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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길위의소녀

길 위의 소녀 – 개정판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성장 소설들을 별로 접하진 않지만 때때로 아주 이렇게 좋은 책을 왜 진작에 안 읽고 있었지 하는 나 자신을 꾸짖을 때가 있다.

더군다나 그것이 절판이란 소문을 들었을 때는 무척 안타깝게 여긴 적도 있었고 내가 읽었을 때 지인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미처 알려주지 못했을 때도 그렇다.

 

이미 2009년도에 출간되어 나온 책으로 이번에 새롭게 표지도 더욱 세련되게 바꾸어서 출간이 된 ‘길 위의 소녀’-

 

제목과 표지가 주는 느낌이 상당히 내용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 듯싶게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살아오면서 때때로 내 맘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일부분은 세상과 타협을 하고 일부분은 수동적인 자세로, 또 일부분은 그것이 설령 진실에 가깝지 않다 하더라도 이미 세상의 어떤 기조의 흐름에 몸을 맡겨버린 세대들이라면 그 또한 넘어가고 말게 되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 중 한 부분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 보이는 두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오래간만에 눈물을 떨어뜨리게 한 진한  감동을 전달받는다.

 

전혀 상반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소녀, 살고 있는 곳, 나이, 학력, 그 어떤 것을 굳이 맞추어 보려 해도 맞출 수가 없는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반 사람들의 눈에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보인다. (겉 부분에 한해서만…)

 

13살의 IQ 160의 영재인 ‘루’는 두 학년을 월반하고도 일등을 놓지 않는 수재이긴 하지만 신발 끈 하나 제대로 매듭을 지을 수없는 지적 조숙아란 판정을 받은 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언니와 오빠 뻘 되는 아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긴 하지만 루는 외롭다.

선뜻 손들고 활발히 발표를 할 수 없는 행동의 소심함,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부분들을 목소리로 표현해서 내뱉는 행동 자체가 괴롭다.

그러던 루는 학교 발표주제로 ‘노숙자’에 관해 조사를 하고 발표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이후 파리 시내 기차역에서 노숙하는 소녀 ‘노’를 만난다.

 

정식 이름은 ‘놀웬’일지만 그녀 스스로 ‘노’라고 부른다.

나이는 루 보다 많은 18살이지만 그녀를 처음 본 인상은 피곤에 찌들고 옷은 더럽고 머리는 헝클어져 며칠을 감지 않는 상태,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예쁜 얼굴을 가진 소녀다.

루는 자신의 숙제 얘기를 하면서 만나줄 것을, 도움을 줄 것을 부탁하게 되고 이후 두 소녀는 약속을 정하고 만난다.

 

왜 ‘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노숙자로 살아가는 것일까?

직업을 왜 갖지 않는 것일까?

두 소녀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매개로 서로에게 길들여져 다.

바로 ‘외로움’이란 공통점-

 

겉으로 보기에 명석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루’에겐 어린 동생을 잃은 충격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다시피 살아가는 엄마가 있고 때론 숨죽이며 벅차오르는 슬픔을 억누른 채 아내와 딸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아빠가 있다.

그들의 가정은 일반적인 가정의 표상이지만 기쁨이나 설렘, 대화 체가 거의 없다시피 삭막한 가정이다.

‘노’ 또한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한 엄마로부터 출생한 이력과 조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던 아픔을 지니고 끝내는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은 후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불운한 소녀다.

 

처음에 ‘노숙자’에 대한 실태를 취재하고자 만난 사이는 이내 두 사람 간의 공통점을 기회로 ‘루’는 ‘노’에게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려 자신의 집으로 오게 하는 결정을 짓게 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흔히 거리나 지하철 안에서 보게 되는 노숙자들의 모습이 많이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실정과도 비슷하게 파리에서도 이러한 모습들을 묘사한 장면들은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살아가지? 란 물음에서 ‘루’가 생각했던 저마다의 ‘사정’들이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라고 결코 이렇게 삶을 원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많이 들게 한다.

 

나이차를 넘어선 두 소녀의 우정은 또 한 사람의 ‘외로움’을 반항아적인 기질로 드러낸 뤼카를 통해서 다른 모습의 행태를 볼 수 있게 한 저자의 등장인물들의 동선들은 억지스럽지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재현해 냈다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살아오는 내내, 난 어디에 있든지 언제나 바깥에 있었다. 난 항상 이미지나 대화의 바깥에 동떨어지고 어긋나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말이나 소리를 나 혼자만 듣는 것 같았다. 나는 액자 바깥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리창 저편에서 그네들이 빤히 듣는 말을 나만 못 듣는 것 같았다.’

 

조숙한 ‘루’의 생각대로, 자신의 의지대로만 하다면 ‘노’는 얼마든지 갱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지만 ‘루’가 바라 본 세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삭막하고 냉철하며 이기적이었기에 한층 성장하는 단계의 소녀에겐 커다란 상심을 안겨준다.

 

 

우리는 초음속 비행기를 띄우고 우주에 로켓도 발사한다.
머리칼 한 올이나 미세한 살갗 부스러기 하나로 범인을 잡아내고,
3주나 냉장고에 처박아 두어도 주름 하나 잡히지 않고 싱싱하게 유지되는 토마토를 만들어 내며,
손톱만 한 반도체 칩에 수십억 가지 정보를 저장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프랑스뿐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거리의 노숙자 문제는 ‘루’와 ‘노’란 두 소녀의 눈을 통해서 사회의 부조리한 법 체계, 완력으로만 나타낼 때의 폭력만이 아닌 소리 없는 무언의 폭력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 ‘사정’에 근거해서 생겨난 노숙자들의 빈곤 문제와 식생활 해결 문제들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문제로서의 심각성과 그 해결성에 대한 생각을 촉구시키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함께인 거지? 그렇지?’

 

이 말의 대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버티기가 삶의 한 연장선이었을 ‘노’의 간절한 ‘버림받음’에 대한 애정의 결핍은 ‘루’가 ‘노’에게 그런 일을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세상의 잣대는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는, 행동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노’를 생각하면 아픔과 함께  진한 여운을 남긴다.

 

원제인 No ET Moi로 (‘노와 나’)로 이 작품으로 저자는 프랑스에서 큰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두 소녀의 각별했던 우정을 통해서 ‘루’는 다시 ‘노’를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이 사건으로 크게 성장한 ‘루’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내본다.

 

‘루’!

넌 세상 그 누구보다도 하기 힘든 결정과 행동을 했으며 그것이 비록 네 뜻대로 세상에서 받아들여주지 않았지만 마랭 선생님 말씀처럼,

 

“포기하지 마요.”

 

그렇다면 언젠가는 저 멀리서 그녀만의  블루종을 입은  ‘노’를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노’도 결코 너를 잊지 않았을 것이라고,  내 곁에 있다면 토닥토닥 위로를 해주고 싶게 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