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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이 필 때.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한여름에 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초가을 서늘할 때 서지(西池)에서 연꽃 구경을 위해 한 번 모이고, 국화가 피면 한 번 모이고, 겨울철 큰 눈이 내리면 한 번 모이고,

세모(歲暮)에 분매(盆梅)가 피면 한 번 모이되, 모임 때마다 술ㆍ안주ㆍ붓ㆍ벼루 등을 설비하여 술 마시며 시 읊는 데에 이바지한다.

모임은 나이 적은 사람부터 먼저 모임을 마련하여 나이 많은 사람에 이르되, 한 차례 돌면 다시 그렇게 한다.
아들을 낳은 사람이 있으면 모임을 마련하고, 수령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마련하고, 품계가 승진된 사람이 있으면 마련하고, 자제 중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있으면 마련한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이 쓴 ‘죽란 시사첩(竹欄 詩社帖)’의 서문(序文) 중 일부이다. 다산의 나이에서 아래, 위로 네 살 범위내에서 15인으로 친목계를 만들었다. 하필이면 같은 시대에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기에 그 정을 나누자는 게 친목계의 목적이었다.

자연을 칼렌다(calendar)로 삼은 그의 발상(發想)에서 낭만(浪漫)과 정감(情感)이 배어 나온다.

당시 남인들은 벽파에 밀려서 거의 벼슬을 못하고 있었다.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에 윤지눌 선비의 이야기가 나온다. 형편이 어려워서 친구들의 술만 얻어 먹어야 했든 남편이 고민하는 것을 본 부인이 집을 팔자는 제의를 했다.

집 팔아서 술값을 댄다는 게 말이 안 되었지만 부인은 지혜로운 여자였었다. 흉가는 집값이 싸니 이 집을 팔아서 사면 돈이 남을 것이라는 논지인데, 대신 친구들이 관복을 입고 와서 밤샘을 해 주어야 귀신을 쫓아 낼(防)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인의 계획대로 집을 팔고 흉가로 이사하려고 도배를 했는데 다음 날 가보니 도배며 창호가 다 찢어져 있었다. 도배 꾼들이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도망을 갔다. 다시 도배를 하고 이사를 하여 친구들을 불러다가 방(防)을 한 후에는 그런 문제가 안 생겼다.

부인의 기지로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싼 값에 집을 늘려간 셈이 되었다. 윤 선비는 본인 몫은 물론 친구들의 외상 술값까지 다 갚아 주는 호기까지 누릴 수 있었다.

옛날 한국에서 복부인들이 유행 했었다. 대부분 그들을 비난 했지만 나는 그들이 사업가라는 생각이었다. 돈이 될 몫을 용케 알아 본 사람들이고 그게 사업가적인 안목이니 그렇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흘렀지만 나는 고향의 봄 노래를 들으면 내 고향이 눈에 선하다. 노래에 나오는 그 살구나무가 우리 동네에 많았기 때문이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 오다 보면 화사한 살구꽃이 아침보다 더 많이 피어 있고는 하였었다.

살구의 신 맛, 어쩌면 다산도 18년간의 강진 유배생활에서 그 신 맛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곧 살구꽃이 필터인데 그 죽란시사의 회원들은 그것을 알고나 있을까? 3/3/16

(배경음악은 노부부가 연주한 것입니다. 남편은 키보드, 부인은 오까리나, 유 투브에 올린 것을 MP3로 컨버트하여 올립니다. 노년의 삶, 이 정도라면 만점이 되겠지요?)

cane0913@hanmail.net

살구꽃이 필 때.”에 대한 5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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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데레사

    살구꽃 피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 본들 반겨 아니 맞으리.

    이런 시가 있지요. 우리 아파트 마당에도 살구나무가 몇그루 있어서 꽃이피면
    저는 늘 이 시를 생각합니다.

    1. 김진우 글쓴이

      인용하신 시의 시상이 참 좋습니다.
      살구꽃이 벚꽃보다 더 화사한 것 같은데
      잘 안 팔리는 것 같습니다.
      미국 마트에 살구가 있기에 사왔더니
      한국 살구맛이 아니라서 좀 실망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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