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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의 행복’이 꿈인 탈북자 가족

‘보통사람의 행복’이 꿈인탈북자 가족/2006.5.7

김한미_가족.jpg

<조선일보 뒷뜰에서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김한미양 가족/사진=이명원기자>

지난 5월3일, 탈북자 김한미네 가족을 만났다. 지난달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더욱 유명해진 가족이다.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2시간 가량 만나 그간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들의 꿈은 한국의 보통사람이 되고싶은 것이었다.

한국의보통사람이 누리는행복, 그것을 한국땅에서이루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이들은 그 행복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었고,조금씩 그 행복에 다가가고 있었다.

다음은 6일자 조선일보’조선 인터뷰’에 실리기 전기사 원본이다.

<기사 원문>

김한미(6)양 가족은 표정이 밝았다. 지난달 28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이들은 2일 서울로 돌아왔다고 한다. 3일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만난 한미양은 빨간색 점프에 작은 인형을 들고 연신 까르르 하고 웃었다.

한미야, 부시 할아버지가 안아줬을 때 기분이 어땠어?

할아버지 아니예요. 아저씨예요.

의외의 대답이 야무지다. , 그래 미안. 부시 아저씨가 안아줬을 때 기분이 어땠는데? 그제야 한미는 좋았어요 한다.

뽀뽀는 스스로 한 거야, 누가 시킨 거야?

엄마가 시켰어요.

유치원에 다니는 한미는 엄마의 체면을 조금도 안 봐준다. 한미는 부시 대통령 뺨에 뽀뽀 하면서 사랑해요라고 한국말로 했고, 통역이 이를 I love you라고 번역해줬다. 이날 한미의 밝고 순수한 행동에 면담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아버지 김광철(32)씨는 말했다.

가까이서 본 부시 대통령은?

편안했어요. 처음에는 긴장했는데, 부시 대통령이 친절하게 대해 주셨어요.

뭘 궁금해하던가요?

김정일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겠다면서, 우리 가족의 탈북 과정에 대해 질문했어요. 그래서 1999년 처음 탈북했다가 2001년 3월 북한으로 끌려간 일, 2001년 8월 재탈북하여 이듬해 5월 선양(瀋陽) 일본총영사관에 들어간 일 등을 자세히 얘기했지요.

김씨는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그날 우리는 부시 대통령께 편지를 전달했다면서 A4용지 복사본 두 장을 내밀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이란 제목의 편지는 이렇게 되어 있다.

어제 아침 저희 가족을 백악관 집무실로 초청해 주신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가슴이 몹시 뛰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북한에서 15살 때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꿈을 꾼 것이 실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하나님께서 제 몸과 입을 빌어 말하고 싶은 것은 악마의 손아귀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대신 전하는 일일 것입니다. 2006년 4월28일.

편지 맨 마지막엔 북한주민 2천만 해방과 30만 탈북자 구출을 위해, 한미가족을 대표하여,김광철 드림이라고 되어있다. 한글로 쓴 이 편지를 부시 대통령에게 전하자, 번역본이 있느냐고 물었고, 없다고 하자, 부시 대통령은 번역해서 보겠다며 웃었다고 한다.

30여분간의 면담이 끝난 뒤 부시 대통령은 한미에게는 책갈피를, 김씨에게는 자신의 사인이 든 넥타이핀을 선물했다. 한미네 가족과 일본 피랍여성 메구미의 어머니 등과 만난 부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재임한 후 가장 감동적인 만남을 가졌다면서 “미국 대통령으로서 인권과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끝까지 일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에 한미네 가족이 영향을 끼친 셈이다.

이날 광화문의 식당에서 점심을 드는 둥 마는 둥 하며 풀어놓은 한미네의 탈북 스토리는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 같았다.

왜 탈북을 결심하게 됐나요?

할아버지의 성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양강도 삼수 갑산 부근의 동광(銅鑛)으로 추방된 적이 있지요. 1년 뒤 회령으로 돌아왔지만, 1997년 아버지가 김정일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뒤, 희망이 없어졌지요.

