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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평 生家, 노무현 生家

등소평 생가, 노무현 생가/조선일보 2009년 2월25일자 26면 보도

지해범 전문기자

등소평고거3.jpg

<복원된 등소평 생가>

중국 사천성(四川省) 광안(廣安)현 시내에서 7㎞쯤 떨어진 곳에 패방촌(牌坊村)이란 마을이 있다. 야트막한 야산 주변에 논과 밭이 흩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이곳에 중국 개혁 개방의 아버지 등소평(鄧小平·1904~1997)의 생가가 있다.

중국 전통의 삼합원(三合院) 형태인 생가 본채 처마에는 등소평동지고거(鄧小平同志故居)란 편액이 걸려있다. 강택민(江澤民) 전 주석이 쓴 글이다. 방안에는 등의 초상화가 있는데, 초상화 양편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정치가 잘 되고 사람들이 화합하니 모든 가정이 즐겁고(政通人和千家樂), 국가가 부강하고 국민이 강성하니 집집마다 기쁨이 넘치네(國富民强萬戶歡)

지난 19일은 등의 서거 12주년이었다.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크게 둘로 갈린다. 13억의 배고픔을 해결한 위대한 지도자란 찬사와 천안문(天安門) 학살의 책임자란 비난의 양극단이다. 하지만 13억 중국인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그가 살아있었다. 19일 그의 서거를 기념하는 한 기사(제목 永遠的小平) 밑에 5시간 만에 37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댓글은 주로 등 할아버지, 우리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鄧爺爺我們懷念이<你밑에 心>)라는 추모의 내용이었다.

이날 등의 생가에는 전국 각지에서 1만명 이상이 찾아와 그를 추모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등의 생가는 오랫동안 방치돼 오다, 등 사후 4년만인 2001년 6월 복원되었다. 그의 생가 복원이 늦어진 데는 까닭이 있다.

등은 1916년 고향집을 떠난 후 한번도 고향을 찾은 적이 없고, 심지어 고향집에 대해 물은 적도 없다고 그의 셋째 딸 등용(鄧榕)이 나의 아버지 등소평(我的父親鄧小平)이란 책에서 전하고 있다. 한번은 그가 국가 지도자로서 사천성의 도청 소재지 성도(成都)에 도착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고향 방문을 간곡히 요청했지만, 등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심지어 등은 자녀들의 고향방문까지도 허락하지 않았다. 공연스레 동네 사람들에게 폐만 끼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등은 또 국가 최고 지도자라고 해서 고향 마을에 대해 특별히 지원을 해준 적도 없다고 한다. 그는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북경의 한 주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중국의 한 언론인은 등이 고향에 사사로운 정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한 지방의 지도자가 아니라 13억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사정을 곧바로 한국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의 통합을 위해 사적인 감정을 자제하는 중국 지도자의 행동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복원 소식은 어쩔 수 없이 양국 지도자를 비교하게 만든다. 경남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는 노 전 대통령 생가 복원에 김해시 예산 1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잘 알다시피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전부터 거액의 공사비를 들여 봉하마을에 사저를 지은 데 이어, 김해시는 혈세를 들여 사저 주변에 숲 공원까지 조성해 주었다. 이런 마당에 생가 복원에 또세금이 들어간다면, 국민은 이를 어떻게 볼까?

지도자의 생가가 한 채의 집이 아닌 한 시대의 역사로 자리매김하려면, 전직 대통령의 영향력보다 국민의 존경심으로 복원되는 것이 옳다. 김해시가 자청해서 복원하겠다고 했더라도 생가가 폐가(廢家) 될 지경이 아니라면, 내 죽은 뒤에나 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 이 일로 정치인과 정치에 대한 환멸이 더욱 깊어질까 두렵다./hbjee@chosun.com

8 Comments

  1. 참나무.

    2009년 2월 25일 at 2:27 오후

    종이 신문에서 성함뵙고 반가웠는데
    블로그엔 이미지가 있어 한층 더 실감이 납니다.   

  2. 김진아

    2009년 2월 25일 at 4:45 오후

    이곳엔, 하루 한끼 라면도..힘들게 이어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요..
    여기저기..힘든사람들 두드리면 열리게끔 만들어놓는 제도들도 나오긴 하지만..
    여전히..혜택받는 사람들보다..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10억원..헐어버리고..짓는 금액..
    그 돈이 정말 아깝네요..정작 사용할곳은 따로이 있는것인데요..

       

  3. 달리

    2009년 2월 25일 at 6:35 오후

    옳은 지적이십니다. 100% 공감합니다.    

  4. Lisa♡

    2009년 2월 25일 at 6:47 오후

    진아님은 절절하게 말씀하시는데
    그런 거 그들이 알란가 몰라요.
    그 돈 정말 아깝지요?

    해범님,

    등소평에 대해 저는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한테 존경받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강택민이 글을 잘 쓰지만 글 쓰는 걸 상당히 즐겼나봐요.
    가는데마다 강택민의 글씨가 있으니까요.
       

  5. 풀잎사랑

    2009년 2월 25일 at 11:19 오후

    말 할 가치도 없습니다…
    정신들이 다 출장을 갔나봐요.
    에.효~   

  6. 진영직

    2009년 2월 26일 at 6:38 오전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배워야 하겠네요 .
    역시 등소평은 13억 인구에 지도자 답네요
    체구는적지만 등소평은 거인 이네요
    스크랩 해갑니다 감사합니다    

  7. 데레사

    2009년 2월 26일 at 9:25 오후

    등소평에 대한 일화
    구두까지 합쳐서 160 센티의 작은 체구였지만 그 당당함이야 말로…

    일본 방문시
    신일본제철을 구경시켜도 눈도 깜짝안하길래
    신간센을 태웠드니 다 타고 내리면서 했다는 말
    "달릴데가 어디 있다고 …" 했다나요.

    지난 여름에 창원가는길에 잠깐 봉하마을에 들려서 구경했는데
    생가란 원래 그모습 그대로 두어야 가치가 있는것 아닌가
    모르겠어요. 작고 초라하긴 했지만 허물어지지는 않았던데….

    생각이 그쯤밖에 못 미치나 봐요.   

  8. hitmap

    2009년 3월 16일 at 12:49 오후

    대한민국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그만큼 자신감이 없다는 뜻일 겁니다. 평소에 국민을 위한 봉사를 하였고 존경을 받는다면 여유로워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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