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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중국 여공(女工)들의 노동실태 엿보기 - China Inside
중국 여공(女工)들의 노동실태 엿보기

중국 여공(女工)들의 노동실태 엿보기

—‘중국의 전태일’이 나와야 하나

<며칠전 배달된 중국의 유명 주간지 ‘남방주말(南方周末·11월25일자)’은 독자투고란에 ‘누나 찾기(尋姐記)’란 글을 실었다. 필자는 시골 출신의 노동자로 광동성(廣東省) 광조우(廣州)에서 일하는 청준챵(成准强)이란 청년이다. 그는 얼마전 고향에서 올라와 동관(東莞)이란 곳에 취직한 누나가 1주일만에 연락이 끊기자 약 2주일 동안 누나를 찾아헤맨 과정을 소개했다.
이 글은 단지 누나를 찾는 얘기만 썼다. 하지만 사이사이에 열악한 중국의 노동현장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 모습은 불과 30여년전 이 땅의 어머니, 누나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중국의 노동현장, 그곳에서 특히 무참히 짓밟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 노동자보다 사용자의 편에 서는 행정부과 사법부, 높아가는 저임금 노동자와 농민들의 불만. 중국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려면 앞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 정부가 이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갈지, 아니면 ‘중국의 전태일’ 같은 희생자가 나타나야 조금이라도 개선에 나설지두고봐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중국을 볼 때 이런 음지의 모습도 함께 봐야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글의 전문번역이다.>

<중국의 한 지방도시 인형공장여성 근로자 모습. 이 사진은 글의 특정내용과 관계없음/출처:조선닷컴>

둘째 누나가 광동성 동관의 모 지방에서 막노동을 한지 반달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 1주일 동안 누나와 연락이 안되고 있다. 심지어 같은 곳에서 일을 하던 친척 샤오란(蘭·미스란) 조차 누나를 찾을 수 없단다. 고향의 엄마로부터 애타는 장거리전화를 받고서 나는 일자리를 찾다가 실종된 사람들 소식이 갑자기 떠올라, 덜컥 겁이나면서 머리카락이 쭈볏 섰다.
둘째 누나는 말이 없고 내향적인 성품이라, 과거에는 집을 나선 적도 없다. 몇년전 시골 진(鎭) 정부가 운영하는 공장의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된 후, 남편(필자의 자형)이 하는 작은 수리점 일을 도왔지만,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남는 수입은 3식구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당시 샤오란이 고향집을 찾았을 때, 샤오란이 일하는 곳의 돈벌이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샤오란을 따라 이곳으로 온 것이다. 둘째 누나는 내가 일하는 광조우를 지나면서도 나에게 연락도 안하고, 곧바로 동관으로 갔다.(동관은 광조우와 선전 중간에 위치해 있다) 과거에 누나는 나에게도 “일자리를 구해달라”는 얘기를 했었지만, 나는 누나의 나이나 학력으로 보아 광조우에서 편한 일거리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비록 집에 있으면 수입은 많지 않더라도 큰 고생은 안할 누나가 막노동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번쩍 들어서인 모양이다.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은 다음날, 나는 친구와 함께 누나가 일한다는 공장을 찾아갔다. 가는 길 곳곳에 ‘18~25세 여공 구함’이라고 써붙인 무수한 모집공고를 보았다.(인구 대국인 중국에서도 저임금 노동력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있음을 보여준다)

“누나는 나이가 25세를 넘는데, 어떻게 연령제한을 뚫고 이곳으로 왔지?” 속으로 생각하며, 샤오란을 찾았다. 샤오란은 “언니가 이곳에 온지 3일만에 제발로 나가서 선물가공공장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누나가 공장을 떠난 이유는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매일 야근을해, 근로시간이 평균 12시간에 달했고, 어떤 때는 그보다 더 많이 일하는 날도 있었다. 한달 월급은 야근비를 합쳐, 1000위안(한화 약 15만원). 이밖에 숙식 무료제공이었다. 샤오란은 이 월급이 근처 공장 가운데 가장 좋은 조건이라고 말했지만, 누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이튿날 샤오란은 선물가공공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미 누나가 그곳을 떠난 뒤였다. 그로부터 누나의 소식은완전히 끊어졌다. 지금까지 7,8일이 지났다. 공장에 들어갈 때 누나는 나이가 넘어서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취직을 했다고 한다.

