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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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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칸의 어의로 활약한 한국인 의사 이태준

칭기스칸의 땅 몽골 초원을 가다<7/끝>

자이승 전망대와 ‘몽골의 御醫’ 이태준 의사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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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승 전망대의 타일 벽화/사진=지해범>

다음 행선지는자이승 전망대라는 곳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에는 혁명열사를 상징하는 조각상과 타일벽화가 있다.

전망대로 가는 길에서 산쪽을 쳐다보니 산 중턱에 크게 그려놓은 칭기스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흰가루로 그렸을 법한 그 얼굴은인자함과위엄이 함께 서려있었다. 칭기스칸에 대한 몽골인들의존경심과 자부심을 상징하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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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승 전망대가 있는 산에 그려진 칭기스칸얼굴.그에 대한 몽골인들의존경심을보여준다./사진=지해범>

자이승 전망대는소련의 도움으로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깃발을 든 혁명 열사의 얼굴은몽골인이 아니라 러시아인의 얼굴이다. 깃발과 별 등 구소련이 좋아했던 상징물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전망대 맨 꼭대기에 있는 원형의벽에는 타일 벽화가 조성되어 있다.

벽화에는 몽골의 여인이 소련 군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그 옆에서 중국인이 지켜보는장면이 묘사돼있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세 나라의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벽화에는 또 소련과 몽골의 병사들이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짓밟는 장면도 있다.

자이승 전망대에서는 울란바타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도시는 한국이나 중국의 여느 대도시와 다름없다. 차이가 있다면 도시 주변부를 전통가옥과 게르들이 둘러싸고 있다는 점이다. 몽골의 역사와 전통, 문화가 살아숨쉬는 도시를 건설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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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승 전망대 입구/사진=지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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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욱일승천기를 짓밟고 있는소련-몽골 병사들/사진=지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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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승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울란바타르 시내/사진=지해범>

자이승 전망대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이태준 의사 기념공원이 있다.

몽골 수도에 한국인을 기념하는 공원이 있다는 것은 특별하다. 188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태준 의사(1883~1921)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졸업하고 안창호 선생의 권유로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청년학구회에 가입하였다가, 한일합방 이후 체포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한 뒤 다시 몽골로 건너가 활동한 의사이다. 몽골의 마지막 왕 보그드 칸의 어의로 활동한 그는 소련 코민테른의 자금 운반을 돕기도 하고 김원봉의 의열단에 가입해 폭탄제조자를 소개하는등 항일운동에도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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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기념공원 입구 현판/사진=지해범>

이태준 선생은 그러나 1921년 몽골 지역을 점령한 러시아 反혁명세력인 ‘미친 남작’ 운게른에 붙잡혀 처형되고 말았다. 이태준 선생은 모스크바 자금 운송과 폭탄전문가 마자르를 김원봉에게 소개할 임부를 수행하기 위해 중국군 사령관 가오시린의 탈출제의를 거부하고 울란바타르에 남아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그가 이때 피살되지 않았더라면 항일운동과 한-몽골 관계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의사의 몸으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조국을 위해 청춘을 다바친 한선열의 삶의 궤적을 보면서, 우리 일행은 국가의 현실을돌아보며 기념비 앞에서 묵념했다. 항일투자의 자손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외면받아고통의 나날을 살아온반면, 친일의 후손들은 많은 재산과 좋은 교육을 누리며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주류세력으로 행세하는이땅의 현실에 통탄하면서…

다음은 기념공원 안에 걸린 이태준 선생의 일생에 관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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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공원내 자료/사진=지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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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공원내 자료/사진=지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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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공원내 자료/사진=지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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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선생 기념공원. 작은 전시관과 정자가 전부다. 좀더 크게 만들어서 몽골인들도 와서 보고 학습하고 한국을 생각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사진=지해범>

다음날(7월9일) 오전 몽골 법제원 건물에서 ‘한-몽골 자원협력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나는 토론자로 참여해, 몽골 도착 이후 계속 가지고 있었던 의문인 몽골 발전의 ‘비전’에대해 질문했다.

회의에 참석한 몽골 정부 관계자와 학자들은 이에 대해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다. 한 연구자가 "우리는자원을 수출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는 호주를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정도의 답변만 돌아왔다. 내가 기대했던 답변으로는 미흡했다.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환경을 경제발전과 조화시키는 그런 ‘몽골 발전모델’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날 오후 학술탐사단 일행은 몽골 전통 민속공연인 ‘투밍에흐’를 관람했으나, 일체 사진을 못찍게 해 소개할 사진이 없다.<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라고 했다.>

다음날 오전 현지 마트에서 시베리아 열차여행에 필요한 식품들을 준비한 뒤,낮 12시50분발 이르쿠츠크 행 열차에 올랐다. 그로부터 끊임없이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평원과 자작나무숲, 그리고 초원의 말들을 보며, 일행은 더욱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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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몽골 자원협력학술회의.이 중에필자도 있다./사진=학술탐사단>

이로써 간략하게나마 이번 몽골 여행기를 마친다.

