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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와 ‘죽은 교사의 사회’

한국의 학교폭력, 어떻게 막을 것인가

지해범 조선일보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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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와 한국의 학교폭력
미국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가 한국에서 개봉된 것은 1990년이다. 이 영화에서 부자집 아이들만 간다는 명문 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어교사 키팅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적인 활동을 존중하며 학교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인 ‘전통과 권위’에 도전한다. 키팅 선생은 아이들에게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고 가르친다. 한 학생의 자살과 키팅 선생의 파면으로 영화는 끝나지만, 제자들이 ‘권위’의 상징인 책상위에 올라서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며 키팅선생을 보내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 영화가 감동을 주었던 것은, 입시교육에 찌든 한국 관객들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교사란 무엇인가’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전국 초중고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집단 괴롭힘’ 사례는 20여년 전 상영됐던 ‘죽은 시인의 사회’를 생각나게 한다. 한국의 교육현장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반성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지적된다. 생존경쟁만을 강요하는 입시위주의 교육, 청소년들의 지나친 폭력게임 노출, 대중매체와 인터넷에 넘쳐나는 성(性)문화와 외모지상주의, 일부 교사들의 통솔력 부족과 학교의 무관심…등. 이런 지적에 따라 정부는 뒤늦게 ‘학교폭력 근절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대책마련에 나섰지만,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현재 교과부 내에는 학교폭력문제를 전담하는 직원이 한명도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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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현장에 선생님은 없다
전국 각지에서 터지는 학교폭력에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폭력의 현장에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대부분의 교사들은 자기 직분에 충실하며, 전국에는 왕따 없는 교실이 더 많다. 하지만 그 숫자가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일부 교사들은 자기반 아이들의 고통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봐도 못본척 외면하여 아이에게 평생 남을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몇년전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집단 괴롭힘을 당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아이가 반동료들로부터 당한 폭력의 유형은 ‘어린이들의 짓’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발걸어 넘어뜨리기, 급식판 뒤엎기, 침뱉기, 뒤에서 갑자기 밀어 넘어뜨리기, 신발가방으로 머리 때리기, 물컵으로 얼굴에 물뿌리기, 책가방 속의 우유 터뜨리기, 책과 필통 없애기, 교과서 찢어서 화장실에 버리기, 교실바닥을 개처럼 기어다니며 멍멍 짖게하기…’ 이런 지옥 같은 학교생활로 아이는 제 몸을 자해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가 매일같이 괴롭힘을 당하는 그곳에 선생님은 없었다고 한다. 부모는 “담임 선생과 학교는 우리 아이 탓만 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자신의 블로그에 적고 있다.

1년간 왕따로 괴롭힘을 당한 한 여중생은 "반 학생들이 내 지갑을 가져가 간식 사먹는데 돈을 다 써버린 사실을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네가 잘 관리했어야지’란 대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최근 문제가 된 경기도 여주 모 중학교 일진회 학생들의 폭력행위도, 피해 학생들이 학교에 신고를 했는데도 교장과 교사들은 무려 10개월(2011.2~11월) 동안이나 이를 외면했다.

◆교사들이 폭력현장을 외면하는 이유
교실의 유일한 어른이자 심판관인 교사가 폭력을 외면하는 한국의 교육현장. 앞서 언급한 영화의 제목을 빌리자면, 한국의 학교는’죽은 교사의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다. 교대나 사대를 졸업하고 청운의 꿈을 안고 교육자가 된교사들이 왜 자기반 아이들이 이런 고통을 당하는데도 외면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복잡한 일에 휘말려 교사로서 불이익을 받을까’하는 우려이다.

한 고교 교사는 "폭력이 학교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잘잘못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결국 학부모를 불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요즘 부모들은 타협보다 법적 소송으로 가려고 해서 교사로서는 일이 커져 교내에서 자기만 나쁜 평점을 받을까 우려한다.“고 말했다. 결국 아이들이 크게 다치지 않는 이상 그냥 자기들끼리 해결하도록 놔둔다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 소수의 왕따 학생들은 지옥 같은 고통을 겪게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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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이 교실과 복도, 운동장, 화장실 등에서66%나 발생한다.교사들이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줄일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는 아이들로부터 봉변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이다.