<중국 나이키 신발공장모습. 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없음. 중국에서 이 정도의 환경은 그래도 양호한 편에 속한다.현지업체들의 노동환경은이보다 훨씬 열악하다./출처:조선닷컴>

우리는 누나가 마지막으로 일한 선물공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만약 그곳에서 단서를 못찾으면 경찰에 신고할 작정이었다. 모든 선물공장은 4층짜리 민간 건물에 들어있었다. 건물 입구에는 “일년 상시 숙련 여공 모집”이라는 광고가 붙어있었다.
공장에 들어서자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곧장 4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직원 숙소였다. 비록 한층 전체였지만, 너무나 비좁았다. 처마까지도 방으로 개조한 것 같았다. 남자 직원들은 거실 바닥에서 자고, 여공들은 방안에서 자는데, 작은 방에 2층짜리 침대 4개를 놓아 발디딜 틈 조차 없었다.(한 방에 8명이 사는 셈이다)

누나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한참이나 설명한 뒤에야 그곳의 주임인듯한 여자는 우리가 진짜 사람 찾으로 온 줄로 알고, 경계하는 눈빛을 풀었다. 그리고는 “며칠전에 한 여자가 일하러 왔는데,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가버렸다”고 했다.떠난 이유는 ‘너무 시끄럽고, 비좁으며, 너무 무덥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공장을 떠날 때, 등록비 50위안(한화 7500원)과 숙식비 100위안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공장 지배인에게 욕만 한바가지얻어먹고 그냥 갔다고 한다.

마침 이때 지배인이 들어왔다. 공장 지배인 역시 그 여성 근로자가 떠난 과정을 설명한 뒤, “이곳 공장들은 항상 왔다 가는 근로자들이 많다. 등록비와 숙식비는 모두 자기가 원해서 낸 것이다. 돌려주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무슨 근거로 공원(工員) 모집에 돈을 받느냐”고 따졌다. 지배인은 인상을 쓰며 “이곳의 규칙”이라고 우겨댔다. 짐작에 돈을 되돌려 받을 것 같지 않아 우리들은 발길을 돌렸다.

무수한 사람들의 바다속에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상황이지만, 선물 가공공장은 단지 몇푼 안되는 돈을 먹으려는 것일뿐, 사람을 유괴할 양심없는 공장 같지는 않았다. 결국 우리는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광조우로 돌아와 기다리는 도리 밖에 없었다. 경찰에 신고까지 했는데도 금방 연락이 없자 나는 마음이 안절부절 못하는데다, 부모님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저녁 7시 정각, 전화가 왔다. 뜻밖에도 둘째 누나 본인이었다. 정말 마음의 돌덩어리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둘째 누나는 선물공장을 떠난 뒤, 곧바로 다른 공장을 찾았다고 한다. 그 공장은 ‘직업훈련’을 실시한다며 며칠간 강도높은 훈련을 실시했다. 매일 16시간씩 훈련을 시켰으며, 중간에 휴식도 없었다. 공장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으며, 전화도 못 걸게 했다. 그래서 가족들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직업훈련이라면서 사실은 ‘돌격대식 초과근무(加班)’였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고 묻자, 누나는 “며칠 더 견뎌보지 뭐. 몇푼이라도 벌어서 돌아갈 차비는 마련해야지. 이대로 돌아가면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라고 말했다.

