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중호 총장의 사진사랑 50년…“사진은 삶의 철학”

“사진은 삶의 철학입니다. 사진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강 알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빨리 가는 길은 없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뿐이지요. 잠시 시간을 단축시켜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그때마다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진 찍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빨리 배워 누르기만 하면 나오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지 못할 겁니다. 피사체의 특성, 빛, 주변 배경 등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완성된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50여년 사진과 함께한 선우중호(鮮于仲晧․70) 광주과학기술원 원장(전 서울대 총장)의 사진에 관한 철학이다. 아니 인생철학이다. 사진이 뭐기에 인생철학까지 담고 있을까? 그의 사진인생 여정을 둘러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선우 원장이 카메라를 처음 접한 건 1960년대 초 돈 없고 못 먹던 어린 시절이다. 경기고를 졸업(1958년)하고 서울대 공대 다닐 때 가정교사 하면서 받은 돈 몇 달치를 모아 중고 라이카Ⅲf를 장만한 것이 카메라와 인연의 시작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막연히 뭔가를 담고 싶어서’ 였을 겁니다. 공대였기 때문에 사진보다는 카메라의 기계적 특성에 더 관심이 많았는지 모르죠. 카메라는 첨단기술과 창의성의 집합체입니다. 지금도 새로 나오는 카메라엔 항상 관심이 가죠. 부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면 신기할 뿐이고, 감탄이 절로 나오죠.”

사진으로서든, 기계로서든 카메라를 그렇게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마침 서울대 공대 산악부에 가입해 있던 터라 산에서 카메라를 사용할 기회가 많았다. 자연이 주는 매력에도 알게 모르게 빠졌다.

그러나 선우 원장은 자연보다는 사람의 장면에 먼저 매료됐다. 유서프 카시(Yousuf Karsh)의 강렬한 흑백 인물사진에 많은 감동을 받은 터였다. 카시는 처칠, 헤밍웨이, 오드리 헵번 등 당시 세계를 움직이는 인물을 흑백사진에 담아 찬사를 받은 세계적인 사진가이다. 카시의 작품을 통해 선우 원장은 사진을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영혼이 하나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 사람들의 슬프고, 기쁘고, 즐겁고, 불쾌하고, 언짢고, 늙었고, 젊었고 등등 모든 모습을 담아내자.’ ‘직업에 따라서 나오는 다양한 표정도 있을 거야.’ 인물사진을 찍기 위한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그 각오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문 사진가도 아니고, 아마추어 작가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니 무안을 당하기 일쑤였다.

“‘아, 꼭 사람을 찍을 건 아니구나’라고 느꼈죠. 자연히 관심이 자연에 기울어지기 시작했어요. 가장 무난하게 찍을 수 있는 피사체가 자연이고, 자연의 소재는 무궁무진합니다. 또 자연을 찍을 때만큼 행복한 순간도 없었어요.”

자연을 상대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흔한 돌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땅을 쳐다보기도, 강을 휘젓고 다니기도, 해변을 거닐면서 무슨 꺼리라도 없는지 둘러보기도 했다. 대상은 제한 없었다. 돌뿐만 아니라 산, 나무 등 인위적인 것보다 가급적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을 담으려 했다.

출사 갈 때는 대부분 특정 대상을 정하고 나갔다. 한 번은 물안개를 찾으러 나섰다. 그 장면 찾기기 쉽지 않았다. 허탕 치기 일쑤였고, 의외로 생각지도 않았던 다른 장면을 목격하곤 담고 돌아왔다.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아름다운 장면을 담은 칼라사진은 볼 때는 화려하고 좋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찍는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흑백은 조금 달랐다. 찍을 때부터 현상 인화까지 모든 과정에 작업의 구상과 의도가 들어갈 수 있다. 우선 ‘이번엔 새가 날아가는 장면을 찍겠다’는 생각을 하고 출사한다. 장면을 연상한다. 빛은 어떤 상태여야 하고, 주변 배경은 어떻게 되고, 노출은 어느 정도로 하고, 셔터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카메라의 모든 기능을 감안해서 며칠 기다려 한 장면을 잡는다. 현상, 인화하면서도 여러 실험을 해볼 수 있다. 그 결과 겨우 자기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름다운 색의 조화보다는 각각의 색이 어느 정도로 흑백으로 표현되는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흑백사진 촬영의 기본요체이다.