지난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뒤 아이들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체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교사가 체벌이라도 할라치면 휴대전화를 꺼내 일제히 동영상을 촬영하기 때문에 체벌은 엄두도 못낸다. 이런 ‘교사의 무력함’을 아는 아이들은 자신을 훈계하는 교사에게 “니가 뭔데” “당신 꺼져”라는 막말로 대들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교사를 놀리거나 조롱하기도 한다. 한 교사는 "솔직히 이런 아이들은 아무 대책이 없다"고 했다. 중고등학교에서 수업중에 아이들 절반 이상이 잠을 자도 교사들이 이들을 깨우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괜히 깨웠다가 “아, 왜이래,씨*” 등의 막말이라도 들으면 교사로서는 난감해진다. 예전 같으면 학생주임실로 데려가 혼을 내겠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훈계나 교내봉사 3일 정도가 고작이라, 아무도 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셋째는 교사들의 업무가 많아 개별학생들에게 일일이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의 경우에도 담임교사는 처리해야할 업무 때문에 그 학생을 자살하기 전에 면담하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교사상은 ‘친절하고 실력있는 선생님’이다. 친절하다는 것은 개별 학생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느냐에 달렸다. 그런데 수업과 잡무에 지친 교사들이 아이들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눌 여유조차 없다면, 누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교사따로 학생따로 놀게되는 것이다.

넷째는 교사 개개인의 성격과 의욕차다.

대학 졸업후 취업이 어려워지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교대와 사대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공부는 잘하지만 사회성은 떨어져 학생 통솔에 문제가 있는 교사들도있다. 교사직에 적합하지 않은 이런 초년병 교사들은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의 장난조차 이겨내지 못하고 학생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거나 다른 교사들에게 통솔을의뢰하여, 담임으로서의 권위가크게 떨어지게 된다.이들은문제 학생들을 적극 선도하기보다는 ‘1년만 참으면 된다’는 식으로 외면하게 되어,결국 집단 폭력의 피해는 고스란히학생 개개인이 지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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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어떻게 줄일 것인가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체벌을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전교조에 부정적인 우파 단체들이 이런 주장을 편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교사의 체벌모습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담아 경찰에 신고하는 아이들이, 다시 체벌이 부활됐다고 해서 고분고분 맞고만 있을까? 또 선생에게 맞은 아이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반성을 할까? 아마도 억울하다며 부모에게 일러바쳐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와 교사에게 대드는 일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이런 복잡한 일들이 예상되는데도 교사들은 다시 매를 들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체벌 부활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부모라면 몰라도(부모도 체벌보다는 설득이 낫다), 교사가 아이를 때려서 잘못을 바로잡는 시대는 지나갔다.

학교폭력의 예방은 교육전반의 개선을 통해 찾을 수 밖에 없다.
먼저, 폭력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범죄라는 인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 ‘심리극’ 등을 통해 ‘왕따’의 비인간성과 폭력성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한 방송사 교육 프로그램에서 한 반 아이들에게 돌아가며 한 학생을 ‘왕따’시키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아이를 괴롭힐 때는 재미삼아 하던 아이들이, 자신이 ‘왕따’가 되어 집단적으로 놀림을 받게되자 큰 심리적 충격을 받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보았다. 이들은 실험이 끝난 뒤 공통적으로 “왕따의 심정을 알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둘째, 학기초에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회의를 통해 교실내 행동규칙을 정하고 이를 어기는 아이들은 학생들 전체의 이름으로 불이익을 주는 ‘학생자율 벌칙제’ 같은 것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유사한 것이 일선 학교에서 행해지고는 있지만, 교사의 일방적 지시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보다는 ‘민사고’ 등 일부 특성화고교처럼 학생 모두가 참여하여 ‘규칙’을 정하고 벌칙도 학생 모두가 주는 방식이 가장 제어력이 있다. 이런 경우 일부 신문이 제안하듯이 폭력현장을 목격했을 때 아이들이 일제히 ”멈춰“라고 외치거나 호루라기를 부는 것도 방법이다. 이는 특히 저학년 교실에서는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폭력의 문제를 개인간의 문제로 하지않고, 반(학교) 전체의 문제로 만들어 아이들 스스로 제어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교사와 학생간의 교류와 대화를 늘리고, 교실내 일들에 대한 교사의 관심과 책임의식을 높여야 한다. 교사는 아이의 성적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소질과 취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과 대화가 통하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또 가해-피해관계에 있는 학생들이나 갈등관계에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화해시키고 친구로 만들어주느냐는 교사의 능력과 아이디어에 크게 달려있다. 가령 어떤 소그룹 활동에서 이런 아이들이 한 그룹에 속해 다른 그룹과 경쟁하면서 ‘일심동체의 경험’을 하고나면 갈등관계가 해소되는 경우가 있다. ‘왕따’ 초기에는 교사가 학생들과 얼마나 가깝게 대화하고 친하게 지내느냐에 따라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일선 상담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사가 아이들과 적극 대화하고 친하게 지내는 교실에는 왕따가 없다고 한다.

