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이 많다고 향적봉… 그러면 덕유산 이름 유래는?

남덕유를 지나면서부터 덕유산(德裕山․1,614m)은 덕유산 이름 그대로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온화하면서 포근한 전형적인 육산(陸産)이 천천히 그대로 다가온다. ‘참 좋은 산이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덕유산이란 이름도 덕스런 이름 그대로다. 덕유산은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면 짙은 안개가 드리워 산속에 사람들이 숨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그 안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덕이 있는 넉넉한 산이라 하여 ‘덕유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한국의 3대 고원 중의 하나인 덕유평전에서 너울 치는 듯한 덕유산의 산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3대 고원 중의 하나인 덕유평전에서 너울 치는 듯한 덕유산의 산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덕유산이란 이름은 1530년에 완성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한다. 그 전에는 여산(廬山) 또는 광산(匡山), 광려산(匡廬山)이라고도 불렸다. 명재 윤증(尹拯․1629~1637)이 1652년(효종3) 24세 때 덕유산을 유람한 후 남긴 장편 시문인 ‘유여산행(遊廬山行)’에서 ‘여산은 곧 금산군 안성현에 있는 덕유산의 별명이다. 토산이면서 매우 거대하며, 호남과 영남 지방 사이에 웅거하고 있다. 내가 3일 동안 이 산의 안팎을 두루 돌아보고 돌아와 이를 기록하고, 이 시편을 짓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 여산은 중국 강서성 구강시 남쪽 파양호 근처에 있는 천하 명산을 가리킨다. 일명 광산(匡山), 또는 광려산(匡廬山)이라고도 한다. 덕유산이 그 명산과 견줄 만하다는 것이다. 덕유산은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네 번째로 높으며, 최고봉은 향적봉이다.

케이블카 내리는 설천봉 주변에는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룬 가운데 중간 중간에 주목도 보인다.

케이블카 내리는 설천봉 주변에는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룬 가운데 중간 중간에 주목도 보인다.

삿갓재대피소에서 무룡산을 향해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무룡산(舞龍山․1,492m)은 용이 춤추는 듯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삿갓재대피소에서 내려가는 길에 있는 황점마을이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 거창군 북상면 산수리에 위치하며, 무주군 안성면과 경계를 이룬다. 산수마을 사람들에게는 ‘흰덤뿌대기’라고 부르는 깨끗하고 신령스런 산이다. 옛 이름이 불영봉(佛影峰)이다. 산 양쪽으로 삿갓골재와 동엽령(동엽이재)를 안고 있다.

무룡산에서 동엽령을 거쳐 다음 봉우리인 백암봉까지 약 4.5㎞에 이르는 구간은 동서를 가르는 능선길로 좌우의 경관을 즐기며 걷는다. 동서를 가르는 능선 때문에 덕유산에 특히 눈이 많이 내린다. 한반도 남부의 한복판을 동서로 갈라치기 때문이다. 겨울철 시베리아 고기압의 확장으로 서해를 건너며 수증기를 흠뻑 머금은 대기는 빠른 속도로 내륙으로 진입한다. 이 때 높은 장벽을 이룬 덕유산 산사면을 타고 강제 상승한 대기는 단열․팽창하여 냉각됨으로써 곧바로 덕유산에 눈을 뿌리는 것이다. 덕유산 능선을 중심으로 무주의 적상산, 두문산, 거창의 투구봉, 대봉 등으로까지 그 영향권에 든다. 이들 지역은 겨울철 눈이 많기로 이름난 곳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여름철 강우량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다. 이도 같은 이유다. 한국의 대표적인 다설다우(多雪多雨)지역이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별명을 가진 주목 두 그루가 구상나무 사이에서 고사목의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별명을 가진 주목 두 그루가 구상나무 사이에서 고사목의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다.

동엽령(冬葉嶺․1,320m)은 글자 그대로 보면 ‘겨울 잎 고개’다. 동엽령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왜 ‘겨울 잎 고개’라고 명명됐는지 유래는 알 수가 없다. 여기저기 뒤적여도 나오질 않는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고갯길을 지나서 다시 완만한 능선 오르막길로 오르면 백암봉(白岩峰․1,490m)이 기다리고 있다. 백암봉은 무주 안성방면으로 하얀 암봉을 내리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흰바위봉’이 피라밋처럼 삼각형으로 솟아오른 능선이 안성 방면으로 길게 늘어뜰이고 있다.

케이블카가 하차하는 설천봉에서 덕유산 정상 향적봉까지 불과 1㎞도 안 돼 향적봉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케이블카가 하차하는 설천봉에서 덕유산 정상 향적봉까지 불과 1㎞도 안 돼 향적봉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백암봉은 덕유산의 한가운데 있다. 백두대간은 여기서 동쪽으로 꺾여 북향하고, 남쪽으로는 지리산까지 뻗어 내린다. 덕유산 정상 향적봉은 백두대간 능선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덕유산 최고봉 향적봉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은가. 