다시 한주가 지났다. 둘째 누나는 더이상 견디지 못했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누나가 막노동을 한 기간은 모두 합쳐 20여일. 3개의 공장을 다녔지만 번 돈은 하나도 없고, 마지막 공장에서도 한달이 안됐다며 월급을 주지 않았다. 누나가 일자리 찾는다며 쓴 돈은 350위앤. 몸무게는 6㎏가 빠졌다. 좀처럼 농담을 안하던 누나는 이번에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할 수 없지 뭐. 돈들여 살 뺀 셈 치지.”
/번역=지해범기자 hbjee@chosun.com

9 Comments

  1. 이윤락

    2004년 12월 11일 at 11:39 오전

    중국의 현실은 더하다고 봐야 합니다. 저희 다운복장에서 중국공장에 하청을 주어서 가 봤더니 납기를 대기 위해 하루 2시간씩 잠을 재우면서 12-3세 어린 소녀들까지 하루 20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강제로 시키는 것을 직접 보고 가슴아파 공장 사장에게 항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한 임금은 기본급 260위안, 성과급을 합치면 5-600위안인데, 이중에 100위안은 숙식비로 공제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2. 이기원

    2004년 12월 11일 at 11:40 오전

    이윤락 = 중국의 현실은 더하다고 봐야 합니다. 저희 다운복장에서 중국공장에 하청을 주어서 가 봤더니 납기를 대기 위해 하루 2시간씩 잠을 재우면서 12-3세 어린 소녀들까지 하루 20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강제로 시키는 것을 직접 보고 가슴아파 공장 사장에게 항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노동현장………가슴아픕니다. 잘 읽구갑니다.
       

  3. 서봉산

    2004년 12월 11일 at 8:11 오후

    노동현장은 열악하지만, 이들이 있어 중국이 여기까지 왔으며 아직도 그들이 희망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 우리네 누나, 고모들이 그 전철을 밟아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고 지금 이나마 사는 것 이겠죠. 이들은 모두 한족이지요, 연안의 경제개발구에 돌려드는 이들은 그나마 다행이겠죠. 또 다른 소수민족은 그런자리 마져도 보장을 못 받는데….   

  4. 서봉산

    2004년 12월 11일 at 8:14 오후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면 조건은 좀 좋은 듯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인의식이라고는 전혀 없어요. 돈 더주고 고학력자들을 쓰면 2년이 지나면 다른데로 갈려고 합니다. 서비스는 노동현장으로 보아야 한다면 요즈음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발 맛사지’방에 근무하는 어린 소녀들도 아주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본글의 여공과 다를바 없는….   

  5. 서봉산

    2004년 12월 11일 at 8:15 오후

    그러나, 난 그들은 좋아(?) 합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쉽게 돈 버는 길을 가지 않고 정도(正道)를 가는 정말로 예쁜 사람들이니깐요….

    이들에게 희망이 있기를….   

  6. 지해범

    2004년 12월 12일 at 1:25 오후

    이윤락 사장님 지적처럼, 공업용 유해물질이 나오는 염색공장이나, 먼지가 많아 진폐증을 유발할 수 있는 봉제-의류공장 등은 환경이 더욱 열악할 겁니다. ‘일년 상시 여공 모집’이라고 광고판을 붙여놓은 걸 봐도, 그런 열악한 공장에는 사람들이 잘 안가고, 갔다가도 금방 뛰쳐나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적지않은 여성들이 ‘색정복무(섹스서비스)’산업으로 흘러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7. 세체스

    2004년 12월 12일 at 2:22 오후

    가슴아프네요. 우리가 쓰는 수많은 Made in China 상품들이 이들의 손을 거쳤다고 생각하니… 과연 우리에게 "너 싼 거 사고, 대신 위같이 부려 먹을래?" 아니면 "너 비싼거 사고, 불쌍한 중국 근로자들 쉬게 할래?" 라고 질문하면 어떤 답이 나올까요?   

  8. 박지하

    2004년 12월 12일 at 4:30 오후

    가슴이 아프군요… 그냥 전세계가 조금 덜 쓰고 사는 법을 찾으면 이렇지 않아도 될 텐데.   

  9. 이강은

    2004년 12월 17일 at 11:48 오전

    새삼스런 모습은 아닙니다. 20년전 한국의 모습입니다. 마산수출공단에서 저녁 잔업 2시간 채우면 10만원 월급을 받았지요. 제가 아는 자매는 둘이 번 돈을 모두 오빠에게 보내더군요. 오빠가 진주 경상대 대학생인데 학비하라고. 집안을 위해서 희생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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