넷째, 교사의 임무 중에 ‘잘 가르치는 것’ 못지않게 ‘아이들을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교육부는 문제아동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고,또 교실을 평화롭고 즐겁게 잘 이끄는 교사에게는 높은 가산점을 주어야 한다.반대로 폭력 사실을 외면했다가 나중에 일이 터지는 불성실한 담임 교사에게는 벌점을 주는 제도도 검토해야 한다.

다섯째, 경기도 여주 일진회 사건처럼 조직적이고 상습적이며 폭력적인 불량서클의 경우, 개별 교사차원에서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학생들은 학교와 지역 경찰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대처해야 한다. 이런 조직 범죄가 파악되면 신속히 학교내에 전담조직을 만들고, 지역 경찰과 협력하여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이들에게 재교육을 실시함과 동시에 향후 법적 처벌가능성을 경고하고(이는 형사처벌을 줄여 아이의 인생에도 희망을 줄수 있다), 부모들에게도 그 심각성을 일깨워야 한다. 경찰은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학교는 결손가정 아이에게멘토를 만들어주는 등실질적인 해결대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섯째, 약 5년 단위로 교사로서의 자질을 종합 평가하여, 부적합 판정을 받는 교사는 이직하게 하는 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운동 선수는 운동을 못하면 체육계를 떠나고, 엔지니어는 새로운 기술을 못익히면 직장을 잃는다.한번 선생이 되면 평생토록 교사직을 보장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공무원도 마찬가지). 심지어 학생을 성추행해도 복직시키는 지금의 한국 교육계는‘이기주의 집단’이란 비판을 들어도 싸다. 치열한 경쟁이 없고 엄격한 평가가 없는 조직은 썩게 마련이다. 초중고에서일부 교사들이 성추행, 노름, 외도 등으로 물의를 빚는 것도‘철밥그릇’에 따른 심리적 해이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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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길을 가라’고 말한 스티브 잡스>

◆학교폭력의 뿌리는 사회구조에 있다
‘학교란 무엇인가’ ‘교사란 무엇인가’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 학교폭력의 뿌리는 사회구조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생각해보자. 한국에서 학교란 ‘인격과 지식을 겸비한 사회적 인간을 길러내는 곳’이라는 교육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또 교사 역시 ‘교육자’의 위상을 잃은 지 오래됐고 그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지금 학교와 교사는 ‘좋은 점수’–>‘좋은 대학’–>‘좋은 일자리’로 연결되는 한국사회의 거대한 생존경쟁의 톱니바퀴 속에서 점수따기를 도와주는 작은 부속품이 된지 오래다. 아무리 인격적으로 훌륭한 교사라도 제자들을 ‘좋은 대학(특목고)’에 넣지 못하면 무능한 교사로 평가받는 마당에 ‘학생지도’에 정열을 바칠 선생은 거의 없다. 잘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는 학원 강사보다 못한 존재로 멸시받는 세상이다. 즉 ‘점수’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입시위주 교육에 ‘무너진 교실’과 ‘회피하는 교사’ 문제의 뿌리가 박혀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들만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대다수 교사들은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지만 교육을 둘러싼 거대한 사회구조가 ‘경쟁’과 ‘점수’를 최고의 가치로 치고 있기 때문에 교사들도 어쩔수 없이 아이들을달달 볶을 수밖에 없다. ‘좋은 대학’ 나와야 ‘좋은 직장’을 얻고 높은 월급을 받아 잘 살수 있게 한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교실도 교사도 근본적으로 바뀔 수가 없다. 그렇다면사회구조를바꾸어야교실과 교사들도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점수와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를 ‘소질과 실력’을 중시하는 사회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중졸이든 고졸이든 전문대졸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실력을 쌓고 열심히 노력하면 먹고살수 있을 만큼의 대우를 받고 행복하게 살수 있는 사회가 되면, 아이들은 굳이 ‘좋은 대학’ 가기 위해 하기도 싫은 과목에 머리를 싸맬 필요도 없고, 교사들 역시 점수 때문에 아이들을괴롭힐 필요도 없다. 영어 수학을 잘하는 아이나,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나, 노래와 춤을 잘하는 아이나, 빵을 잘 만드는 아이나, 목공을 잘하는 아이가 자기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했을 때 다 행복하게 살수 있다면, 학교 교육도 달라지고 교사들도 달라질 것이다. 학교는 점수에 상관없이 아이들을 평등하게 존중하며, 각자의 소질에 따라 가르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고졸자 정규직 채용을 시작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이는 앞으로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또 직업고등학교와 직업전문학교에 대한 정부지원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반대로 고학력 실업자 양산의 주범인 과도한 대학정원은 대폭 삭감하고, 자격이 미달하거나 학생모집이 잘 안되는 대학들은 과감하게 폐쇄해야 한다. 100명의 청소년 중 83명이 대학을 가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교육 인플레’가 가장 심한 나라이다. 이들 대졸생 전원이 TOEFL 만점을 받고 최고의 스펙을 쌓아도 구조적으로 절반도 채 취업을 못하는게 현실이다. 하지만전국의 모든 대학 교수들은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데 취직할 수 있다“고말한다.아마도 일부 교수들은 마음속으로 제자가 취직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기 밥그릇 때문에진실을 말하지 못할것이다.그가 진정으로 학생을 사랑한다면"자네는 지금이라도 직업학교로 가는게 낫네"라고충고해줘야 한다. 중고등학교 교사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고득점’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기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나가게 도와줘야 한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얼마나 큰 시간과 돈의 낭비인가.