몽골 초원에서는 칭기스칸의기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 혼잡한 울란바타르의모습을 보면서방향없는 발전방식에 안타까웠다. 생김새와 문화, 언어(알타이어계로 어순이 한글과 비슷하다고 한다) 등에서는 유사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한-몽골은 여러모로 협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은 개발경험을 몽골과 공유하면서 몽골이 시행착오를 줄일수 있도록 돕고,몽골은 풍부한 천연자원 개발에 한국기업을 끌어들여 대중국-대러시아 의존도를줄일 필요가 있다. 정부와 기업이 좀 더 몽골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양국간 우호와 협력이 한층 깊어지길 기대한다. /울란바타르=지해범

17 Comments

  1. 참나무.

    2012년 8월 17일 at 12:20 오후

    의사 이태준 저는 지기자 님 때문에 알게됩니다.
    몽골 여행 계획하는 분들께 많은 도움되겠지요
    자료 한가득인 여행기 쓰시느라 정말 수고많으셨어요
    감사히게 잘 읽었습니다.    

  2. 김진아

    2012년 8월 17일 at 2:57 오후

    몽골과의 경제협약으로 말씀처럼 대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 크게 동감합니다.

    몽골에서도 훌륭한 한국인이 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저 역시도 처음 알게 됩니다.
    ‘의사 이태준’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있어서 좋습니다.

    재미난 몽골 여행기,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이야기를 만나는 것이 늘 즐겁습니다.

    고맙습니다. ^^   

  3. 지해범

    2012년 8월 17일 at 7:09 오후

    참나무님,
    긴 여행기 읽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4. 지해범

    2012년 8월 17일 at 7:10 오후

    진아님,
    자전거 박물관 얘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5. 데레사

    2012년 8월 17일 at 10:07 오후

    처음 안 사실입니다.
    고맙게 잘 읽고 갑니다.   

  6. 사샤

    2012년 8월 18일 at 12:10 오전

    위에 보면 청천백일기를 짓밟는 소련 군인들이란 사진이 있는데 그건 청천백일기가 아니라 일본의 욱일승천기 입니다. 청천백일기는 중화민국의 국기 입니다.

    가로세로 비율 3:2
    1912년부터 1928년까지 사용된 군벌 정부의 깃발중화민국의 국기는 청천백일만지홍기(青天白日滿地紅旗) 또는 청천백일기(青天白日旗)이다. 1928년 장제스가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를 성립시켰을 때 정식으로 사용되었다.

    가로세로 비율 3:2
    1912년부터 1928년까지 사용된 군벌 정부의 깃발중화민국의 국기는 청천백일만지홍기(青天白日滿地紅旗) 또는 청천백일기(青天白日旗)이다. 1928년 장제스가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를 성립시켰을 때 정식으로 사용되었다.

       

  7. 벤조

    2012년 8월 18일 at 2:53 오전

    제가 다녀본 곳은,
    민간인이 길 다 터놓으면 정부관리가 나중에 들어와 복장터지는 소리.
    토익영어, 수학정석만 잘했으니까…ㅎㅎ
       

  8. 도대현

    2012년 8월 18일 at 7:11 오전

    소련 병사가 밟고 있는 것은
    타이완의 ‘청천백일기’가 아닌
    일본의 ‘욱일승천기’로 보이네요.   

  9. 지해범

    2012년 8월 18일 at 11:46 오전

    샤샤님,도대현님, 감사합니다.
    제가 잠시 착각을 했네요.    

  10. Old Bar^n

    2012년 8월 18일 at 3:29 오후

    그런분이 계셨군요…..
    애석한 일입니다.

       

  11. 참나무.

    2012년 8월 18일 at 4:56 오후

    맨 마지막 사진 지기자님 마이크 잡은 모습 이제서야 봅니다
    ( 오타내어 죄송합니다…^^)   

  12. 지해범

    2012년 8월 19일 at 4:29 오후

    Old Bar^n님
    그렇지요?    

  13. 지해범

    2012년 8월 19일 at 4:30 오후

    참나무님,
    저의 정체를 폭로하시면 안되는데…ㅎㅎ   

  14. Lisa♡

    2012년 8월 22일 at 6:16 오후

    울란바토를 생각하면 답답해집니다.

    근데 사진에 머리가 완전 ㅈㅍ스타일처럼(ㅋㅋ)
    짧아 보이네요.   

  15. 깨달음(인회)

    2012년 8월 23일 at 9:17 오전

    자이승전망대를 전 몽골드나들기 초반에만 갔는데 아이러니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16. 지해범

    2012년 8월 23일 at 2:06 오후

    리사님,
    사진속 왼쪽에서 세번째(ㅈㅍ 스따일?)가 저라는 걸 얘기하시면 안되는데…국기누설!   

  17. 지해범

    2012년 8월 23일 at 2:07 오후

    인회님,
    저도 자이승 전망대의 정체가 아리송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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