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곳곳의 옛 우물들이 말라버린 곳을 확인할 수 있다. 전남 장흥 방촌리와 구례 운조루, 순천 낙안 읍성 우물이 말랐고, 경남 함안 정여창 고택, 전북 정읍 김동수 고택, 경북 의성 만취당 우물도 물이 없다. 이것은 우리나라 지역에서 지하수 저장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동안 지하수가 채워지는 양보다 소비되는 양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인간의 소비활동과 토지이용이 지하수 소비량을 늘리는 과정이 작용했겠지만 숲 관리에 의한 영향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먼저 외국의 자료들을 소개하여 우리 산림 녹화사업의 성공이 지하수 저장량의 감소와 관련된 가능성을 제기해본다.
먼저 한 번 생각해보자. 산에서 물이 마르는 건 왜 그럴까? 절대 물 부족 때문일까? 아니면 산을 개발하면서 물을 보존할 땅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나무가 물을 먹어버려서 그럴까? 그렇지 않다면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후변화 때문일까? 전부 답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우물은 왜 없어지고 물은 또 왜 마를까? 유량변화는 기후변화와 비례관계에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나무가 물을 많이 흡수해서 흐르는 물의 절대량이 줄어든 이유도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 산림녹화에 성공했지만 역설적으로 산에 있는 많은 나무들이 물을 흡수해서 물이 부족한 결과를 낳았다. 100년 전에는 가뭄이 반복돼도 지하수는 유지됐는데, 지금은 지하수마저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산은 우리의 토지이용에서 도시와 마을이 유역의 저지대에 자리 잡은 특성 때문에 중요한 물의 공급원이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개발된 지역에 내린 강수는 배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비나 눈이 내릴 때 하천을 따라 거의 대부분 바다로 흘려보낸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고 산림면적이 63.5%라고 보면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우리 수자원은 강수량 총량의 2/3 이상일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숲 관리에서 수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삼나무숲에서 구름과 안개가 얼마나 많은 물을 공급하는지 안정 동위원소를 이용해서 3년 동안 연구한 결과가 있다. 연 강수량 34%정도(연 평균 447㎜의 물이 구름과 안개로부터 공급됐고, 어떤 하층식물은 이용하는 물의 66%가 그 물에서 비롯됐다. 이는 수증기는 숲의 넓은 표면적에 맺혀 물이 되고, 그 물은 자연의 생기를 북돋운다는 결과인 것이다.
산은 물을 낳는다. 이는 산이 가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기여도다. 오래 동안 물을 잡아둘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이오톱과 같은 생태가꾸기는 물을 저장하는 데 오히려 역효과를 준다. 산에서 물이 내려오면 나뭇가지에 걸려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우회하거나 땅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산에 수로보다는 웅덩이를 더 많이 만들어놓으면 물이 고여 있다 서서히 땅으로 들어간다. 특히 숲속에서 물을 오래 머금고 있으면 생물다양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사실도 이미 밝혀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물관리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지붕에 흐르는 물을 깔대기로 받은 물 유입과 유출에 대해서도 조사를 했다. 전체 강수량의 약 80%가량이 유입됐다. 그냥 흘러나간 강수량은 불과 20%밖에 되지 않았다. 여기에 유입된 물 95.4%가 지하로 침투해서 지하수로 저장되거나 다시 이용할 수 있었다. 지붕에 깔대기만 둬도 이렇게 물의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산과 육식동물의 영향도 한 번 살펴보자. 미국 옐로스톤공원에서 늑대와 단풍의 관련성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늑대가 사라지자 포플러나무와 어린 나무를 뜯어먹는 초식동물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즉 늑대가 사라지자 초식동물은 그대로 살아남게 돼, 식물들을 모조리 뜯어먹어버렸다. 그러자 예로스톤의 단풍이 사라지는 풍경을 낳게 됐다. 육식동물도 나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 역으로 실제 늑대를 그대로 뒀더니 단풍이 서서히 늘어나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숲속 생태계는 비록 초식동물들에게 뿐만 아니라 육식동물과 인간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하수 변화가 일어나기 이전의 전통사회에서 지하수위가 지속가능하게 유지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간단하지 않다. 다만 전통사회의 마을 구조에서 물의 보존에 유리했던 몇 가지 가능성을 유추해볼 수는 있다.
높고 대체로 인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이 있는 한편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생활 주변에 가까운 야산에 의지하며 살았다. 지금도 대부분의 명산은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고 사람에 따라 일 년에 몇 번 찾기도 하고, 심할 때는 평생 가보지도 못하기도 한다. 사람의 접근성이 낮은 명산에는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보전(preservation)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야산은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앞서 소개한 유역의 물 보존 능력을 높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도록 야산 가꾸기에 더욱 공을 들여야 할 때다. 늘 그렇듯이 제대로 가꾸려면 대상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산은 물 관리와 아름다운 풍경의 바탕이다. 명산은 지키고 야산은 가꿔야 풍족한 삶이 영위된다. 문화는 자연과 사람이 낳은 산물이다. 문화와 자연은 서로 공존하며, 생태 서비스 없니 문화가 독자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의 ‘산이 낳는 물과 풍경’ 주제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