작년말 타계한 IT계의 영웅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한정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한 말과 너무나 흡사하다. 한국에서도 이들처럼 “너의 길을 가라”고 소신있게 가르치는 교사는 얼마나 될까. 시험성적보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영혼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교사들이 늘어나고 그런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이 점수나 외모에 관계없이 똑같이 존중받으며 신나게 공부하는 날은 언제쯤 올까.한국의 교실에서진정으로 ‘깨어있는 선생님’이 늘어날 때, 학교폭력의 비극은 줄어들 것이다.hbjee@chosun.com

[이 글은평소 교육에 관심 있는필자 개인의 의견을피력한 것입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와무관합니다. 블로그 방문자 여러분의 비판과 조언을 기대합니다. 욕설이나 비문은 사양합니다.]

11 Comments

  1. 풀잎사랑

    2012년 1월 6일 at 8:01 오후

    우리가 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폭력을 쓰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한국의 학교가 이렇게 과격한 아이들이 많아 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성적 위주로만 가르치고 인성교육은 소홀히 했다.. 라고 한다면
    이 글을 읽고서 화살이 저한테로 올까 싶네요.ㅎ
    열심히 아이들을 선도하며 가르친다고 해도
    방과후의 행동은 전혀 제약을 안 받으니 즈그들 맘대로?
    부모님은 바쁘고, 학원에만 보내주면 되는 줄 알고 있으니 이또한 문제중의 큰 문제지요.
    장차 이 나라를 끌어 나갈 청소년들이.. 안타깝습니다.
       

  2. daskors

    2012년 1월 7일 at 1:42 오전

    요즘들어 갑자기 새삼스럽게 여기저기서 학교폭력 왕따에대해 호들갑떠는거 어처구니없군요 .이미 90년대에도 한국의 방송에서는 피디수첨 .그것이알고싶다 뉴스추적등에서 학교폭력 왕따를 엄청호듧갑떨고 요란스럽게 지금보다더 많이 떠들은적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십몇년이 지난지금도 아직도 새삶스럼게 몇몇사건 가지고는 마치 한국의 학교저체가 그런거가처럼 호들갑떠는게 정말 어처구니없고 한심하네요 ㄱ렇지않은 학교가 대두분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학교폭력 왕따는 미국 유럽도 한국보다 더심하면 심하지 못하지 않습니다 엠비시 뉴스데스크에서 미국특파원이 직접취재해서 보도한거 보시죠 .미국에서도 전체학생의 30퍼센트 이상이 학교폭력과 왕따을 경험햇고 어떤 학생은 자기를 괴롭히는 가해학생을 죽여서 무죄판결까지 받았더군요 .어제뉴스에서도 프랑스에서 어떤 소녀는 얼굴이 못생겻다고 친구들라부터 왕따를 당하다가 자살했더군요 .저렇듯이 미국 유럽등에서도 왕따 학교폭력이 심합니다 한국만 그런게 아닙니다 한국은 원인이 세게최고의 인터넷 중독과 게임중독때문에 그런겁니다

