더해가는 평야 뒤로 한적한 고택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전형적 목가적 풍경이다. 그 마을이 안동 권씨 집성촌인 닭실마을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영남의 4대 길지’ 중의 한 곳으로 꼽힌 마을이기도 하다. 여기서 영남은 지금의 경북지역을 말한다. <택리지>의 4대 길지는 봉화 닭실(酉谷)마을과 안동 하회마을, 안동 양동마을, 안동 내앞(川前)마을 등이다.
봉화 닭실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일종의 금계포란형이다. 황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는 말이다. 일반 닭도 아니고 황금닭이 알을 품고 있으니 명당은 명당이지 싶다.
계곡 위에서 닭실마을로 가는 길은 아늑한 솔숲길로 연결된다. 닭실마을 평야 앞으로 동막천이 흐르고 있다. 동막천 위로 놓여진 남산교를 지나면 닭실마을에 이른다. 남산교 못 미쳐 하천에 물이 얕을 때 건너라고 징검다리도 있다.
마을로 진입하는 순간 소나무에 둘러싸인 집이 유독 눈에 띈다. 한국의 10대 정자 중의 한곳으로 꼽히는 ‘청암정(靑巖亭)’이다. 충재 선생이 삭주로 유배가기 전 벼슬하다 낙향해서 지냈던 정자다. 거북바위 위에 지은 정자라 해서 ‘구암정자’라고도 한다. 정자 둘레로 물이 흐르고, 나무울타리로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정자의 모습이다. 청암정의 푸른 바위는 이끼 낀 바위란 의미로, 곧 신선세계를 상징한다고 한다.
봉화엔 이렇게 유달리 정자가 많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곳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나온다. 무려 104개나 된다. 전국에서 정자가 가장 많은 고장이다. 한마디로 ‘정자의 고장’이다. 왜 그럴까? 아마 낙향한 사대부나 선비들이 가장 많았던 지역이며, 그들이 고향에서 음풍농월하면서 지냈던 장소가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오는 것 같다.
청암정 바로 옆에는 충재박물관이 있다. 보물을 포함한 조선시대 유물 1만여 점이 전시돼 있다. 안동 권씨 문중에서 관리하다 지금은 봉화군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어서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목에 유곡마을 한과체험관이 있고, 그 길로 솔숲길은 계속된다. 하지만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다. 구간별로 군데군데 연결돼 있다. 여기서 솔숲길은 방향을 틀어 추원재로 향한다. 안동 권씨 종가의 제실이다. 옛날 집 그대로, 즉 고택으로 보존돼 있다.
은어축제장에서 추원재까지 4㎞가 채 안되는 짧은 길이지만 봉화 역사의 한 단면과 충재 선생을 비롯한 안동 권씨의 종택을 볼 수 있는 아늑한 솔숲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