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열두 번째 이야기… 택리지의 이중환이 ‘福地’라 칭했던 곳은?

백두대간에는 수많은 고갯길이 있다. 서민의 애환이 서려 있기도 하며, 주변 마을의 분위기를 따라서 지명을 붙이기도 했다. 대개 진고개, 진재라하면 긴 고개라는 뜻이고, 늘티, 늘재, 늘고개는 고갯길이 가파르지 않고 평평하게 늘어진 고개라는 뜻이다. 이런 지명은 주변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이름이다. 

속리산을 벗어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고개가 밤티재다. 속리산 북쪽을 동서로 횡단하는 고갯길이다. 2차선 도로가 지나간다. 고개 서쪽에 실제 밤티마을이 있으며, 진짜 토종밤이 많이 난다고 알려져 있다. 밤티재에서 살짝 오르다 다시 내려오면 늘재가 나온다. 충북 보은에서 다시 경북 상주로 들어왔고, 마을 성황당이 있는 곳이다.

옹골찬 바위산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야산 동쪽 사면의 장관.

옹골찬 바위산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야산 동쪽 사면의 장관.

늘재를 지나면 곧바로 청화산(984m)으로 치고 올라간다. 청화산은 늘재의 동쪽 봉우리로 산세가 우람하다. 늘 푸르러 아름다운 산이란 이름으로 붙여졌다 전한다. 정상에 표시목이 세워져 있다. 이 구간에서 유일하게 토산이다. 뒤를 돌아보면 속리산의 암봉들의 웅장한 모습들이 늘어서 있다. 청화산은 준봉이지만 그 옆에 속리산이라는 원체 뛰어난 산이 있어, 뭔가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경북 상주와 문경, 충북 괴산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백두대간에 있는 노랑무늬붓꽃.

백두대간에 있는 노랑무늬붓꽃.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청화산은 뒤에 선유동을 두고 앞에는 용유동에 임해 있다. 앞 둿면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산기슭의 농암면 비치마을 입구에는 같은 뿌리에서 6그루의 소나무가 자라 육송정이라 불리는 천연기념물 제292호인 반송이 있고, 청천면 삼송리에는 용송이라 불리는 천연기념물 제290호 소나무가 있다. 이중환은 청화산 일대를 복지(福地)라고 언급했다.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청화산 아래 마을은 오래 전부터 풍수지리에서 실제 소의 배속(牛腹洞)처럼 안온하다는 십승지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전란, 질병, 기근, 이른바 삼재가 들지 않는다는 십승지의 땅, 우복동이다. 지금도 비결을 믿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도 풍수는 여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청화산에서 바라본 옅은 구름 속에 지워질 듯 아스라한 여름 백두대간의 봉우리들이 길게 펼쳐져 있다.

청화산에서 바라본 옅은 구름 속에 지워질 듯 아스라한 여름 백두대간의 봉우리들이 길게 펼쳐져 있다.

우복동을 안고 있는 상주시 화북동은 우리나라의 면 단위 지역 가운데 가장 많은 명산을 보유한 곳으로 ‘삼산(三山) 삼수(三水)의 고장’으로 불린다. 삼산은 속리산(1,057m), 청화산(984m), 도장산(827.9m)을 말하고, 삼수는 속리산 천왕봉에서 낙동강, 금강, 한강이 갈리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어 갓바위재가 나온다. 조항산과 청화산 사이의 허리목인데, 평평한 구릉이어서 고개처럼 보이질 않는다. 바람이 심해, 키 큰 나무는 별로 없고, 억새가 지천으로 널려 자라고 있다. 지대는 넓어도 물길이 없어 야영지로는 적당치 않다. 서쪽의 의상저수지와 동쪽의 궁기리로 향하는 오솔길과 교차한다.

등대시호.

등대시호.

갓바위에서 암릉으로 치고 올라 조항산(961.2m)에 도착한다. 조항산은 남북으로 갓바위재와 고모령을 두고 있다. 동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는 궁기리로 향한다. 궁기리는 높은 단애 아래 평안한 산곡 분지에 펼쳐져 있다. 동네 이름이 심상찮은 그대로 견훤이 궁터를 조성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마을이다. 시간만 있다면 한 번 둘러볼만한 곳이다.

조항산에서 내려가면 예의 고모령(고모치)가 기다린다. 경북과 충북을 잇는 12㎞나 되는 험준한 재다. 옛날 부모가 없는 질녀와 고모가 함께 살았는데, 질녀가 우연히 병사하자, 이를 애달피 여긴 고모가 식음을 전폐하고 재에 올라 질녀의 이름을 부르다 죽었다 한다. 후대 사람들이 이를 기리기 위해 고모재라 했다고 전한다.

