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도 관상(觀相)이 있다.

nari200이제 곧 봄의 전령인 화신(花信)이 올 때가 되었다. 꽃은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없는데 무슨 관상이 있으랴마는 꽃마다 묻어나는 분위기가 있다.

거기에 더하여 전해오는 꽃의 전설(Legend of the Flower)은 대부분 사랑이야기이거나 슬픈 이야기들이니 꽃 앞에서는 경건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불교의 연꽃이나 부활절의 백합처럼 종교적인 꽃도 있다. 꽃은 군락(群落)지어 피는 것이 더 아름다운 것도 있고, 홀로 피는 게 더 제 멋이 나는 게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내가 칸추리 보이(country boy)인 탓인지 화분에서 흔히 보는 고급스런 꽃들은 별로다.

몇 해 전, 이곳 산에서 나리꽃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든지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을 느꼈었다. 고향의 산에서 종종 보던 꽃이기 때문이다. 초록의 풀밭에서 홀로 빨간색으로 우뚝 솟은 나리꽃은 성깔이 있으며 도도한 여인을 연상케 한다. 미국에서는 빨간 머리와 얼굴에 죽은깨가 있는 여자는 성깔이 있는 여자라는 속설이 있다.

나는 하얀 코스모스가 좋다. 요염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으며 고급스럽지도 또 그렇다고 천하지도 않은 그 편한 모습 때문이다. 키는 멋없이 크나 그걸 감당 할 만큼 줄기나 잎새가 공학적으로 설계된 그런 모습이 좋다.

동서를 막론하고 꽃을 여자로 비유한 글들이 많다. 아름답기 때문이리라. 흔히 말하는 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이란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크레오파트라도 절세미인이 아니었으며 고종이 사랑한 여인도 민비가 아니라 엄상궁이었으니 그 점은 동서가 마찬가지인 것 같다.

date300그럼 외모가 아닌 그 무엇이 여성의 매력을 더 하는 것일까?

사실 그 답은 나도 모른다. 사람마다 그 관점이 서로 다르겠지만 설령 안다 해도 그걸 말하면 당장 ‘당신 주제파악이나 제대로 해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 입을 다물 것이다.

다만 재벌 2세들이 유명 여배우와 결혼 후에 이혼하는 것을 보면 외모보다는 그 내면(內面)이 더 중요하다는 말일 텐데 어쩌다가 한국이 성형대국이 되었는지 그게 걱정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곰보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는데 본인 고유의 개성미를 지우고 ‘탤런트 아무개처럼’ 만들었으면 직업도 그렇게 바꾸는지도 궁금하다.

사랑의 여신 비너스(Venus)는 금성에서 따 온 말이다. 일몰(日沒) 직후와 일출(日出) 직전에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별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계명성(啓明星), 영어에서는 Evening Star 혹은 Morning Star라 부른다.

국화 앞에서 / 김재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귀밑에 아직 솜털 보송보송하거나
인생을 살아도 헛살아 버린
마음에 낀 비계 덜어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사람이라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니듯
꽃이라도 다 같은 꽃은 아니다.
눈부신 젊음 지나
한참을 더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꽃.

국화는 드러나는 꽃이 아니라
숨어 있는 꽃이다.
느끼는 꽃이 아니라 생각하는 꽃이다.
꺾고 싶은 꽃이 아니라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꽃이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은
가을날 국화 앞에 서 보면 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굴욕을 필요로 하는가를.

어쩌면 삶이란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견디는 것인지 모른다.
어디까지 끌고 가야 할지 모를 인생을 끌고
묵묵히 견디어내는 것인지 모른다.

3/1/16
cane091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