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등산객이 최고를 기록하는 산행의 계절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산에 갔다 뜻밖의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산행 부주의는 자신의 한순간의 방심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말벌에 쏘이는 경우는 전혀 의외의 사고에 해당한다.
최근 말벌에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와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벌에 쏘인 환자건수는 5만 6천여 건에 달한다. 이 중 집계가 되지 않는 2015년을 제외하면 사망자가 모두 133명에 이른다. 올해도 말벌에 쏘여 사망한 사람이 11명이나 발생했다. 그 중 9월에만 6명이 사망했다. 9월과 10월에 말벌 피해가 특히 많은 이유가 뭘까?
말벌은 9월이 산란기다. 먹이를 채집하러 나가는 활동량이 연중 가장 왕성한 시기다. 벌은 기본적으로 둥지에 접근하거나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을 경우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산행을 하다 무심코 벌집을 건드리거나 벌집 근처에 접근하는 경우에 강한 공격성을 드러낸다. 피해는 이 때 발생한다.
말벌에 쏘였을 경우 미세하게는 통증과 함께 종창이 생기며 심한 발열증상과 붓는 증상이 나타난다. 나아가 전신에 광범위하게 황반이나 부종이 퍼져 나타나기도 한다. 민감한 사람에게는 두드러기와 복통, 기관지 수축 등의 현상도 나타난다. 더 심한 사람은 인부와 후두, 기관지, 상부기도 등의 부종에 따른 호흡곤란으로 순환기계 장애, 쇼크, 저혈압 등을 동반하다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일명 ‘쇼크’라 부르는 현상은 몸에서 특정물질에 대해 과민반응을 나타내는 것으로 매우 작은 양만 접촉해도 몸 전체에 걸쳐 증상이 발생하는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말한다. 이러한 증상들은 벌에 쏘인 후 보통 15분 이내에 발생하며, 빨리 나타날수록 더욱 심한 증상으로 연결된다. 전 인구의 0.4% 정도에서 관찰되고, 그 중 40%가 벌의 침에 있는 독성, 즉 봉독 알레르기 반응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벌에 쏘였을 경우,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손으로 문지르거나 침이나 물로 진정시키려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차가운 물로 환부를 씻으며 독을 혈액과 같이 짜내거나 차가운 물이나 얼음으로 환부를 씻어 내거나 대고 있으면 통증과 부종, 봉독의 확산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쏘인 자리보다 15㎝ 정도 위를 묶어주고 15분 정도마다 풀어주라고 말한다. 꿀벌의 경우 벌침의 특성상 쏘인 후 대부분 피부에 독침이 남는다. 이 때는 족집게나 핀셋으로 짜내듯 빼내지 말고 소독된 칼끝을 사용하거나, 칼이 없을 땐 깨끗이 씻은 카드로 쏘인 부위를 긁듯이 훑으며 침을 제거하는 것이 좋다. 손으로 짤 경우 2차 감염 우려가 있다. 말벌의 경우 한 마리가 여러 번 쏠 수 있어 피부에 독침이 남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민 반응을 보일 경우엔 기도를 유지하거나 인공호흡으로 산소를 투여하면서 부종에 찬물이나 아이스팩을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
하지만 말벌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고 있으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말벌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몇 가지 실험을 했다. 먼저, 말벌이 공격할 경우, 인체의 어느 부위를 먼저 공격하는지, 색상은 어느 색상에 유독 몰리는지, 공격거리는 어느 정도 되는지, 소리의 민감성 등 공격성향에 대한 것과, 둘째로 벌집 선호하는 장소가 어딘지, 집 제거 후에 다시 집을 못 짓도록 하는 방법, 기피제 등에 대한 벌집관리, 마지막으로 생태계에서 말벌의 역할이 뭔지에 대한 먹이원 분석 등으로 나눠 진행했다.
실험결과, 말벌은 사람의 가장 높은 부위인 머리 부분을 우선 공격하고, 머리카락 등 검은색 털이 있는 곳을 집중 공격하는 성향을 보였다. 다시 말해 노란색이나 흰색 등 밝은 색보다는 검은색에 대해 공격성이 훨씬 더 강했다. 공단에서 다양한 색깔을 허공에 걸어두고 실험을 진행한 결과, 검은색,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순으로 공격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벌이 검은색이나 갈색에 강한 공격성을 띄는 이유는 천적인 곰, 오소리, 담비 등의 색상이 검은 색 또는 짙은 갈색이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됐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공단은 등산 등 야외활동을 할 때에는 밝은 계통의 옷과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말벌의 공격에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말벌은 또 일상적인 음악, 대화 등 소리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이 있는 곳에서는 약한 진동에도 수십 마리의 말벌이 벌집 밖으로 나오는 등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반응을 볼 때 벌집이 달린 기둥이나 나무에 충격을 주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무심코 말벌집을 건드렸을 땐 팔을 휘젓지 말고, 머리를 감싸며 벌집에서 직선거리로 20m 이상 떨어진 곳으로 빠르게 벗어나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자신의 주변에 1~2마리 서성거릴 때 팔을 휘젓거나 옷을 흔드는 등 불필요한 행동을 자제하고 가능한 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말벌집으로부터 3m, 5m, 10m, 20m 이상 거리를 측정한 다음 벌집을 자극했을 때 3~5m 벗어난 경우 많은 수의 말벌 공격이 지속적으로 이뤄졌지만 10m는 공격하는 말벌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20m 이상 벗어난 경우 말벌들이 공격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따라서 공단은 말벌집을 건드렸을 경우 팔을 휘젓지 말고, 머리를 감싸며 벌집에서 직선거리 20m이상 떨어진 곳으로 빠르게 벗어나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말벌들은 집이 외부요인에 훼손됐을 경우, 같은 장소에 다시 집을 짓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집을 제거한 후 천을 걸어 두면 일정기간 머물러 있기는 했으나 집을 짓지 않고 곧 떠나는 결과를 보였다.
또한 말벌의 먹이원 분석에서는 말벌이 많은 양의 나방 애벌레 등 곤충을 잡아먹는 것으로 확인됐다. 말벌은 나방의 상위포식자로서 생태계를 조절하는 역할 등 말벌 생태계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했다.
공단은 이 같은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가을철 산행 시 긴팔, 긴바지 등 피부노출을 최소화 하고, ▲진한 향의 샴푸, 린스, 향수나 헤어젤 등은 꽃이나 식물향이 많아 말벌을 유인하는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하고, ▲산 속에서 알콜 발효성 음료, 탄산음료 등은 말벌을 유인하는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에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고 밝혔다.
신용석 국립공원연구원장은 “국립공원 내 야영장소나 탐방로의 휴식 장소 등에서 벌집 위치를 미리 파악하고 말벌 유무를 세심히 살피는 행동이 필요하고, 벌집이 있으면 바로 직원에게 알려달라”며 “말벌의 생태와 행동특성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안전한 탐방환경 조성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