악희봉 삼거리로 향하다 괴산군 청청면 일원과 군자산 줄기를 되돌아 봤다.

악희봉 삼거리로 향하다 괴산군 청청면 일원과 군자산 줄기를 되돌아 봤다.

고모치에서 저 멀리 북쪽으로 대야산 봉우리가 어렴풋이 보인다. 몇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지 모른다. 발길을 재촉한다. 밀재(701m)가 나온다. 밀재는 고갯길답지 않게 남북으로 암릉과 암괴가 둘러지고 산자락마다 기암괴석으로 뭉쳐 있어 장쾌하기 그지없다. 양봉으로 꿀을 채취하던 곳이다. 우리말로는 벌(蜜)고개인 셈이다.

대야산은 밀재를 뒤에서 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대야산의 원래 이름은 선유산(仙遊山)이었다. 이중환의 <택리지> 복거총론에서는 ‘청화산 동북쪽에 있는 선유산은 정기가 높은 데에 모여진 국판이어서, 꼭대기는 평탄하고 골이 깊다. 위에는 칠선대와 학소굴이 있다. 옛날에 진인 최도와 도사 남궁두가 여기서 수련했다고 전한다. 이곳은 수도하는 자가 살 만한 곳이다’고 적고 있다.

복주머니란

복주머니란

대야산에서 촛대봉~불란치재~곰넘이봉~버리미기재로 이어진다. 촛대봉(668m)은 촛대 같은 봉우리에 무덤이 있으며, 능선길은 소나무와 바위가 잘 조화되어 있다. 불란치재는 ‘불이 났던 고개’가 불난 고개, 불난치로 변했다는 설과, 옛 명칭인 불한령(弗寒嶺․춥지 않은 고개)이 불한치, 불란치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곰넘이봉은 바위안부가 옛날 곰들이 넘어 다녔다는 곳이다. 버리미기재는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고갯마루다. ‘벌의 목 고개’라는 뜻으로 밀치, 밀재, 밀목치, 밀목재, 밀항 등과 같은 말이다. 고갯길의 경우 벌, 노루, 소, 돼지, 닭 같은 짐승의 목 부분에 빗대어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은티마을의 여근곡은 신라 선덕여왕의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사진은 여근곡의 모습.

은티마을의 여근곡은 신라 선덕여왕의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사진은 여근곡의 모습.

버리미기재를 지나 장성봉(915.3m)에 이른다. 이름 그대로 ‘긴 성’을 뜻하는데, 멀리서 보면 성이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라 한다. 장성봉은 백두대간 이 일대 지역의 전망대라 불러도 좋을 만큼 조망이 시원하다. 북쪽으로는 악희봉을 거쳐 백화산, 조령산으로 산태극을 그리며 흘러간 백두대간의 모습과 월악산, 주흘산, 대미산의 모습이 펼쳐지며 바위가 멋들어진 희양산의 전모를 볼 수 있다. 남쪽으로는 대야산과 조항산, 멀리 바위성채를 이룬 속리산까지 볼 수 있다.

장성봉에서 살짝 내려서지만 막장봉(868m)의 또 다른 봉우리로 연결된다. 막장은 광산의 막다른 갱도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막장봉은 절말에서 시작되는 골짜기에서 시묘살이골로 파고들어 막장처럼 연결되다가 그 끝에 봉우리가 솟아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산등성이 곳곳에는 기암괴봉이 많아 그 이름도 이빨바위, 삼형제바위, 달팽이바위, 백두산천지바위, 코끼리바위 등 천태만상이다.

모데미풀.

모데미풀.

막장봉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악희봉(845m)에 도착한다. 악희봉은 제1봉부터 제5봉까지 5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으며, 제4봉이 주봉이다. 악희봉 정상부근은 온통 기암괴석과 노송, 고사목으로 이뤄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인근의 희양산에 비해 바위의 덩치가 작을 뿐 아니라 모양이나 기묘한 형상은 더없이 아기자기하며 아름답다.

곧 이어 희양산을 배경으로 은티고개가 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은티는 여궁혈에 자리하고 있어, 동구에 남근을 상징하는 물체를 세워야 마을이 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하여 동구 송림 안에 남근석을 세워놓고 매년 정월 초이튿날에 정제일로 마을의 평안과 동민가족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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