회령 망양고등중학교를 나온 김씨는 우마차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화물을 나르는 일을 했다. 그 때 이귀옥(33)씨를 만나 결혼했지만 호시탐탐 탈북기회를 노렸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1999년 7월 한미양을 임신한 채 국경선을 넘었다. 이듬해 1월16일 중국 땅에서 한미를 낳았다. 한국 탈북자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연변에서 1년간 잘 숨어 지내던 이들은 2001년3월 돌연 공안에 체포됐다. 거기엔 탈북자 길수 어머니와 외할머니도 포함돼 있었다.

아침 밥을 먹고 있는데, 중국 공안 10여명이 들이닥치더군요. 다른 탈북자가 밀고한 거지요. 내의 바람으로 잡혀 갔어요. 화대군 보위부로 끌려갔는데, 보위부원들이 야 이 멍청한 새끼야, 그만 들락거리라. 잡히긴 왜 잡혀.하더군요.

길수네와는 어떤 관계?

나와 길수 어머니와는외사촌간이지요. 아버지가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형제가 없어 엄마 쪽으로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냈어요.

몇 달간 조사를 받던 중 보위부원들이 조선일보와 한국일보를 내밀며 이래도 부정할꺼야라고 소리쳤다. 신문을 보니 연변에서 북경으로 먼저 간 길수와 길수 할아버지 등 7명이 북경의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 공관에 뛰어들었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탈북자 외교공관 진입의 첫 사례였다. 2001년 여름 기자는 북경에서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려던 무렵 이 사건이 터져, 10여일간 더 체류한 적이 있다.

탈북자가 북한으로 잡혀가면 어떻게 되나요?

“정치범과 경제범으로 나뉘는데, 죄질에 따라서 총살도 당하지요. 저는 보위부 감방에 갇혔는데, 10평도 안 되는 감방에 50여명의 탈북자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지요. 이가 온몸을 기어 다녀도, 한겨울에 영하 35도를 견디려면 몸을 밀착시킬 수 밖에 없어요. 보위부원들이 한 기독교 여성에게 야 이 아, 내일 너 죽어. 지금이라도 장군님 사상을 따르라고 윽박질렀지만, 그 여성은 끝내 거부해 어느 날 새벽에 끌려나간 뒤 소식이 없었어요.

죽음을 기다리던 광철씨는 몸이 쇠약해져 화대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됐다. 이 기회를 이용해 탈출하기로 마음먹고 꾀를 냈다.

낮부터 물을 거푸 들이마셔 밤에 설사가 나오게 했지요. 저녁 7시에 화장실 가고 9시에 가고, 10시에 또 갔지요. 감시하는 지도원이 화장실 밖에서 야 광철아 빨리 누고 나오라고 재촉하는데, 나는 미리 준비해둔 철사로 수갑을 풀고, 화장실 창문을 넘어 산으로 도망쳤지요.

그 길로 회령에 도착해 먼저 석방된 아내와 한미를 데리고 중국 국경을 다시 넘었다. 연변에서 붙잡혀간 지 5개월만인 2001년 8월이었다. 이듬해 5월 한미네는 또 한번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했다. 선양 일본총영사관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 때 아내 이귀옥씨는 정문에서 공안에 붙잡혀 몸부림을 치고, 딸 한미는 영사관 안쪽에서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심정은 어떠셨어요?

이대로 북에 끌려가면 죽겠구나 생각했지요. (이귀옥)

중국 경찰은 영사관 안에까지 들어와 집입에 성공한 광철씨 등 모두 5명을 잡아갔다.

잡혀간 뒤의 상황은?

