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WP_Widget에서 호출한 생성자 함수는 4.3.0 버전부터 폐지예정입니다. 대신
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사람이 살만한 ‘땅’은 어딘가?… 성균관대에서 사상 두 번째 이중환 심포지엄 - 마운틴
사람이 살만한 ‘땅’은 어딘가?… 성균관대에서 사상 두 번째 이중환 심포지엄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디에 살고 싶은가?” 이에 대한 답과 질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중환은 이 질문을 한국 최초의 근대적 인문지리서이자 주제별 인문지리적 접근을 시도한 새 지리지의 효시로 평가받는 <택리지>의 화두로 삼았다. 다시 한 번 물어보자. 그리고 생각해보라. “당신이라면 어디에 살고 싶은가?”

김시업 실학박물관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김시업 실학박물관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실로 이 텍스트에 포함된 내용과 의미, 규범과 사상은 매우 방대하다. 지리적 조건뿐만 아니라 인문사회적 배경, 사상적 친소관계 등 모든 사항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엄청난 인문지리적 사상적 배경을 담고 있는 <택리지>를 학계에서는 수백 년 간 방치해뒀다. 조선후기 최대의 베스트셀러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1990년대 들어서야 역사연구회인 진단학회에서 겨우 첫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그것뿐이었다. 그리곤 다시 잊혀졌다.

진재교 대동문화연구원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진재교 대동문화연구원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이번에 두 번째로 <택리지>에 대한 학술 심포지엄을 실학박물관과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공동주최로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10월16일 열었다. 그것도 다른 학문 분야에서 방치해뒀던 걸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가 기획, 분야별로 나눠 다양한 학문으로 접근하고 평가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사람과 땅, <택리지>가 그리는 인문지리’란 주제로 양보경 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전종한 경인교육대 역사지리학 교수,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사, 이도훈․김세호․임영길 성균관대 박사과정 수료생 등의 발표와 이와 관련한 전문가들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에 관한 주제 발표를 한 담당자들이 질의를 주고받고 있다.

<택리지>에 관한 주제 발표를 한 담당자들이 질의를 주고받고 있다.

이번 학술 심포지엄을 기획한 안대회 교수는 “<택리지>의 텍스트는 단순한 지리학에 그치지 않고 역사학과 민속학, 문학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지역 전설을 기록한 구비문학의 보고이며, 이중환은 구비문학의 기여자이다”라고 언급했다. 안 교수는 그의 전공에 맞춰 <택리지>의 문학적 가치에 더욱 주목했다.

‘의 구전지식 반영과 지역전설 서술’을 발표하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택리지>의 구전지식 반영과 지역전설 서술’을 발표하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먼저 <택리지>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개괄적으로 한 번 살펴보자. 이중환은 이 책을 쓰고 난 뒤 “우리나라의 산천, 인물, 풍속, 정치와 교육의 연혁, 치란득실의 잘잘못을 차례로 엮어 쓴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택리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성돼 있다. 옛날에는 사대부가 따로 없었고 모두 백성이라고 했다라고 하여 사민평등의 관점에서 백성론을 개진하여 백성들의 평등한 삶터로서 국토를 인식한 ‘사민총론’, 국토를 팔도를 나누어 도별 각 고을의 상대적 위치와 연혁․풍속․물산․교통․인물 등을 유기적으로 연관 지어 설명한 ‘팔도총론’, 눌러 살만한 곳의 관점에서 지리․생리․인심․산수의 4대 주제에 따라 국토의 각 지역을 평가한 ‘복거총론’, 성씨와 문벌의 귀천을 따지는 사대부의 폐해를 서술하며 팔도총론에서 언급한 만민평등론을 상기시키는 ‘총론’, 책의 성격과 저술의도, 저술의 이면에 함축된 의미 등을 드러내고자 하는 ‘발문’ 등의 순서로 나온다.

‘와 18세기 지리학’을 발표하는 양보경 성신여대 교수.

‘<택리지>와 18세기 지리학’을 발표하는 양보경 성신여대 교수.

이중환이 말한 사람이 살만한 땅, 즉 이상적 거주지 선정의 요소와 원칙은 ‘복거총론’에서 제시한다. 자연지리적 환경에 해당하는 ‘지리(地理)’, 경제기반으로서의 ‘생리(生利)’, 풍속과 공동체 의식 등 사회적 인자로서 ‘인심(人心)’,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심리적 조화를 강조한 휴양공간으로서의 ‘산수(山水)’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서술한다. 

