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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신해혁명 100주년, 중국·대만의 온도는 달랐다

대만 – 마잉주 총통, 쌍십절 연설서 "국방력 있어야 兩岸 평화… 中, 올바른 역사인식 갖추라"
중국 – "공산당이 쑨원 혁명 계승" 초상화 걸고 헌사 바쳤지만 역사적 의의 평가엔 소극적

10일 중화민국 건국 100주년 기념일인 쌍십절(雙十節)을 맞아 대만 정부가 타이베이(臺北) 총통부 앞 거리에서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었다.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기념 축사에서 "대륙(중국)은 이제 대만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투자 대상이다. 제도적 틀 안에서 중국과 평화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전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 대회에서 "쑨원(孫文)은 위대한 민주 영웅이자 위대한 애국자이며 중국 공산당은 쑨 선생이 행한 혁명을 계승했다"면서 쑨원의 업적을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대만은 신해(辛亥)혁명을 중국 근대 민주공화정 수립의 계기로, 혁명 주역인 쑨원을 국부(國父)로 떠받드는 일관된 태도를 지켜왔다. 반면 중국은 국경절(중화인민공화국 선포일인 1949년 10월 1일)에 비해 신해혁명의 의의를 낮게 평가해 왔다.

"中, 역사 인식 새롭게 하라"

마 총통은 특히 중국을 향해 "쑨원·신해혁명에 대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추라"고 촉구했다. 그는 "중국 정부는 공정한 부의 분배를 위해 노력하는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했던 쑨원의 정신을 잊어선 안 된다. 중국은 용맹스럽게 그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륙은 신해혁명을 기념하면서 일정 부분(대만의 과거사와 존재)을 고의로 삭제해선 안 된다"면서 그간 중국의 자의적 역사 해석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마 총통은 "무리하게 통일·독립을 하거나 무력을 쓰지 않는다"는 자신의 삼무(三無) 정책을 다시 언급했다. ‘실용주의자’로 불리는 그는 "현실적으로 중국 거대 시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강력한 국방력이 대만을 지켜주며 군사력에 바탕을 둔 국민적 자신감이 양안 관계에 새로운 발전을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10일 대만 총통부 앞 중경남로(重慶南路)에선 군악대의 행진과 학생 공연단의 집단 가무가, 하늘 위에선 전투기·헬기·낙하산부대의 공중 곡예가 펼쳐졌다. 3시간 넘게 펼쳐진 야외 기념식 중 각종 군 장비가 선을 보였다. "쌍십절이 연례행사지만 올해 100주년답게 대규모로 진행됐다"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10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쌍십절(건국 기념일) 기념식에서 기조연설 도중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위). 이날 행사에서 대만군 의장대가 총통부 앞 거리에서 행진하고 있다. /AP·AFP 연합뉴스

"공산당이 쑨원 혁명 계승"

후 주석은 전날 "아편전쟁 이후 내우외환 시대에 인민의 바람이 신해혁명을 폭발시켰다"면서 "쑨원 선생 서거 후 그의 희망을 계승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고도 했다.

후 주석의 이런 헌사에도 불구하고 신해(辛亥)혁명과 쑨원에 대한 중국의 기본 인식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풀이다.

파멜라 크로슬리 미 다트머스대 교수(중국 현대사 전공)는 "신해혁명의 진정한 유산은 ‘대내외적 개방성’인데 중국 공산당은 이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은 21세기에도 ‘시민사회’를 금기어로 삼을 정도로 ‘일당 주도’에 기반한 데다, 자국에 대한 내정간섭에 극도로 반감을 갖는다. 하지만 신해혁명과 이에 따른 중화민국 초대 정부의 탄생·발전은 국내적으로 ‘다원주의’의 소산이고 국제적으로 미국·소련·유럽의 협력이 이룬 결과란 것이다.

☞ 쌍십절(雙十節)

1911년 10월 10일 발생한 우창(武昌) 봉기에서 유래한다. 청(淸) 전제정권에 항거한 이 봉기를 단초로 신해(辛亥)혁명으로 번졌고, 300년 만주족 지배, 2000년간 계속된 전제(專制) 지배체제가 붕괴했다. 쑨원(孫文) 총통의 중화민국 초대 정부는 1912년 1월 1일 난징(南京)에 세워졌으나, 중화권은 이보다 83일 앞선 쌍십절을 건국기념일로 삼아 지난 한 세기 동안 경축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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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그냥

    2011년 10월 12일 at 11:24 오후

    [왕의 나라]에서 [인민의 나라]로 전환되는 민주화과정에서 유럽대륙 등 여러 지역은 여러개의 나라로 분리 재편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국대륙은 한개의 나라로 그대로 연속 됩니다. 언제나 궁금한 것은 어떤 요인 때문에 중국은 여러개의 나라로 분리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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