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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금산사 나들이 - China Inside
금산사 나들이

지난주말(8월5~6일) 친구들과 전주 금산사를 다녀왔다.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두 친구와 전남대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모처럼 만났다.

세 사람중 고선생은 서울에서 자주 만나지만, 나머지 둘은 7~8년은 못 만났다.

그러니 반가울수밖에.

오랜만에 만났지만, 마치 며칠전 헤어졌던 친구처럼 우리들은 나이고 격식이고 잊고, 금방 옛날로 돌아가 농담을 주고받았다.

<금산사 미륵전>

함께 간 친구들 중 고선생과 정교수는 대학때부터알고 지낸 막역지우다.

인천 모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유교수는 사회에서 알게된 친구다.

결혼 전 우리들은 주말이면 베낭을 매고 지리산 설악산 소백산 오대산 덕유산 치악산 등 전국의 명산을 올랐었다.

이날도 원래는 논산 부근의 대둔산을 오르기로 했으나, 내가 등산준비가 전혀 안되어 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결국 금산사로 행로를 바꾸었다.

전날 밤 고-유두 친구는저녁 10시경에 이미 우리 회사 앞에 와서 나를 기다렸다. 신문 초판이 나온 뒤에야 몸을 뺄 수 잇는내 사정을 봐준 것이다.

우리는 결국 11시쯤되어서야만나 서울을 출발할 수 있었다.

광주에 사는 정교수는 거꾸로 올라오기로 했다.

논산에서 만난 우리들은 비록 겉모습은 좀 변했으나(배도 나오고 흰머리도 늘고 등등) 마음만은 옛날이나 조금도 다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저녁에 수퍼에서 맥주와 안주를 사서, 논산역 근처 여관방에서 시원한 맥주를 기울이며, 그동안의 얘기들을 풀어놓았다.

다음날논산역 앞에서 해장국으로아침을 해결한 우리들은 고속도로를 타고 전주쪽으로 향했다. 가까운 줄 알았으나 꽤나 먼 거리였다.

<금산사 입구 도로. 오른쪽에서 머리를 긁적거리는 저 친구는 누구지?>

전북 김제시 금산면모악산 자락에 자리잡은금산사는 통일신라때 진표율사에 의하여 창건된 절로 알려져 있다.

미륵전에서 보듯이 신라때 미륵신앙의 중심지였던듯하다.

부처님 다음으로 미래에 올 부처가 미륵불이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백성들은 미륵신앙으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였으나, 궁예 처럼 미륵불을 참칭하는 자들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으니, ‘개혁’을 표방하고 나라를 망치는 요즘 지도자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들은 TV연속극 태조왕건을 통해 후삼국의 영웅 견훤이 말년에 이곳 금산사에 유폐되었던장면을 기억한다.

한 시절의 영웅 견훤이 왕건의 도움으로 금산사를 탈출해 왕건품에 안기는 과정은,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었다.

절로들어서는 길은 호젓했고,그 길 옆의 계곡은 오염되지 않아 좋았다.

경내는 널찍하면서도 짜임새가 있었다.

절 안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미륵전이다. 겉으로 보면 3층인데, 안을 보면 천정까지 하나다.

중국에서 여러층의 불탑을 많이 본지라, 특이하게 느껴졌으나, 그 독특한 건축양식과 어디하나 보태고 뺄 것이 없는 완벽한 건축미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선시대(기억이 맞는지 모르겟다) 지었다는 목조건물로, 아래서 봐도, 옆에서 봐도 조형미가 뛰어났다. 흙으로 바른 벽면에 방문객들이 그려놓은 낙서들이 어지러웠지만, 그것마저도 세월의 흔적인양 크게 눈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금산사 입구쪽에서 바라본 미륵전. 금산사의 백미다>

미륵전 옆에는 부처님 진신사리탑과 부도가 있다. 5층 사리탑은 작지만 균형미가 있었다.

사리가 든 부도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줄을 쳐놓았다.

역사 전공인 정교수가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는 사찰은 대웅전이 따로없다"고 일러주었다.

사리가 곧 부처이기 때문이란다.

그러고보니 대웅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대자보전이 자리잡고 있고, 그 안에 여러 보살은 보였지만 부처님은 보이지 않았다.

이밖에도 극락전 명부전 고승전 등이 다른 어떤 절에도 손색없이 아담하게 자리잡아, 게으른 불자가 모처럼 3배를 드리느라 땀을 좀 흘려야 했다. 하지만 그 땀은 기분좋은 땀이었다.

금산사 마당 한가운데는 보리수 두 그루가 양편에 자리잡고 있는데, 무더운 날씨에 그 그늘 아래 앉으니, 마치 젊은 싯다르타가 출가초기에 그랬던양,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당 한편에는 돌로 된 작은 연못에 연꽃 두 송이가 피어있다. 파란 연곷 잎들이 물위에 둥둥 떠있는 가운데 하얀 꽃송이가 물위로 고개를 내밀었다.한 송이는 활짝 피었고, 다른 한 송이는 수줍은듯 아직 꽃봉오리를 활짝 펴지 않았다.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화두도 있듯이 그 순결한 아름다움에 마음속으로 두 손을 합장했다. (고선생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이 친구가이 사진을 보내주지 않았다)

<금산사 돌계단에 앉은 우리 일행. 왼쪽부터 고선생, 유선생, 나그네, 정교수. 자동으로 해서 찍었다.>

금산사 앞 계곡은 며칠 전 내린 큰 비로 물이 넘쳤다.

"콸~콸~콸~"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물은 어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한 60대 아주머니와 딸들인듯한 여인네 4명이 계곡 바닥에 자리를 깔로 화투를 치고 있는 옆으로 우리는 바지를 둥둥 걷고 들어갔다.

<정교수와 나그네, 그리고 유선생>

물은차갑지는 않았지만, 시원했다.

몇차례 계곡물로 세수를 하자, 얼굴이 뽀동뽀동해졌다. 우리들은 서로를 보며, 한결 젊어졌다고 덕담을 했다.

우리들이 앉아잇는 옆에서는 꼬마녀석들이 몸을 첨벙첨벙 담그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정교수가 "오는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와야겠다"며 맑은 계곡물을 칭찬했다.

금산사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전주비빔밥을 먹었다.

비빔밥도 비빔밥이지만, 대여섯가지의 반찬이 한결같이 어머니가 해주신 것처럼 맛있고 정갈스러워, 우리는 "잘 먹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사찰 입구 오른쪽에 큰 호텔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라, 머지않아 이곳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더럽혀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토요일 오후 귀경하는고속도로에서 정체에 시달렸지만, 금산사의 미륵전과 여러 보살님들, 보리수와 연꽃, 계곡의 시원한 물이 더위를 잊게해주었다. 요즘같이 답답한 세상에 절 나들이는 좋은 청량제가 되었다./지해범기자 hbjee@chosun.com

2 Comments

  1. e-기원

    2005년 8월 12일 at 3:38 오후

    미륵의 세상이
    온다는 속설에
    수 많은 사람들이………………피를흘려 싸운……
    그 본산이 금산사죠.저항의 근거지.
    좋은 구경입니다.   

  2. 지기자

    2005년 8월 13일 at 12:55 오후

    정말 미륵의 세상이 올까요. 가짜 미륵의 세상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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