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찾아 왔네, 우리 산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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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찾아 왔네, 우리 산골에.

국민학교 때 유리병에 반딧불을 잡아 넣고 그 불빛으로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학교에서 배운 형설지공(螢雪之功)을 흉내 내본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기질이 평생 연구원을 하게 만든 것 같다.

어제 밤에 금년 들어 처음으로 반딧불을 보았다. 옛 친구를 만난 만큼이나 반가웠으니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여기에도 해당되는 듯싶다.

자연의 질서, 어찌 보면 그게 무언의 약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 다시 오겠다는 언질은 없었지만 매년 그 때가 되면 기다려지는 것들이 계절에 따라 있다. 어제 밤에 만난 반딧불도 그 중 하나이다.

서울 태생들은 어렸을 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대부분 옛날 거리나 극장이나 백화점 위주로 이야기를 하지만 나 같은 촌놈들은 냇가에서 고기를 잡던 이야기나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이야기, 한 여름 우물에 넣어 두었던 수박 먹은 이야기 등등이 전부다.

요즘은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있다는 것 그보다 더 친밀감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촌놈이라는 별칭이 더 정겹다.

그럼에도 한국에 있을 땐 양식집에서는 촌놈 소리를 안 들으려고 좀더 세련된 연출을 하려 들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살아 보니 다른 민족의 음식이나 풍습을 모르는 게 창피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민족이 다르니 당연한 것이고, 물어 보면 또 친절히 알려 준다. 또 그런 걸 통달했다고 해서 더 세련된 것은 물론 아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레스토랑에 가면 음식주문 하는 게 고역이었다. 메뉴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면 빵은 soft를 원하느냐 hard를 원하느냐, 고기는 well-done이냐 medium이냐, 술은 어느 것을 원 하느냐, 수프는? 디저트는? 음료는? 등등 말도 짧지만 무엇이 내 입에 맞는지를 알 수 없으니 난감했었다.

그 촌놈에게 어제 반딧불이 찾아 온 것이다. 어찌 보면 서산 갯마을의 그 반딧불과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원산지가 어디였든 그게 무슨 문제랴. 반가운 마음이 더한데. ㅎㅎ 6/3/16

반딧불이 찾아 왔네, 우리 산골에.”에 대한 5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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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미김

    ?ㅎㅎ “반딧불 원산지 라는” 말도 운운 하실줄 아시고… 제가 댓글 달기가 조금 더 편합니다. 제가 아주 꼬맹이적에 시골 친척들 집에 가곤 했지요. 한밤중에 뒷간에 갈땐 꼭 누군가를 깨우곤 했는데 바로 반딧불( 그곳 아이들은 도깨비불 이라 하더군요) 때문 이였었죠. 깜깜한 밤중에 저 멀리 갯벌위에 여러개의 반딧불이 떠 다니는데 아닌게 아니라 꼭 도깨비불 같았지요.

    그곳 여름은 보낼만 하십니까? 이곳 AZ. 는 요즘 계속 115ㅇ.
    어제 퇴근길에 지나가던 어떤분이 저를 보더니 다짜 고짜 Hot enough for you?!!! 하길래 저도 다짜고짜 큰 목소리로 I love it!!! 하고 서로 호탕하게 웃어 버렸지요. 그게 서로 위로 하는거였다는걸 오는길에 알았지요. 선생님의 “반딧불 선물” 감사합니다.

    1. 김진우 글쓴이

      115라면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ㅎㅎ
      이곳은 82도입니다만 주말에는 좀 더 따끈해진답니다.

      해변가의 도깨비불은 반딧불이 아니라
      조개 껍질이 모여있는 곳에서
      인(燐: phosphorus)이 비산(飛散)되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제 고향이 충남 서산인데 바다까지는 30분 정도 걸어 가야 있습니다.
      도깨비불은 고향에서는 못 보고
      학창시절에 강화 소렴섬에 캠핑을 가서 처음 봤습니다.

      도깨비는 왼발을 걸어서 넘어 트려야 한다면서
      불빛이 있는 곳으로 갔었지요.
      머리는 곤두 섰지만 여학생들 때문에 용감한 척 하면서 말입니다.

      가서 보니 조개 껍질 무더기였는데
      거기 앉아서 ‘사람 살리라’고 소리를 쳤는데
      아무도 안 오고 내 파트너였던 여학생만 뛰어 온 겁니다.

      그 때 내 파트너가 얼마나 예쁘던지…ㅎㅎ
      덕분에 옛 추억을 했습니다.

      늘 건강 하세요.

  3. 無頂

    여기도 산골로 들어가면 볼 수 있어서 옛날을 생각해 봅니다.
    님의 글을 읽으며 어렸을적 생각에 절로 즐겁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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