밧줄로 묶어 선양 감옥으로 데려갔는데, 사형수 취급이지요. 감방 안에서조차 일반 수갑이 아닌 철 신발을 채우더군요.(김광철)

여자 감옥에는 러시아 여자들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푸대접이더니, 1주일쯤 지나자 라면도 주고 아이들 간식도 줘요. 대접이 너무 좋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잘 먹어보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이귀옥)

보름 뒤 이들은 외교당국의 노력으로 한국측에 인도됐다. 김씨는 한국 신문의 힘이 컸다며 고마워했다. 본지를 비롯한 한국 신문들이 연일 한미네 가족 체포소식을 전하자, 중국정부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 해 여름 서울에 도착한 이들은 전남 순천에 정착했다.

김씨는 정부 지원 정착금으로 컴퓨터 수리점을 열었지만,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우리는 문명 세계에 떨어진 미개인과 같아요. 갓 태어난 아기 심정으로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요. 그는 요즘 순천 기아자동차 대리점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식당에서 일한다는 이귀옥씨는 한국의 억척 아줌마가 돼가고 있었다. 현재 12평 아파트에 사는 그는 열심히 저축해 32평으로 옮기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들 가족은 요즘 밤이면 TV 채널권을 놓고 다툰다.

한미 아빠는 다큐멘터리 좋아하고, 저는 드라마 좋아하고, 한미는 만화영화 좋아해서 자주 다퉈요. 호호호.(이귀옥)

/지해범 기자 hbjee@chosun.com

<한국에 하고싶은 말>

평범한 한국인의 삶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한미네 가족이지만, 그래도 적응이 잘 안 되는 구석이 많은 것 같다. 특히 북한의 실정을 모르는 한국 사회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남편 김광철씨가 말문을 열었다.

인천공항에 들어올 때, 눈물이 났어요. 이제 북한의 실상을 다 알릴 수 있겠구나, 대한민국에 다 고발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북에서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외쳐도 누구 하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주민들 도와준다면서, 제 나라 민족 300만이 죽었다고 해도 아무도 꿈쩍도 안 해요. 한국 사람 알고 볼수록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막혀요.

김씨는 남한에서 북한이라고 하면 김정일과 2000만 주민을 똑같이 생각하는데, 2000만 주민은 피해자란 점을 알아야 한다면서 김정일 돕자고 하는데, 김정일과 협상해서는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그저 이용될 뿐이다. 햇볕정책은 정신 없는 짓이다고 비판했다.

아내 이귀옥씨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한국은 모든 게 너무나 풍부해요. 한국에 처음 들어와 국정원 독방에서 샤워를 하는데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것이 너무 신기했어요. 북에선 생리대도 없어 아무 천이나 쓰는데, 여기는 여자 용품도 참 다양해요. 전 솔직히 밥만 봐도 배가 부른데, 여기 식당엔 반찬이 너무 많아요. 한국 사람들 참 행복하구나 느끼지요. 그런데 자유가 너무 많아 자유에 취해 눈과 귀가 먼 것 같아요.

/지해범기자

21 Comments

  1. ○ minuette.○

    2006년 5월 7일 at 3:44 오후

    어제 처음 오프라인 조선일보에서 지해범 기자님 기사를 접했습니다..
    반가웠습니다..한 민족으로서 끝이없는 탈북자 스토리의 감동입니다..
    오랫만입니다..지기자님..? 아름다운 5월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2. 윤 환

    2006년 5월 7일 at 3:50 오후

    감사합니다.
    누옥에 들러 주셔서 생광입니다.
    건필을 기원합니다.   

  3. 퓰리처

    2006년 5월 7일 at 4:22 오후

    행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안습니다. 애인이 미국에 망명을 핬지만 고국으로 돌아간소련의발레리나도 있습니다. 탈북자 역시 적응을 못하고 되돌아가는 경우도…    

  4. 지기자

    2006년 5월 7일 at 5:26 오후

    미뉴엩님, 반갑습니다.
    실은 신문에 실리지 못한 많은 얘기들이 있는데, 그것을 다 옮길 수도 없고…
    오늘 날씨는 정말, 아름다운 5월 그 자체네요.   

