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관은 야영산행 마니아…“힘든 산행으로 내면의 부족 위로받아”

“인간의 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자연환경이 아무리 달라져도,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입니다. 산에서 자연을 느끼고 자연과 함께하며, 이를 호흡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존재를 다시 깨닫는 지혜를 배우고 싶습니다.”

유명한 철학자나 수필가의 말이 아니라 냉철한 법을 집행하는 양승태(梁承泰, 62) 대법관 겸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수십 년간 산에 다니면서 체득한 삶의 진리이며 교훈이다. 미약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자연에게서 배우는 겸허한 자세, 즉 인간의 도리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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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산행 마니아 양승태 대법관이 눈 덮인 화악지맥을 일행들과 함께 가고 있다.

그의 겸허한 자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35년 동안 법관으로 지내오는 동안 항상 나에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느끼고 자신을 채찍질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무거운 느낌을 지우지 못합니다. 내가 험한 산행을 좋아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몸이 부서지는 듯한 힘든 산행으로 자신을 시험하고 담금질함으로써 다소간의 위안을 얻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7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법관에 입문한 이후 대법관에 오른 양 대법관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산행으로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으니 후배 법관들의 귀감이 되고, 또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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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이 애매할 때는 어김없이 지도를 읽으며 방향을 정확히 판단한다.

그가 등산, 특히 험한 산행을 좋아한다기에 한번 동행하기로 했다.1박2일간 화악지맥 야영산행이었다.오전 9시쯤 일찌감치 도마치고개에 도착, 산행에 나섰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지점이기도 한 곳이다. 그가 화악지맥을 선택한 이유는 지난 2004년 2월부터 2년 5개월간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뒤부터 남한의 9정맥을 하나씩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행은 그의 경남고교 동기인 ‘영원한 산꾼’과 고교 후배, 부장 판사로 있는 후배 법관 2명, 비서 등 모두 7명.

2월 말이었지만 예년보다 유달리 눈이 많아 날씨는 꽤 추웠다. 도마치고개에서 화악산으로 오르는 능선 초입부터 짙은 안개가 내려 시야는 불과 몇 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길 양옆 나뭇가지엔 상고대가 살포시 내려앉아 멀리 보지 않아도 신비감과 아름다움을 제공했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쌓인 상고대는 그 두께만 1㎝가 넘었다. 두꺼운 상고대를 가끔 맛보며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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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산악회 회장으로 있을 때 산행 모습. 그는 오히려 험하고 힘든 산행을 즐기는 편이다.

대법관은 영락없는 산악인의 모습이었다. 3인용 텐트가 든 배낭은 무게가 20㎏는 안됐지만 10㎏는 훌쩍 넘어 보였다. 앞에는 지도를 묶은 줄을 달고 방향이 애매할 때는 언제든지 나침반으로 지도와 대조하며 확인했다. 그런 노하우를 언제 터득했고, 언제부터 산에 다녔는지 궁금했다.

“경남고교 시절 누가 나를 특별히 산에 이끈 것도 아니고, 별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마치 산에 홀린 듯 저절로 산에 갔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겁니다. 아마도 성격 자체가 산에 파묻히는 데 맞는 것 같습니다. 백담사 회주로 계시는 오현 큰 스님이 ‘저 사람은 법관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비구승이 되었을 거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나에게 그런 면이 있다면 내가 산에 오르게 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봅니다. 결국 타고난 성격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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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7일 법원산악회 청량산 등산하면서.

그의 고교 시절은 1960년대 초반이다. 무려 50년 전부터 산에 다녔다는 얘기다. 모두를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산에 다니면서 자연을 배우고 인생의 호연지기를 기르며 삶의 방향을 세웠다. 지도를 읽고, 야영을 하고, 산행을 하는 건 그의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여유였다. 산의 큰 가르침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 취미생활은 항상 재미있었다.

그는 산에 다니면서도 공부를 전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산과 공부를 그 스스로 균형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균형감각은 어떻게 보면 그의 법관 생활에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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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8일 한강기맥 종주 중 구목령을 지나 운무산으로 향하는 대법관. 영락없는 산악인의 모습이다.

“서울대 법대 시절엔 별로 산악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방학 때가 되면 고시공부 핑계로 깊은 산사에 들어가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산이나 헤매고 다녔습니다. 특히 재약산 표충사의 말사인 내원암과 강화도 고려산의 백련사에 머물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기름램프로 불을 밝혔고, 겨울에는 직접 장작을 때서 온돌방을 따뜻하게 했던 40여 년 전의 일을 기억하는 것은 단지 젊었을 때의 추억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생활에 산이 주는 의미가 녹아있다는 말같이 들렸다. 197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의 법관생활은 순탄했다. 그러나 그 스스로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혼자 있어도 잘 놀고 잠시라도 뭔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1982년 법원의 장기연수로 런던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법의 깊이를 몸소 체험하기도 했다. 미지의 세계로의 도전은 산을 다니는 사람들이 지니는 공통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혼자 떨어져 몸으로 부딪힌 유학생활은 외롭고 힘들었지만 산행을 통해 쌓은 다양한 도전과 경험들로 이겨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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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과 화악지맥 종주를 같이 한 일행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양승태 대법관.

1986년엔 제주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1991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차장, 특허법원 법원장 등을 거쳐 지난 2005년 2월 대법관에 올랐다.

사실 대법관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인생이 그렇듯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하고, 선후배의 신망이 두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 법관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었다.

“법관의 제1차적 임무는 법적인 분쟁을 해결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분쟁의 해결자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그 분쟁의 당사자들로부터 과연 분쟁해결의 주재자가 될 만 하다는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을 인격적인 덕목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분쟁의 당사자 어느 쪽에도 기울어짐이 없이 양쪽의 이야기를 진솔한 마음으로 경청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갖추어야 합니다. 셋째, 충분한 경험과 법 이론에 의해 분쟁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실력을 구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관의 길이 힘들고 외로운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질을 구비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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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산 위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 뒤 짐을 싸고 있는 대법관.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분쟁을 판단해야 하는 법관은 누구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누구를 미워할 수 없는 정의의 판단을 항상 해야 한다. 그 판단은 다른 사람에게 자문을 구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결국 법관 자신의 몫이다. 그가 산에서 얻는 균형감각은 결국 법관으로서의 자질을 알게 모르게 키워놓았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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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간의 화악지맥 종주의힘든 산행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대법관.

‘양승태 대법관은 유연한 원칙주의자’에 계속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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