향적봉의 이름 유래는 조선 명종 7년 갈천(葛川) 임훈이 쓴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에 잘 나와 있다. 임훈이 덕유산을 오르고 남긴 기록이다.

‘향림(香林:주목을 일컬음)이 즐비하게 있으므로 산봉우리 명칭을 향적봉이라 했다’라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이 나무를 향나무라 하면서 어찌 잎에서 향기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안내하는 스님이 대답하기를 이 향목은 미륵불이 이 세상에 와서 살게 되면 그 때야 비로소 향기가 나게 된다고 대답하였다’고 적고 있다. 향적봉의 이름 유래와 그 신비스러움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백두대간 덕유산권 중간쯤 나오는 무룡산 정상 비석.

백두대간 덕유산권 중간쯤 나오는 무룡산 정상 비석.

설경과 어울린 향적봉의 주목은 겨울을 나타내는 대표적 장면 중의 하나다. 덕유산은 ‘한국의 작은 히말라야’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설경을 자랑한다.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구간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구상나무와 주목에 핀 설화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우리가 사진과 달력에서 흔히 본 그 장면이 바로 덕유산의 설경 주목 장면인 것이다. 앞으로 갈 태백산과 함백산 주목도 만만치 않지만.

향적봉 바로 아래 설천봉까지 무주리조트에서 케이블카를 운행하고 있어, 때로는 한국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인 향적봉에서 치마 입고 굽 높은 힐을 신은 여자를 볼 수 있다. 뭔가 어울리지 않으면서 눈에 띄는 그런 장면이다.

다시 백두대간으로 간다. 백암봉에서 오른쪽, 즉 동쪽으로 살짝 틀어서 가면 횡경(橫經)재가 나온다. ‘가로 지르는 고개’라는 뜻이다. 이어 지봉(池峰․1,342.7m)을 향해 오르막길이다. 지봉 정상에는 못봉으로 돼 있다. 지봉의 ‘池’자가 연못을 의미해서 ‘못봉’으로 한 듯하다. 옛날에는 실제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한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지봉’으로, 덕유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는 ‘못봉’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 말이 그 말이지만 하나로 통일해야 할 것 같다.

향적봉 인근에 주목과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향적봉 인근에 주목과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봉우리 하나를 오르면 다시 내리막이다. 그리고 또 다른 봉우리를 향해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등산은 곧잘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인생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이 이치만 알고 있으면 내리막으로 내려갈 때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오히려 보기 좋은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지봉에서 월음령으로 내리선다. 월음령은 달음재라고도 한다. ‘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고개’라는 뜻이다. 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려면 북서쪽의 백련사에서나 가능하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백련사의 스님이 지어 붙인 것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월음령의 순우리말이 달음재다.

마치 고사목 같은 주목의 모습.

마치 고사목 같은 주목의 모습.

월음령에서 올라서면 갈미봉으로 연결된다. 갈미봉은 ‘가리봉’이 변한 말이다. 북한산에 노적봉과 마찬가지로 노적가리를 잔뜩 쌓아놓은 것처럼 우뚝하다는 의미다. 갈미봉에서 빼봉으로 이어진다. 빼봉은 곧이어 나오는 빼재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이어 덕유산권의 마지막 고갯길이자 덕유산국립공원의 경계를 이루는 빼재(920m)다. 빼째 이후부터는 국립공원 밖으로 벗어난다. 빼재는 수령 또는 신풍령이라고도 한다. 빼재에 세워져 있는 ‘백두대간 안내비’에 적힌 내용이 빼재의 유래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빼째는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됐다고 한다.’

아름다운 덕유산 능선이 마치 파도의 너울 마냥 펼쳐져 있다.

아름다운 덕유산 능선이 마치 파도의 너울 마냥 펼쳐져 있다.

뼈재는 추풍령을 본뜬 ‘신풍령’이라는 휴게소가 고개 아래쪽에 들어서면서 ‘신풍령’이라고도 불린다. 일제 강점기에는 고개 이름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빼’를 ‘빼어나다’로 해석하는 바람에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수령(秀嶺)’, 즉 빼어난 고개라는 뜻의 표지석이 세워지게 됐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은 여전히 빼재로 부른다. 지난해 개통한 터널도 빼재터널로 명명됐다. 

덕유산은 마루금이 명확히 드러나 봉우리 어디서나 너울 치는 능선 조망이 가능하다. 종주를 하다보면 북덕유와 남덕유의 우아한 곡선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 덕유산 백두대간 마루금은 나침반이 별 필요하지도 않을 정도로 등산로가 뚜렷하다. 등산로 정비도 잘 돼 있어 ‘알바’할 우려도 전혀 없다. 그 길 따라 계속 걷기만 하면 된다. 정말 이름 그대로 넉넉한 산이다. 푸근하기까지 하다. 전형적인 육산의 모습이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상락

    07.31,2015 at 6:25 오후

    조센징들이 밝고다니면 부리가지 말라버린다! 철조망을쳐 산에 오르지못하게하랏!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