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수필가로 유명한 사노 요코의 에세이-
당시 이 책을 쓸 때의 나이가 40대이고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작가이지만 글 속에 담긴 저자의 색채는 솔직하다 못해 상대방이 얼굴을 붉힐 정도의 당당하고 돌직구적인 말들이 많이 담겨 있는 책이다.
원제는 <<내 고양이들아, 용서해줘>>라고 하는데 국내 제목이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들 할머니들이 겪었던 격동의 전쟁 시대와 고스란히 닮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전쟁 중에 먹었던 음식, 태어난 연도로 보면 그 당시 무척 획기적이고 도전정신이 강했다고 여겨질 만큼의 외국 유학생활, 아버지의 말대로 예쁘게 태어나지 않아 미래에 먹고 살 걱정거리 없이 어떤 재주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술을 전공했지만 디자인 쪽과는 멀다는 것을 느끼고 판화 쪽이나 그림 쪽으로 선회 해서 오늘날에 책을 내기까지의 사연들이 전개된다.
에세이다보니 어떤 특별한 주제 없이 당시 저자가 느꼈던 40대에 들어서면서 가졌던 기억과 회상들, 그리고 뜻밖에 결혼을 일찍 하게 되고 , 아들을 낳으면서 느끼는 모정이란 감정 앞에 당신 자신보다는 아들이 80이 되었을 때를 상상해 그려보는 글의 대목에선 엄마의 마음이 무엇인지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도 들어있다.
고양이를 많이 그려서인지 책 속에는 내용 속에 고양이 그림이 각기 개성 있게 그려져 있고 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고양이를 그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아들과 얽힌 사연, 어린이 그림책을 그리는 이유와 글 속에 드러난 누구나 느끼는 평범한 일상들을 그녀만의 세밀한 관찰력을 복원해 낸 글들이 돌직구 할머니답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시간이 그저 흘러가기에 무심코 보내버리는 ‘시간’에 대한 생각은 《사는 게 뭐라고》, 《열심히 일하지 않겠습니다》와는 또 다르게 와 닿는 부분들이 있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 시간을 본 사람은 없는데, 어떻게 시간이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시간이라는 말이 생겼을 때, 내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바람을 본 적이 없는데 어릴 때부터 바람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어릴 때부터 누구나 시간을 알고 있다.
(중략) 시간이 딱 적당한 정도로 사람을 따라가는 일은 정말로 드물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시간이 부족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시간은 헐렁한 양복 같을 게다.-P62~63
막상 죽음에 대한 선고를 듣게 되면 당사자로서의 생각은 그다지 밝지 못할 텐데도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죽기까지 2년의 시간 동안 정말 즐겁게 살다 간 저자였다고 하니 솔직하고 시원한 성격답게 아마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그 연장선에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의 기억의 파편들을 드러낸 글들은 여전히 활기가 넘쳐흐르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글의 향기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