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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되살아난다 - China Inside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되살아난다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되살아난다<하>

지해범(조선일보 논설위원 겸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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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칭에서 마오쩌둥 노선을실천에 옮긴 보시라이와 그의 부인 구카이라이>

지난 30여년 고정돼 있던 마오의 위상은 최근 신좌파(新左派)들의 ‘마오 부활’ 운동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오의 사상을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중국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좌파란 용어는 1994년 런던에서 출판되던 ‘New Left Review’ 편집장을 중국에 초청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청화(淸華)대학의 추이즈위안(崔之元)ㆍ왕후이(旺暉) 교수, 홍콩중문대학의 랑셴핑(郞咸平)ㆍ왕샤오광(王紹光) 교수, 광저우(廣州) 중산대학의 간양(甘陽) 인문고등연구원장, 중앙민족대학의 장홍량(張宏良) 교수, 사회과학원의 줘따페이(左大培) 연구원, 중국문화연구소의 모루오 연구원 등이 그들이다. [불법복제-전재금지]

신좌파들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중국이 걸어온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기 시작했다. ‘(중국식) 시장경제 발전에 부합하는 정치체제는 무엇인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일한가’ ‘시장경제라는 말로 중국의 제도를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소유형태는 무엇인가’ 등이다. 이런 질문을 통해 신좌파들은 마오가 추구했던 ‘공정’과 ‘평등’의 이념이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병폐를 치유하는 이념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이들도 시장경제를 긍정하고 민주주의를 주창하지만, 공정과 평등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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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之元>

신좌파들은 종전까지 중국인들이 달려왔던 ‘무비판적 서구화’를 반성하면서 ‘마오의 사회주의’에서 계승할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내자고 주장하여 호응을 얻었다. 중국에 사회주의적 요소가 남아있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그동안 ‘발전모델’로 삼았던 서구식 발전방식이 2008년말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보고 ‘중국식 모델’ 찾기에 나섰다. 그동안 자신들이 팽개쳤던 유학과 전통문화의 소중함도 다시 강조하기 시작했다. [불법복제-전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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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郞咸平>

신좌파의 사상이현실에 적용된 대표적 사례가 보시라이(薄熙來)의 ‘총칭(重慶)모델’이다. 총칭모델은 2007년 3월 국무원이 총칭을 ‘도시·농촌 공동발전 시범구’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도농복합체(城鄕一體)’를 목표로 한 이 개혁은 총칭에서 일하는 380만 농민공에게 호적(戶口)을 주고 도시 주민과 동일한 교육 의료혜택을 받게 했다. 또 이들에게 도시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해 분양하여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다. 좌파진영에서 총칭모델은 마오의 ‘평등과 분배’의 이념을 적용해 중국이 당면한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최고 지도부 진입을 노리던 보시라이가 혁명가요를 부활하는 등 문혁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양상을 보이자 역풍을 맞았다. 올해초 보시라이는 부인의 살인혐의로 낙마하고 총칭모델도 좌초하고 말았다.

최근 신좌파들의 ‘마오 부활’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이를 견제하는 우파들의 활동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일 베이징 제8중학교에 60대 후반의 노인들이 찾아와 백발이 성성한 퇴직 교사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특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중국 신문 보도에 따르면, 문화혁명(1966~76년) 당시 홍위병이었던 천샤오루(陳小魯ㆍ67세)와 동급생 15명은 모교에서 옛 스승들을 만나 “문혁 당시 저지른 무례한 행동들에 대해 학생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이미 사과가 너무 늦었지만 영혼의 정화와 사회 진보, 민족의 미래를 위해 꼭 사과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미 80대가 된 노교사들은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며 천과 동료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중국 혁명원로 천이(陳毅)의 아들인 그는 “문혁 기간 학교 혁명위원회 주임으로서 일부 교사와 학생들이 비판투쟁과 노동개조를 당하게 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면서 “헌법을 위반하고 개인 인권을 침해한 비인도적 행위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의 행동에는 마오쩌둥의 대표적 과오인 문화혁명에 대해 젊은 세대가 정확히 인식하여 ‘마오 숭배’ 열풍에 맹목적으로 휩쓸리지 말도록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불법복제-전재금지]

[陳小魯 사과문아래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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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小魯>

중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좌우파 이념대결과 관련하여 주목해서 볼 것은 작년 11월 공산당 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채택된 ‘정치보고’의 내용이다.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주석과 시진핑 차기 주석이 협력하여 만든 이 보고문은 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관련, ‘막히고 좁은 옛 길(老路)이나 깃발을 쉽게 바꾸는 잘못된 길(邪路)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옛 길’은 마오 시대의 문화혁명식 교조주의를, ‘잘못된 길’은 한계에 부딪힌 서구식 신자유주의를 각각 뜻한다. 그러면서 보고문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길’을 갈 것이라고 밝혔다. 공산당 지도부는 신좌파나 우파가 주장하는 어느 한쪽 노선이 아닌 ‘제3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마오의 문혁으로 부친 시중쉰(習仲勳)과 함께 하방의 고통을 겪은 시진핑이 보시라이를 추종하는 신좌파들의 이념공세를 견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로써 신좌파의 ‘마오 부활’ 운동도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게 됐다.

총칭모델의 좌초와 시진핑의 견제로 신좌파의 활동이 생명력을 잃었다고 보기는이르다. 신좌파 운동은 시진핑 지도부가 부(富)의 재분배와 부패척결,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실패할 경우 언제든지 불붙을 수 있는 위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오는 죽어 박물관에 누워있지만, 그의 사상은 21세기 중국 사회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지해범(조선일보 기자)[불법복제-전재금지]

[첨부]

陈小鲁反思文革的道歉信全文如下:

感谢这位同学保存了这些珍贵的照片,感谢黄坚在8月18日将这些照片公布于众,那是一段不堪回首,但要终身面对的日子。我作为当时八中学生领袖和校革委会主任,对校领导和一些老师、同学被批斗,被劳改负有直接责任。在运动初期我积极造反,组织批斗过校领导,后来作为校革委会主任,又没有勇气制止违反人道主义的迫害行为,因为害怕被人说成老保,说成反对文革,那是个令人恐惧的年代。

今天我想借网络向他们表达我真诚的道歉,八中老三届同学会正在安排一次与老校领导和老师的聚会,我希望能代表曾经伤害过老校领导、老师和同学的老三届校友向他们郑重道歉,不知道校友们是否授权我做这样一个道歉?

目前社会上出现了一股为文革翻案的思潮,我认为如何解读文革是个人的自由,但是违反宪法,侵犯人权的非人道主义行为不应该以任何形式在中国重演!否则谈不上人民幸福,民族富强和中国梦!我的正式道歉太迟了,但是为了灵魂的净化,为了社会的进步,为了民族的未来,必须做这样道歉,没有反思,谈何进步![불법복제-전재금지]

2 Comments

  1. 데레사

    2014년 1월 7일 at 4:19 오후

    정치란 언제나 세력화하기 위하여 서로 견제하고 때로는 부상
    시키기도 하고… 참 어려운 작업이네요.

    북경의 손주들도 마오에 관해서는 많은걸 알고 있더라구요.
    제가 장남삼아 물어보는 말에 척척 답을 하던데요.
    아마 학교에서 배웠나 봅니다.

       

  2. 지해범

    2014년 1월 7일 at 6:31 오후

    그래서 정치가 사람을 버리는 모양입니다.
    중국에서 마오의 부활은, 한국에서 노무현의 부활과 닮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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