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심(春心)을 두견(杜鵑)이 먼저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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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四季)가 분명한 곳에서 사는 것도 축복 중의 하나다. 계절에 따라 긴장도 하고, 이완도 하면서 은연중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정작용(自淨作用)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엄동설한(嚴冬雪寒)이 아니라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 또한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다림에는 희망이라는 의미가 내재(內在)되어 있으니 봄이 되면 누구나 다 작은 소망 하나를 이룬 셈이다.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기다림 후에 얻어 지는 것, 그 환희(歡喜) 역시 상대적으로 클 것이라 생각된다.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多情歌)엔 봄의 정경이 다 들어 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하얀 배꽃, 거기에 초롱초롱한 은하수가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데 두견의 울음소리, 설령 시인이 아닐지라도 뭔가를 써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만 하다. 달 빛에 잘 어울리는 꽃이 또 있다. 박꽃이나 메밀 꽃이 그렇다.

꽃은 가끔 철없이 피기도 하지만 짐승들은 그런 실수가 없다. 생겨날 새끼들이 무난히 성장할 수 있는 기후를 계산하여 짝짓기를 한다. 일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현자(賢者)일지도 모른다.

애절하게 우는 두견의 소리에 옛 시인들이 시정(詩情)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두견은 탁란(托卵)을 하는 새라서 새끼는 다른 새가 키운다. 그것도 입양된 어미의 새끼는 둥지 밖으로 밀어내어 죽게 만드는 좀 고약한 DNA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새를 별~로 안 좋아한다.

이곳엔 두견대신 딱따구리가 봄의 전령이다. 두견처럼 구슬피 우는 게 아니라 목탁을 두드리며 봄을 맞으니 훨씬 개운하다. 신방(新房)을 꾸미려고 나무에 구멍을 뚫는 소리이다.

집을 크게 멋지게 만들어야 짝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딱따구리도 어쩔 수 없는 속물(俗物)인 셈이다. 아직 그 녀석들이 조용한 걸 보면 봄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곳 날씨는 섭씨 25도이다.

봄이 되면 흔히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말을 한다. 그러나 내가 늙으며 보니 봄은 갈수록 반가운 계절이 되는 것 같다. 우선은 기후가 따뜻해지니 좋고, 새 순을 내는 나무며, 새 싹을 내는 풀들이나 꽃들이 반갑고 또 사랑스럽다. 녹색(綠色)도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多情歌 _ 梅雲堂 李兆年(1269년~1343년)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 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梨花月白三更天 (이화월백삼경천)
啼血聲聲怨杜鵑 (제혈성성원두견)
儘覺多情原是病 (진각다정원시병)
不關人事不成眠 (부관인사부성면)

말 없이 왔다가 다시 말없이 떠나는 그 계절들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년 이맘때가 되면 또 다시 초조하게 기다릴 봄이 이제 문턱에 와 있다. 봄이여 어서 오소서. 3/8/16

Moonlight on The Color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