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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의 속리산… 누가 유래가 됐을까? - 마운틴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의 속리산… 누가 유래가 됐을까?

속리산은 천왕봉(1,057m)이 주봉이며, 무수한 봉우리들이 기암 절경을 이루고 있다. 천왕봉에서 문장대까지 1,000m의 고산준봉들이 줄지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수백 년 된 노송들이 운치를 더하고, 백미의 암릉 아래 고산의 산죽들이 온산을 뒤덮고 있다.

속리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법주사가 창건된 지 233년 만인 784년(선덕왕 5)에 진표율사가 김제 고을의 금산사로부터 이곳에 이르자, 들판에서 밭갈이하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았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회심(回心)이 저리 존엄한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하며 머리를 깎고 진표율사를 따라 산으로 입산수도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속세를 떠난다’는 뜻에서 속리산(俗離山)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속리산 정상 천왕봉에서 법주사를 향해 내려다봤다. 법주사에도 가을이 오고 있다.

속리산 정상 천왕봉에서 법주사를 향해 내려다봤다. 법주사에도 가을이 오고 있다.

다른 하나는, 신라 말 최치원이 이곳 속리산에서 읊었다는 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바르고 참된 도는 인간을 멀리하지 않는데, 인간은 그 도를 멀리하려 든다. 산은 세속을 떠나려 하지 않는데, 세속은 산을 떠나려 한다.(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 속리산에는 최치원의 탄생설화쯤 되는 ‘금돼지’ 전설이 전해오는 것으로 미뤄, 최치원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본다.

속리산은 한국 8경의 하나로, 예로부터 제2금강인 소금강이라고도 불러왔다. 또 구봉산․광명산․지명산․이지산․형제산․자하산 등 총 8개의 이름의 갖고 있다. 그만큼 신비롭고 천변만화하는 산인 것이다. 8개의 이름만큼이나 기암괴석과 암릉이 울창한 산림과 어울려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문장대에서 사방 팔방으로 뻗은 속리산 능선들이 운무와 어울려 마치 산해를 이룬 듯하다.

문장대에서 사방 팔방으로 뻗은 속리산 능선들이 운무와 어울려 마치 산해를 이룬 듯하다.

속리산은 주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비로봉, 길상봉, 수정봉, 문수봉, 관음봉, 보현봉, 묘봉 등 1,000m 내외의 봉우리가 연이어 사방 팔방으로 뻗은 산줄기는 짙은 운무로 산해(山海)를 이룬 듯 신비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또한 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추래석문 등 여덟 개의 돌문이 있고,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은선대, 봉황대, 산호대 등 여덟 개의 돌이 있다. 이를 속리산 팔봉팔석문팔대(八峰八石門八臺)라고도 부른다. 한마디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우뚝 솟은 속리산 봉우리들은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에 속하는 이유를 알만하게 해준다.

우뚝 솟은 속리산 봉우리들은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에 속하는 이유를 알만하게 해준다.

지난 번에 소개한 재난을 피하는 피앗재 주변은 우복동으로 통한다. 우복동은 소의 뱃속 모양의 명당터를 말한다. 속리산 동남쪽 상주 화북면의 7개 동리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동네가 진짜 우복동이라고 주장한다. 우복동은 정감록의 10승지에 해당한다.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 피난을 온 사람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산이 깊다는 반증이다. 우복동은 지리산 청학동이나 경기도 가평군 조종천 상류 지역 협곡에 있었다는 유교사회의 이상향인 판미동과 함께 전설적인 이상향으로 알려진 곳이다.

속리산 정상 천왕봉에서 법주사를 향해 한 등산객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속리산 정상 천왕봉에서 법주사를 향해 한 등산객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피앗재에서 정상 천왕봉은 조금 가파르다. 숨을 가파른 숨을 내쉬며 오른다. 전혀 속도도 나지 않는다. 호흡을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고 내쉬며 발걸음을 쉼 없이 옮긴다. 손에 잡힐 듯한 천왕봉도 가파른 오르막길에는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천왕봉은 천천히 다가와 마침내 발걸음을 살포시 멈추게 한다. 천왕봉 정상 비석 옆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등산객이 법주사를 향해 고개 숙여 기도드리고 있다. 왠지 숙연해진다.

속리산 문장대의 웅덩이. 1년 내내 마르지 않는 신기한 샘이다. 양기의 기운이 넘치는 가운데 음기의 물이 있는 격이다.

속리산 문장대의 웅덩이. 1년 내내 마르지 않는 신기한 샘이다. 양기의 기운이 넘치는 가운데 음기의 물이 있는 격이다.