특히 이전까지 중시되지 않았던 ‘생리’의 강조는 이중환이 다양한 삶의 방식과 환경조건에 따라 다양한 가거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이상향의 조건에 꼭 부합되는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조건들 가운데 일부가 갖춰진 곳을 선정해서 인간 스스로 노력하면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다는 적극적 이상향의 개념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가거지 중 가장 좋은 곳으로 계곡에 위치한 계거(溪居)를, 그 다음으로 강가에 위치한 강거(江居)를 꼽았으며, 바닷가에 위치한 해거(海居)는 가장 열악한 곳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마을 선정, 즉 ‘택리’의 체계화를 이중환은 처음 시도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체계가 사대부로서의 삶이 아닌 농민과 상공인들의 삶과 그들 삶의 터전의 성격을 이해한 데서 나올 수 있는 논리라는 점에서 더욱 평가할 만하다. (양보경 교수 ‘택지리와 18세기 지리학’ 발표 자료․이하 양보경)

‘에 나타난 국토지리의 서술방식과 계보연구’를 발표하는 전종한 경인교육대 교수.

‘<택리지>에 나타난 국토지리의 서술방식과 계보연구’를 발표하는 전종한 경인교육대 교수.

<택리지>가 조선시대 획기적인 인문지리서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국토를 행정구역 단위가 아니라 생활권 단위로 구분해 기술한 체계 때문이다. 동일한 풍속 지역으로 구분한 지역의 내용은 삶과 문화지만, 지역 구분의 기준은 산과 하천이었다. 각 지역은 하천을 통해 동일한 생활권으로 연결되지만, 산줄기들은 이 하천 유역권을 구분하는 분수령이자 경계선이다. (양보경) 

산과 하천은 주거조건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만한 가장 좋은 곳으로 꼽은 ‘계거’를 최치원의 예를 통해서 매우 자주 등장시킨다.

남해현은 경상도 고성 바다에 있는 섬으로 육지와 물길로 10리 떨어져 있다. 섬 안에서는 금산(錦山)이 있고, 그 골짜기는 바로 최고운이 노닐던 곳이며, 고운이 쓴 글씨가 아직도 석벽에 남아 있다. 하지만 남학명(南鶴鳴), 이인상(李麟詳), 이만운(李萬運), 송병선(宋秉璿) 등이 이 산을 등반하고 유기(遊記)를 남겼는데, 그들은 모두 최치원과의 관련성을 완전히 배제했다. 그 중에서도 남학명의 <遊錦山記(유금산기)>가 장편의 명문인데도 일절 언급이 없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최치원 전설을 부각시켜 제시한 것은 이중환의 심중한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난세에 은둔한 지식인으로서 최치원의 자취를 애써 찾아 밝혀주려는 것이 그의 의도로 보인다.

‘의 명승관과 명승지’를 발표하는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사.

‘<택리지>의 명승관과 명승지’를 발표하는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사.

최치원은 전라도 옥구의 자천대 전설, 최치원 화상과 유적이 남아 있는 하동 쌍계사, 홍류동 계곡에서 최치원이 신발을 벗어두고 사라졌다는 합천 가야산, 최치원이 바둑 두던 곳과 시중들던 노파에 관한 전설이 있는 안동 청량산 난가대, 당나라 해상교통로로 최치원을 비롯한 유학생의 유학경로를 담은 전라도 영암, 최고운이 노닐던 곳으로 글씨가 남아 있는 남해현 금산 등 고려 왕건과 조선 이성계를 제외하고 제일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최치원이다. 이는 난세의 지식인으로 현세를 초탈한 신선 같은 인물의 이미지로 부각시키며, 본인의 감정이입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 異本考’를 발표하는 이도훈 성균관대 박사과정 수료생.

‘<택리지> 異本考’를 발표하는 이도훈 성균관대 박사과정 수료생.

문제는 왜 최치원 전설을 문화코드로 적극 부각시켰느냐 하는 점이다. 그 이유는 바로 <택리지> 저술 방향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정치적 경제적 지위를 상실한 사대부가 서울을 벗어나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대부가거처(士大夫可居處)를 찾는 선택의 고민에서 최치원은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전형적인 모델이며 가장 많은 흔적을 남겨놓은 인물이다. 정계에서 밀려나고 정치를 혐오하는 난세 지식인의 처세와 결말을 보여주어 여전히 현실적 의미를 지닌다. 여러 지역 현지인의 입에서 전승되는 전설과 바위, 누정과 산수는 그가 지닌 생생한 의미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안대회 교수 ‘택리지의 구전지식 반영과 지역전설 서술’ 발표 자료․이하 안대회)

토론자로 나선 서울시립대 배우성 교수가 의견을 밝히고 있다.

토론자로 나선 서울시립대 배우성 교수가 의견을 밝히고 있다.

잠시 이중환의 출신성분을 살펴보자. 이중환은 전형적인 사대부 가계다. 이중환의 5대조인 이상의는 광해군 때 도승지, 형조판서, 이조판서, 대사헌, 공조판서를 거쳐 의정부 좌참찬에 오른 인물이다. 이상의의 집안은 현손 때까지 과거 급제자가 50명이 나올 정도로 번창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북인이 몰락하면서 이중환의 집안도 남인으로 전향했다.