  5. 지기자

    2006년 5월 7일 at 5:27 오후

    윤환님, 저의 누옥에 들러주셔서 제가 더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6. Lisa♡

    2006년 5월 7일 at 6:21 오후

    지기자님…그저 한미네 가족이 역량껏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고 우리도 즐거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에 2000만 주민에 대한 시선이야기
    가슴에 와 닿습니다.
    햇볕정책에 대한 일침도요.
    정말 탈북자에 대한 사회의 따스한 시선이
    꼭 필요합니다.   

  7. 그냥

    2006년 5월 7일 at 6:57 오후

    "북에서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외처도 누구 하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

    이것이 그 잘난 햇볕정책의 효과인가?
    이것이 정부가 내세우는 당신들의 평화인가?
    이것이 정부가 만든 통일 로드맵인가?

    그러니 북한인권은 말도 꺼집어내지 말라는 것인가?
    그러니 "요덕 스토리" 관람불가 조치라도 내렸는가?

    어떻게 해야 이땅에 인간다운 가치가 자리잡게 되려는가?
    어떻게 해야 이땅을 인간의 마을로 만들 수 있을까?

       

  8. 그냥

    2006년 5월 7일 at 7:30 오후

    매일 1,000명씩 하루도 글러지 않고 죽이면 1년 동안 365,000명을 죽인다.
    어느 한 해에는 100만명 이상이 굶어죽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매일 3,000명이 총맞아 죽은 것도 아니고 굶어 죽었다고 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300명이 죽어서 그 난리를 쳤다.
    9.11테러에 4,000명이 죽어서 온 세상이 전율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쫓겨나기 까지
    이라크 사람 1600명 이 죽었고 미군이 600명 죽었다.
    그래서 미국을 살육의 전쟁광이라 욕한다.

    북한의 동포들은 굶어 죽은 것인가 굶겨죽임을 당한 것인가?
    이 동포들에게 자유가 있었다면 굶어 죽었다고 해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먹거리를 찾아 나설 수조차 없도록 자유가 묶여 있었다.

    묶어 놓은 개에게 일주일만 먹이를 주지 않으면 그 개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자유롭게 풀어놓은 개는 굶어죽지 않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누가 북한 동포들을 묶어놓고 굶겨죽이고 있는가?

    중국인이 그랬다면 우리는 얼마나 분노할까?
    일본인이 그랬다면 우리는 얼마나 분노할까?
    미국인이 그랬다면 우리는 얼마나 분노할까?
    김정일이 그랬는데 우리는 얼마나 분노하나?

    동포들을 묶어놓고 굶겨죽인 사람이 김정일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 할 사람 있는가?
    그런 김정일이 지금 이땅에서 "분별 있는 사람"으로 추대되고 있다.
    도데체 이 사회는 눈감고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9. 지기자

    2006년 5월 7일 at 7:48 오후

    퓰리처님, 사람에 따라 행복이 다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제 눈에는 지금 한국땅에서의 한미네 생활이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북한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짐승 같은 생활을 할 때와 지금의 생활을 비교하면, 어디가 행복하다고 말할 필요조차 있을까요? 비교의 대상이나 되는 걸까요?
       

  10. 지기자

    2006년 5월 7일 at 7:50 오후

    리사님,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이들 가족이 이 땅에서 잘 적응해서 평범한 행복을 가꾸어 갈 수 있다면, 통일 이후 남북한 동포가 함께 잘 섞여 살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11. 지기자

    2006년 5월 7일 at 7:54 오후

    그냥님,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무신경과 무관심,
    한국 정부의 부도덕과 무원칙은 세계에 유례가 없을 것입니다.
    ‘요덕 스토리’같은 예술작품이 많이 나와, 북한의 실상에 대해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고 봅니다.   