천왕봉은 우리나라 십이지종산의 하나이자, 세 갈래의 큰 물길, 즉 한강․낙동강․금강의 물길이 갈라지는 삼파수봉으로 불린다. 삼파수는 달천수 우통수와 함께 조선시대의 3대 명수로 알려져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달래강은 북쪽으로 삼백 리 길을 흐르다가 충주 탄금대에서 남한강으로 합류한다. 달래강 인근 지명에 아직도 남아 있는 ‘달천’ ‘단월’ ‘단호’ 등은 모두 그 물맛이 달다는 뜻으로 달래강에서 비롯된다. 2007년 12월 중앙지명위원회에서 속리산 최고봉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바꿨으나 아직 천황봉으로 표시하고 있는 지도나 문건들이 여전히 많다. 우리나라에 천왕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만 해도 10여개나 된다. 속리산 천왕봉도 그 중의 하나다.

속리산 문장대 비석이 있고, 그 옆으로 문장대로 올라가는 철계단으로 등산객들이 오르내린다. 그 문장대 정중앙에 우물 같은 웅덩이가 있다.

속리산 문장대 비석이 있고, 그 옆으로 문장대로 올라가는 철계단으로 등산객들이 오르내린다. 그 문장대 정중앙에 우물 같은 웅덩이가 있다.

천왕석문을 지나 비로봉으로 향한다. 비로(毘盧)는 비로자나불의 줄인 말로써, 인도말로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뜻이다. 이는 ‘부처의 진신’을 일컫는 말이자, 광명을 의미한다. 진표율사가 속리산에 온 다음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췄다. 깜작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띄고 사방팔방 빛을 발하고 있다. 대사가 황급히 합장배례를 하고,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이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해 구름을 타고 떠났다 한다. 이곳을 비로봉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속리산 문장대에서 백두대간 주능선 상에 보이는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헬기장 위 왼쪽부터 칠형제봉, 신선대, 비로봉 이어 오른쪽 끝이 정상 천왕봉이다.

속리산 문장대에서 백두대간 주능선 상에 보이는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헬기장 위 왼쪽부터 칠형제봉, 신선대, 비로봉 이어 오른쪽 끝이 정상 천왕봉이다.

등산로 옆으로 바위가 마치 서 있는 듯 모습을 한 게 있다. 그게 입석바위다. 등산로 상에 유일한 매점이 나온다. 그 매점 옆에 보일 듯 말듯 신선대가 있다. 그 옛날 신선이 와서 놀다가 갔다는 전설이 전하며, 그 밑에는 경업대가 있다.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의 무예 수련장으로 전하는 곳이다. 조금 더 가면 청법대에 다다른다.

봉우리들은 다들 등산로에서 조금 더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봉우리를 밟기엔 다소 힘이 더 든다. 그냥 등산로를 따라 계속 간다. 문수봉 옆으로 지나쳐 간다. 남서쪽 암릉 아래로 청법대가 있다. 8대 중의 하나다.

속리산 정상 천왕봉에서 산해를 이룬 듯 굽이진 백두대간 주능선이 온 천지를 덮고 있다. 중간 부분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형제봉이다.

속리산 정상 천왕봉에서 산해를 이룬 듯 굽이진 백두대간 주능선이 온 천지를 덮고 있다. 중간 부분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형제봉이다.

문장대 아래 있던 대피소도 이젠 완전 철거했다. 경관을 해치던 건물이 없어지니 조망은 더욱 좋아지고 더더욱 넓어 보인다.

드디어 사람들이 속리산 정상으로 착각하는 문장대에 이르렀다. 문장대 이정표에는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문장대는 원래 큰 암봉이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라 하였으나,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는데, 정상에 오륜삼강을 명시한 책 한 권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문장대는 철계단으로 오르내리며, 암벽 정중앙에 샘이 있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문장대는 철계단으로 오르내리며, 암벽 정중앙에 샘이 있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문장대 위에 올라서니 정말 가마솥만한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다. 가뭄에도 마늘 날이 없다고 하니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사방은 확 트여 있고, 백두대간, 아니 속리산 주능선이 길게 굽이져 흘러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보은현편에 ‘속리산 문장대 위에 구덩이가 가마솥만한 것이 있어,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 가물어도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더 많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세 줄기로 나누어서 반공(半空)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그 중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고, 다른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으로 가서 달천이 되어 금천으로 들어간다’라는 기록이 있다.

문장대를 지나면서부터 속리산을 완전히 벗어난다. 백두대간은 북동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KEON S CHOI

    10.31,2015 at 6:01 오후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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