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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세계 최초의 제국 페르시아 대제국시대를 연 ‘세계문화유산’ 키루스대왕의 석묘 - 마운틴
세계 최초의 제국 페르시아 대제국시대를 연 ‘세계문화유산’ 키루스대왕의 석묘

BC 6세기부터 AD 7세기까지 동쪽으로는 인도 서부지역까지, 서쪽으로는 그리스 동부까지 지배한 세계 최초의 대제국 페르시아, 그 영광의 흔적을 한 번 찾아가보자. 가장 번성했을 시기는 BC 5세기 전후 다리우스대왕 때다. 페르시아제국시대를 활짝 연 대왕은 키루스대왕. 그의 무덤은 페르시아제국의 중심지였던 파사르가대(Pasargadae)에 있다. 시라즈(Shiraz) 인근 페르세폴리스 궁전을 건립하기 이전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파사르가대에 있는 페르시아 대제국시대를 활짝 연 키루스 대왕의 묘.

파사르가대에 있는 페르시아 대제국시대를 활짝 연 키루스 대왕의 묘.

들어서는 순간 4층의 기단에 높이 11m에 이르는 거대한 석묘가 보인다. 누가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 안내문에는 ‘키루스대왕의 시신은 황금관 안에 있으며, 그 옆에 무기와 유품 등이 같이 매장돼 있다. 무덤 안 유일하게 ‘나는 아케메니드 키루스대왕이다(I am Cyrus the king, on Achaemenid)’라는 글자가 석각으로 새겨져 있다’고 적혀 있다. 주변엔 키루스대왕의 개인정원과 석탑, 궁전 등이 그의 자취를 전한다.

석묘 안에는 키루스 대왕이 남긴 글씨로 알려진 '나는 아키메니드 키루스왕이다'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석묘 안에는 키루스 대왕이 남긴 글씨로 알려진 ‘나는 아키메니드 키루스왕이다’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페르시아제국의 키루스대왕은 그의 고향인 이곳에서 거대한 제국의 기틀을 다진다. 키루스대왕은 엄격히 말하면 키루스2세다. 메디아왕조의 마지막 왕의 외손자로 캄비세스 1세의 아들이자 키루스 1세의 손자다. 키루스대왕은 이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며, 이란 사람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리디아․바빌로니아 등 주변국을 잇달아 점령했으며, 다양한 민족의 문화와 왕조를 존중하면서 통치했다.

파사르가대 입구엔 세계문화유산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파사르가대 입구엔 세계문화유산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키루스대왕은 바빌로니아를 점령한 후 칙령을 내려 바빌로니아에 끌려온 유대인들을 풀어준다. 나아가 예루살렘성이 재건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고, 자신의 군인들에게 점령지 주민들을 약탈하거나 위협하는 행동을 금지시켰다.

파사르가대 주변엔 궁전 흔적만이 과거의 영화를 대변할 뿐이다.

파사르가대 주변엔 궁전 흔적만이 과거의 영화를 대변할 뿐이다.

역사상 키루스대왕처럼 여러 민족으로부터 칭송을 받은 왕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찬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적국이었던 그리스에서도 오랫동안 위대한 군주로 칭송받았다.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Xenophon)은 키루스대왕을 ‘비길 자가 없는 가장 위대한 세계 정복자’로 표현했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도 최고의 역사서 <역사>에서 ‘페르시아인들이 말하기를 다리우스는 상인이고 캄비세스는 장인인 반면 키루스는 아버지라고 한다. 다리우스는 늘 어떤 결과나 이익을 중시 여겼고, 캄비세스는 거칠고 가혹했지만 키루스는 자상하게 배려해 주었기 때문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 글자가 궁전 기둥 벽에 남아 있다.

그 당시 글자가 궁전 기둥 벽에 남아 있다.

유대인들조차 그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 ‘하느님의 목자’ 등으로 칭송했다.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알렉산더 대왕도 키루스대왕을 위대하게 여겨 그의 무덤인 파사르가대만은 파괴하지 않았다.

입구엔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란 이정표가 붙어 있다. 이젠 페르시아제국을 가장 번성시킨 페르세폴리스로 이동한다. 3대 다리우스대왕 때 페르시아제국은 중심지를 파사르가대에서 페르세폴리스로 옮긴다.

궁전 흔적은 매우 넓고 컸고,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여져 있었다.

궁전 흔적은 매우 넓고 컸고,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여져 있었다.

이란 지역의 고도는 전부 2000m 내외로 나온다. 수도 테헤란도 해발 1500~1700m를 나타냈다. 테헤란 바로 뒤 앨부르즈산맥의 정상은 다마반드산이다. 고도는 무려 5,604m. 테헤란에서 버스를 타고 수백㎞ 내려오는 길에 유심히 고도를 체크했다. 제일 낮은 고도가 1,500m였을 정도다. 페르세폴리스 가는 길에 2,500m 꼭지점을 찍고는 서서히 고도를 낮췄다. 이란고원이란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었다. 페르세폴리스는 해발 1,600m를 가리켰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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