  12. 김동주

    2006년 5월 7일 at 11:55 오후

    이 기사를 읽고 다양한 생각이 함께 몰려들었습니다.
    그중 부끄러운 생각도 함께 ……
       

  13. 임영란

    2006년 5월 8일 at 6:19 오전

    지기자님이 지해범이시구나! 잘 읽었습니다.
    내 이 기사를 다른 포스트에서 읽었는데요. 그 때 감히 부시대통열이 이뻐보일라 한다고 쓰고왔지요. ㅎㅎ,
    (*제가 부시대통령 목소리를 좋아합니다. 음, 아주 듣기좋은 목소리를 가졌어요.)

    저분들 북한을 탈출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또 어느 장소에서든 아이는 아이구나 싶어 코끝이 찡하구요.
    부디 이 땅에서 잘 적응하여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정부와 이웃분들도 따뜻이 보살펴주셔야 하겠지요,

    현재의 남과 북은 너무나 다른 상식과 제도를 가진 사회인데요.
    김한미양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열심히 일하시고 행복하시길, 아자자@!
       

  14. 凌志

    2006년 5월 8일 at 1:16 오후

    기자님 안녕하세요…^^
    사무실에 앉아 있는게 괜히 화가 날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를 북에 있는 동포들도 함께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김한미양 가족들이 우리나라 대통령도 아닌 타국의 대통령에게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우리의 일을 직접 챙겨주지 못하는 정부가 정말 우리의 정부인지 의문이 갑니다. 특히 최근에는 이종석씨가 무척 한심한 발언을 했더군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하여튼 언제나 좋은 기사, 고맙습니다…^^
    날씨도 좋은데 기자님 괜찮으시면 가까운 산에 등산 어떠신지요….^^   

  15. 마루

    2006년 5월 8일 at 9:40 오후

    탈북하여 남한보다는 미국으로 가는 추세에 부끄럽습니다.
    부시대통령이 지지율이 낮아 이를 만회하려고
    탈북자를 받아 들인다는 의견도 있다고
    물타기 방송하는 한심한 행태도 있으니 참으로
    역겹습니다.    

  16. 지기자

    2006년 5월 8일 at 10:43 오후

    김동주님, 반갑습니다. 저 역시 한미네 가족을 인터뷰하면서, 어릴 적 가난했던 그 시절의 순수하고 소박한 삶으로부터 지금 너무 멀리 와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7. 지기자

    2006년 5월 8일 at 10:45 오후

    임영란님, 한미네 가족이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모두가 똑같을 겁니다. 부시 면담과 인터뷰 이후 한미네는 순천으로 내려가, 이웃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답니다. 이웃들과 오손도손 잘 살 걸로 믿습니다.   

  18. 지기자

    2006년 5월 8일 at 10:53 오후

    凌志님, 어제는 북한산에 올라간 사람 얘기를 들으니, 영종도까지 보였다는군요. 5월이 가기전에 등산모임 한번 추진해 봅시다.    

  19. 지기자

    2006년 5월 8일 at 10:56 오후

    마루님, 납북된 국민에 대해 제대로 요구도 못하는 정부를 과연 정부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20. 톈진광장

    2006년 5월 19일 at 4:17 오후

    부장님 오랫만입니다. 그때 북경에서 귀국 발령 받고 저하고 송별 식사를 하던 중 본사에서 전화를 받으며 귀국이 연기되었다며 말씀하셨던 기억이 새롭게 나는군요. 탈북자, 우리 민족의 쓰라린 복통입니다. 탈북자로 인해 우리가 알게 되었지요. ㅎㅎ, 저도 탈북자와 관련해서 할말이 참 많은 사람 중 한사람입니다. 제가 정부에 가장 불만이 많은 부분이지요.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비참함이 저들에게 너무나 많기에 늘 저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루속히 작은 행복을 찾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미네 가족은 큰 행운을 잡은 선택된 사람들이지요.   

  21. 지기자

    2006년 5월 25일 at 11:48 오전

    이 사장님, 반갑습니다. 천진에 한번 가야 할텐데, 영 기회가 안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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