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봄꽃타령

[이순원/소설가]/2010-04-22문화일보<푸른광장>

올해는봄이늦었다.고향집마당에서바라보면대관령꼭대기엔아직눈이남았다.그눈속에서도어김없이봄이와눈위로힘들게고개를내밀고노란복수초가피어나고한쪽에서는얼레지가날렵한제비꽁지모양의분홍색꽃을피운다.

다같은봄꽃이라도저마다피는시기가달랐다.언제나가장부지런을떠는건버들강아지고,그다음이매화,산수유,생강나무,진달래와개나리,앵두꽃과살구꽃,자두꽃과복사꽃순서다.모두비슷한시기에피는듯해도꽃들마다사나흘씩,적게는이삼일씩차이를두어핀다.

그런데겨울이길고봄이더디면이순서에큰변화는없지만일찍피는꽃들이미적미적하다가어느날모든꽃이사나흘새모두한꺼번에피어나는듯이보인다.그래도산길을걸으며이런꽃들을바라보는마음이얼마나즐거운지모른다.

바람꽃이나노루귀같이여리고도귀한봄꽃들이눈녹은자리에한두송이씩피어나는것이아니라어느곳에가면마치일부러가꾼밭처럼지천으로피어나봄바람에흔들리는모습을볼때면이것은마치어느봄날갓입학한초등학생아이들의학예회를보는것같다.얼레지가무리지어피어난군락지를볼때도그렇다.대관령어느한곳에그늘진곳은아직눈이고양지바른곳은야생화들의경연장이다.

일주일에한번씩주말마다그곳을찾아마을과마을사이의옛길을걷는다.이제는농사지을사람이없어몇년째묵히고있는묵은밭비탈진밭둑에노란꽃다지와흰냉이꽃이누가더땅을많이차지하나경쟁하듯피어나있고,산벚과산복숭아가내가이곳에서너를기다렸노라고피어나있다.

그러고보면봄이야말로불이다.산과들판에번진뜨거운불길이다.바람이불면봄의불씨가이마을에서저마을로,이산에서저들판으로훅훅날아다닌다.들판의기운만날아다니는게아니라꽃을본우리마음안의봄기운들역시봄바람에실려날아다닌다.

일부러작정하지않더라도봄에이나무저나무꽃을보는마음이그렇다.마을저쪽언덕에한무리의옅은분홍색구름처럼피어있는복숭아꽃을가만히바라보노라면,마치꽃술에라도취하듯저절로몸에흥취가돈다.

같은연분홍색이어도진달래꽃은때로바라보는사람의마음까지처연하게만드는무엇이있다.꽃빛도그다지화사하지않아색정과는거리가멀다.그러나복숭아꽃은바라보면바라볼수록,그러는동안때마침바람이불어와후두둑,꽃잎이라도날리면,그바람이저쪽산모롱이에서불어오는것인지아니면내마음속에서불어오는것인지조차홀망하게잊고만다.

옛날어른들도그렇게말했다.복사꽃사이로저쪽한길너머에서아지랑이가아롱아롱피어오르면들로일을하러나온남정네들은더이상일할맛이나지않는다고했다.에라,오늘못하면내일하지.춘색이동하여,밭가복숭아나무가지에호미를걸어두고한길로지나가는동네처자들을향해휘파람을길게휙휙불어대다가자기가밭에지게를지고왔는지그냥왔는지,낫을가져왔는지호미를가져왔는지조차잊고만다고했다.

여름지나과수원의복숭아를다따고나면,그복숭아밭어느나무에호미한자루가걸려있다.지난봄밭으로일을나왔던과수원집일꾼이동네처자에게눈이팔려그나무에호미자루를걸어둔것도잊고빈지게를지고그냥들어간때문이다.여름내내비를맞아호미날은벌겋게녹이슬고,호미자루도거무스름하게썩어있다.뒤늦게그호미를거두며과수원집의나이든주인이말한다.

“어이구,올해도여기도화살입은호미하나있네.”

사람만봄바람에도화살을입는것이아니다.그의손에쥐어져있던애꿎은호미도온봄과여름내내복숭아밭에서비를맞으며도화살을입는다는것이다.그런도화살까지는아니더라도,이봄저꽃그늘아래모두의마음안에밝은기운이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