    학교폭력은 미국 유럽에서도 많이발생합니다 한국의 교육여건이 지금보다 훨씬 얼악했던 70년대 80년데에도 학교폭력은 거의없었씁니다 그당시는 학급마다 학생수가 보통 80명이나 되엇는데도말입니다 지금은 한학급당 평균 30여명정도입니다 그럼에도 학교폭력이나 왕따가 발생하는건 게임같은것에 빠져서 학생들이 자제심을 잃고 인간미가 부족해서지 교육여건을 운운하는건 말도안되는 무식한소립니다 .학생개개인이 게임이나 인터넷에 빠지고 인간미가 사라지고 대화가부족하고 그래서 저런 사건이 발생하는거지 교육여건과는 아무상관이없는겁니다
    교육여건은 지금이 못살건에전보다 훨좋습니다 인그헐습니까?

    그리고 그 한국의 가해학생 두명도 게임에빠져서 그렇게된겁니다 뉴스 보시면 모릅니까?그거랑 교육여건과 무슨상관이있습니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과 아이티 산없이 말전해서 게임과 인터넷에 빠진 학생들이 많습니다 인터넷 도박도 만연해있습니다 그런거 때문에 이번학교폭력도 발생한거지 교육여건 핑계대는건 말도안되는 겁니다 그리고 왕따는 일본놈들의문화가 아니라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유럽에서든 오래전부터 다있는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도 흑인학생과 소수민족학생따돌림 당합니다    

  3. 벤조

    2012년 1월 8일 at 2:39 오전

    인터넷과 아이티.
    거기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사회가 문제 아닌가요?
    아이들에게 인터넷 부모와 교사로는 부족합니다.
    전기가 끊어지면 없어지는 그런 기계가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구요.

    김정일이 죽었을 때도 신문은 계속 이 기사를 냈지요.
    저는 아직도 한참 더 이슈화 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잠시 들끓다가 잊혀지는 ‘기사’가 아니길 바랍니다.   

  4. 지해범

    2012년 1월 8일 at 3:24 오후

    풀사님, 지적대로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왕따’라는게 없었죠.
    지금의 문제는 결국 어른들이 만든 제도와 사회분위기 탓으로 보입니다.
    어른들의 문제를 아이들에게만 돌려서는 안되겠지요.   

  5. 지해범

    2012년 1월 8일 at 3:29 오후

    daskors님은 미국 유럽의 왕따 현상이 한국보다 심하니 한국은 그냥 놔두자는 얘기인가요?
    그리고 학교시설 같은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교육여건이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나빠진 것도 있지요. 그것이 바로 학우들간의 관계이며, 그것 때문에 왕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학우들간의 관계가 나빠진 것은 바로 입시위주의 지나친 경쟁 탓이니, 교육여건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것이지요.    

  6. 지해범

    2012년 1월 8일 at 3:31 오후

    벤조님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학교 현장의 교육이 인터넷 등에 많이 의존하다보니 교사와 아이들간의 인간적인 접촉이 줄어들지요.    

  7. Old Bar^n

    2012년 1월 10일 at 5:44 오후

    옛날에는 왕따가 아니라 그 역, 깡패가 있었지요.
    그놈들 등쌀에 못살겠던거나
    같은것 아닌가 합니다.

    누리는 놈들만 누리자는거지요.
    외국 북미의 왕따는 같은 개념이지만
    두들겨 패는게 없습니다.
    일본의 이지메인가 뭔가가 들어온 수입현상인가 합니다.
    모든 젊은이 문화가 망국적인건 다 일본을 통해 왔어요.
    선택적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데 나쁜건 먼저 자리잡고 오래 가는것 같습니다.
    강한 처벌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8. 세인트

    2012년 1월 18일 at 1:49 오후

    예나지금이나 학교에서 말썽 부리는 놈들은 최소한 한둘씩 꼭 있습니다.
    달라진게 있다면 예전에는 선생님을 무서워 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거죠.
    거기에는 몇몇 부적절한 선생님들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는 자기 자식들이 그짓거리들을 하고 돌아다니는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들 책임이 우선이죠.