“왜 흑백을 고집하느냐면 흑백사진과 컬러 사진의 차이를 책을 읽는 것과 TV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고 본다. 컬러사진이 눈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흑백사진은 뇌에 즐거움을 준다고 예를 든다.”

선우 원장의 흑백사진에 대한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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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중호 총장의 작품집 <패밀리존>에 실린 흑백사진

그가 사진을 접한 건 50여년이 지났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이 작가의 수준으로 빠진 건 아니었다. 사진이 선우 원장의 인생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였다. 50대를 넘기며 정년을 대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 사이에도 아마추어로 사진 활동을 하는 원로토목공학자 5명이 토영회를 만들고, 포토아이리스 동호회 회장도 맡는 등 카메라는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본격 사진작가의 반열에 들기 시작한 건 서울대 총장을 퇴임한 1998년부터. 퇴임 직후 선우 원장은 중앙대 사진아카데미에 몰래 등록했다. 당시 만58세로 최고령 수강생이었다. 수십 년 간 독학으로 터득한 카메라 지식에 2년간 사진아카데미 수강으로 이론으로 재무장했고, 그동안 실기도 더더욱 다졌다. 대학 때 산악부 활동으로 이미 산에는 익숙했다. 자연 경기고 산악부 OB모임인 라테르네와 같이 지내며 전국의 산천으로 누볐다.

2001년엔 토영회 회원 5명이 인사동 갤러리에서 그동안 찍은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가족과 함께 나섰다. 사진찍는 취미는 부부가 부딪칠 일이 없는, 부부사이를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부부와 두 딸이 찍은 사진을 모아 2009년 연말 첫 개인 전시회를 인사동에서 열고 ‘패밀리 존(FAMILY ZONE)’이라는 사진집을 발간했다. 사진집 머리말에서 밝힌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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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중호 총장의 작품.

‘사진을 하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다기보다 남들과는 달리 매우 고마운 일로 생각한다. 지난 1990년대 말 갑작스럽게 집에서 한가한 시간을 가져야만 했을 때에 사진은 내게 일거리라는 귀한 선물을 주었다.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심적인 안정과 삶의 활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마 사진 찍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회상해 보기도 한다.(후략)’

카메라를 잡은 지 50년이 넘었고 단체전, 개인전까지 열었으면 전문가, 아니 요즘 말하는 ‘달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내셔널 지오그래피에 매번 게재하는 세계적 사진작가 스티브 멕커리(Steve McCury)는 사진 30만장을 찍으니 비로소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를 알겠더라고 했어요. 나도 그동안 몇 십만 장을 찍었지만 제대로 생각해서 찍기 시작한 건 이제 10,000장도 못 찍은 것 같은데요. 그걸로 사진 찍었다고는 할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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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중호 총장이 출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아마추어 노 사진작가의 까다로운 사진관이다. 그의 사진에 대한 철학은 계속 됐다.

“사람들은 사진을 너무 쉽게 생각해요.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사진이 나오니 아무도 마구잡이로 시작하나, 쉽게 시작한 사진을 대부분 쉽게 끝내죠. 몇 년을 넘긴 사람이 많지 않아요. 한계나 고비가 왔을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 연구하고 파악할 필요가 있어요. 우선 무엇을 찍을 계획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부터 면밀히 분석해야 합니다. 결과에 대한 희열이 점점 더 커지면 사진에 입문해도 됩니다.”

선우 원장은 철학을 담은 사진입문에 대한 책을 발간할 생각이다. 흔히 나와 있는 대중적 입문서가 아닌 사진에 대한 혼과 철학이 담긴 그런 책을 세상에 보이고 싶어 한다. 가볍게 생각하는 사진이 결코 가벼운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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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존>에 있는 흑백 작품.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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