이상의의 넷째 아들 이지정의 후손이 이중환이며, 막내 아들 이지안의 후손이 성호 이익이다. 이상의의 장남 이지완의 아들 태호 이원진은 반계 유형원의 스승이다. <동국지도>를 그린 정상기는 이상의의 고손자인 이만휴의 사위다. 이중환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남인 집안인 사천 목씨 목임일과 혼인했다. 장인인 목임일은 대사헌을 지냈다. 이중환은 24세 때 과거에 급제, 정5품인 병조정랑까지 올랐으나 남인․소론․노론 간의 당파싸움에서 노론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박해와 유배를 당하면서 정계를 떠나게 된다.

토론자로 나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영 박사가 의견을 밝히고 있다.

토론자로 나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영 박사가 의견을 밝히고 있다.

결국 그는 정치적 박해와 유배로 인해 아예 중앙 정계를 외면하고 국토의 살만한 장소가 어딘가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자연 당나라에서 과거 급제하고 관리를 하면서 토황소격문으로 이름을 날린 뒤 귀국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최치원에게로 관심이 기울여졌을 것으로 충분히 이해된다. 사람이 살만한 가장 좋은 곳 ‘계거’도 결국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토론자 이지하 박사가 의견을 말하고 있다.

토론자 이지하 박사가 의견을 말하고 있다.

이는 자연 <택리지>의 명승관으로 이어지며, 그 중심은 단연 산(山)이다.

<택리지> 서술의 중심이 되는 산은 풍수형국과 관련되어 진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산의 생김새를 고려해서 산이름을 짓고 마을과 집터가 정해졌다. <택리지>를 풍수서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바로 산과 관련된다. 특히 산형을 기준으로 나라의 큰 명산이라고 하여 12명산을 꼽고 있다. 금강산을 제1명산으로 칭하고,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등 8개의 명산을 국토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에 위치한 명산이라 하여 영척명산이라 구분했다. 이 외에 칠보산, 묘향산, 가야산, 청량산을 사산으로 나눠 구분했다. 이는 산을 대표적 명승지로 취급하고 지역별․단계별로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명승지로서의 산은 영평의 백운산, 곡산 고달산, 광주 무등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흥양 팔영산, 순천 조계산, 대구 팔공산, 청도 운문산, 울산 원적산, 청하 내연산, 청송 주왕산 등을 꼽았다.

류제헌 교수가 토론자로 나서 의견을 밝히고 있다.

류제헌 교수가 토론자로 나서 의견을 밝히고 있다.

<택리지>의 명승은 산악, 명산, 하천, 조망점, 바위, 동천(구곡), 경작지, 사찰 등이다. 현재의 명승 기준과 비교하면 자연경관에 편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한 명승지정 현황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 25개소,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경관이 뛰어난 곳 3개소, 저명한 경관의 전망지점 10개소, 역사․문화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곳 44개소, 저명한 건물 또는 정원 및 중요한 전설지 등 경승지 25개소 등이다. (이원호 박사 ‘<택리지>의 명승관과 명승지’ 발표 자료․이하 이원호)

김종혁 박사가 의견을 밝히고 있다.

김종혁 박사가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산수가 좋은 곳 가운데는 생리가 박한 곳이 많다. 사람은 자라처럼 살지 못하고, 지렁이처럼 흙만 먹을 수 없다. 그래서 오직 산수만 보고 삶을 누릴 수는 없다. 10리 밖이나 반나절 거리 안에 산수가 아름다운 곳을 사두었다가 생각이 날 때마다 때때로 오가며 시름을 풀고, 혹은 머물러 자다가 돌아온다면 이야말로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고 산수에서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중환은 명승지와 가거지를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고 있다. (이원호)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120여종에 이르는 <택리지>의 이본에 대해서도 발표했다. 성균관대 박사과정생들로 이뤄진 10여명이 3년여에 걸쳐 모든 이본을 조사 분석한 결과, 유사점과 차이점을 밝혀냈다. 안대회 교수는 “<택리지>의 정본과 이본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3년여에 걸쳐 작업했다”며 “그 차이는 단행본으로 내기 힘들 정도였으며,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 차이만 반영했다”고 밝혔다. “이본작업은 당시 이중환이 <택리지>를 쓸 때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고, 이본을 만든 사람은 누구이며, 변화를 준 시대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200여명의 관련자들이 참석, 연구주제에 관한 발표와 열띤 토론을 지켜봤다. 주최측은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도출된 결과물은 ‘실학박물관 연구총서’로 발간해 관련 전문가 및 기관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제공하며, <택리지>의 이본을 조사하고 연구한 ‘정본 <택리지>’도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