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9) – 서귀포 이중섭거리, 소를 사랑한 천재화가

전날밤은제주의마지막밤이었다.

늦게까지술에취해차는거리에두고인근의모텔에쓰러졌다.

이때카메라가든가방도차안에있었다.

아침에일어나니면도도못하고,카메라충전도안되었다.

그러나시간이없다.

마지막날,제주를돌아봐야한다.

날씨는잔뜩흐렸다.

아침도굶고이중섭거리를걷는다.

이중섭이1951년가족과함께서귀포에1년간거주하였다고한다.

그때는전쟁중이므로생활고에많이시달렸을것이다.

굶주린배를움켜쥐고그림에열중했을그를생각한다.

[꽃게소년]

[이중섭거리약도]

Sympathy(연민의정)/PaulMauriat

[이중섭거리모습]

[물고기와노는세아이]

[봄의어린이]

벽면에서많은그림을걸어놓았다.

[여섯마리의닭]

[소와소년]

[활쏘는남자]

[서귀포극장]

[울부짖는소]

소를사랑하고유난히소의그림을많이그린이중섭이다.

일화한토막

이중섭의그림을보고그야말로한눈에삘이꽂힌맥타가트는이중섭을직접만나길원했다.

이중섭의친구인최태응의중재로자리을같이한자리에서맥타가트는..

"당신의그림은훌륭합니다.잘보았습니다.그런데당신의황소는꼭스페인투우와같이무섭더군요."라고평을했다.

이에이중섭은"뭐요???투우라고??내가그린소는그런,싸우는소가아니고착하고고생하는소,그중에서도한국의소란말이우다!!!"화가난이중섭은자리를박차고일어나나왔고몇날몇일은어린아이처럼엉엉울었다.

"이제까지보고그리고보고그린소를스페인투우에비교하다니내그림이그렇게보이면나는다틀렸어…"라며절망했다.

우여곡절끝에개인전이열리고’매일신문’에맥타가트가이중섭의그림을호평했음에도불구하고맥타가트가예약하고그림을사려고할때이중섭은단호하게응하지않았다.그래서최태응을통해몰래사갔다는일화가있다.<인터넷에서>

[이중섭거주지]

[이중섭거주지안내문]

[소의말]

[이중섭이그린소그림들]

이중섭은소를그리기위해하루종일들에나가소를관찰했다고한다.

고향인오산에서시작된소에대한탐구는,사업을하는형을따라생활하게된원산에서도이어진다.

"원산송도원부근의농부들이날마다나타나서하루해가저물도록소를보고있던중섭을처음에는소도둑인줄알고고발한일도있었대요."

"어떤농부는그를미친놈이라고쫓기도하고아마도소도둑이나소백정에미쳐서소옆에만나와있을거라는소문이있었대요."

이렇게그당시의이중섭의체험을말하는원산시대의증인도있다.

사물은그것을객체로대하는동안곧혐오감이생기거나싫증이생기는것이다.

그럴경우사물과사물관계자는절연되어있다.

그절연을어떤인식이나사랑,지혜를통해서극복하고사물을자기화하는것이가장깊은철학이면가장좋은문학이고예술인것이다.

이중섭은그런일을해낸것이다.

누구나그렇게되기란불가능하다.

(출처:이중섭평전중에서)

[이중섭사진]

이중섭(李仲燮)

서양화가(1916~1956).호는대향(大鄕).야수파의영향을받았으며향토적이고개성적인그림을남겼는데,우리나라에서구근대화의화풍을도입하는데공헌하였다.생활고로그림그릴종이가없어담뱃갑은종이에많이그렸는데,예리한송곳으로그린선화(線畫)는표현의영역을넓혔다는평가를받는다.작품에〈소〉,〈흰소〉,〈게〉따위가있다.<출처:다음국어사전>

[부엌]

[광]

[쉼터]

[이중섭거주지전경]

[정낭]

[두어린이와복숭아]

[바닷가의아이들]

[연꽃밭의새와소년]

[저울질하는사람]

(사진:2010-10-12제주도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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