    이 문제는 쉽게 해결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살아보니 사람의 근본은 바뀌는게 아니더군요. 바뀐 척을 하는거지…
    따라서 어렸을 때 잘못된 것을 강하게 뜯어 고쳐주는 교육도 필요한데
    모든 애들에게 필요한 건 아닐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애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몇몇 미꾸라지들 봐주다가 대다수 아이들의 학습 분위기를 망치느니…
    문제 있는 놈들만 한쪽으로 싹쓸어다 강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제일 중요한 건…
    "남들도 그렇다더라", "옛날부터 다 그러고 자랐네", "소수의 얘기들이네" 하고
    무책임 얘기만 나열하고 해결 시도를 위해 아무것도 안하는 것…
    예전에 대만의 장재석 총통이던가 하는 분이
    도둑질을 근절하기 위해서 도둑질 하는 놈들 잡아다 몇놈 시범 삼아서 손을 짤랐더니
    그 다음부터 도둑들이 자취를 감췄더라는 얘기를 들어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시범 삼아 강력한 뭔가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바뀌지 않을까요 ?   

  9. 눈솔

    2012년 1월 18일 at 2:46 오후

    저는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중인 아이를 두고 있는 아빠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제가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쏟고 있는지 모릅니다.
    바로 제 아이가 왕따와 폭행의 전형적인 타겟이 되어 괴로움을 겪고 있거든요.
    현재 교장과 담임 교사에게 이야기를 꺼내서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고자 하고 있긴 하지만 거의 난망해 보여 절망하고 있습니다.

    지해범님, 님의 분석과 대책에 대해 십분 공감하고 온 맘으로 지지를 보내는 바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현재 학교 폭력과 왕따의 희생양이 되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채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수많은 아이들…
    제 아이를 포함한 전국의 수많은 아이들은 당장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지해범님의 대책은 사회 근원을 바꿔야 할 성질의 것과
    장기적인 검토와 실행을 요하는 것들이라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고
    그 사이에 우리 아이는 시들 대로 시들다가 삶이 망가져 버릴 것만 같답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는데요,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님께서 좀더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님께서는 정부부처나 교육계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실 수는 없나요?
    머지않아 새학기, 아니 개학이 시작되는데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서 우리 아이를 지켜줘야 할 지 실로 난감하여
    저는 발만 굴리며 자책과 한탄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해범님, 다시 한 번 님의 글에 지지와 성원을 보내면서
    님께서 힘 닿는 범위에서 저희 아이같은 희생양들에게 힘이 되어 주실 것을
    간곡히,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0. 지해범

    2012년 1월 18일 at 4:05 오후

    눈솔님,아이가 왕따 집단폭력의 피해자라니 가슴이 아픕니다.
    먼저 정부부처나 교육청의 공무원들에게는 희망을 걸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공무원들은 학교폭력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며, 발벗고 나서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한국교육에 진정으로 책임감이 있다면 학교를 이렇게까지 만들지는 않았겠지요. 공무원들 중에는 골치아픈 일은 피하고 하루하루 시간을 때워 국민세금만 축내는 ‘철밥통’이 많다고 봅니다.
    만약 제 아이가 이런 일을 당한다면, 눈솔님과 마찬가지로 먼저 교장,교사와 만나 의논하겠습니다. 교장과 교사가 강한 의지가 있다면 뭔가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왕따시키는 아이들도 만나보겠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 중 핵심인 아이들의 부모도 만나서 협조를 구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이를 전학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일반학교가 여의치 않다면 대안학교 같은곳을 찾아보겠습니다.   

  11. 최영주

    2012년 1월 21일 at 2:28 오후

    사회가 어쩌고 하는건 일단 무시하고 가르치는게 낳다고 봅니다.. 선생님들은 이미 사회 속에서 살기 때문에 사회가 더 중요하니깐 사회에서 보는 시각, 이미지, 능력과 학력 이런걸 염두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할수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한테 이런 위주로 가르쳐주면 안될거라 생각합니다… 교육자라면 사회는 나중이고 일단 개인의 욕망을 똑바로 직시하고 대처하는 법, 어떤 일이든 근본, 원인을 먼저 이해해보기 등의 중요성을 알려줘야 할 것이고.. 요즘 애들이 "씨x년" "니가 뭔데" 이런식으로 나선다고 그저 무시하기 보다는 너희가 그런 말을 들을면 화를 낼 것이면서 그런 말을 함부러 다른 사람에게 해도 되느냐, 너희가 하고 싶은데로 하는것만이 바른 방식이다고 생각하냐. 욕할 정도의 불만의 수준인가. 등등으로 훈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말이 먹히질 않는 학생들,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요. 그러나 교육자라면 공부 가르치는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법적인 소송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할말이라면 당당하게 해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어느 방법으로 소통해야 세상에 영향력이 생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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