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7년 6월 9일

카이사르 1

카이사르 1 마스터스 오브 로마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제5부인 <카이사르 1>이다.

이미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연속적인 발간으로 인해 이야기의 흐름은 여전히 흥미와 역사적인 재미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애정 하는 카이사르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해서 다룬 것을 보더라도 카이사르란 인물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사람임은 틀림이 없다.

 

정치에서는 아군도 적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서로가 반목된 결점들이 있더라도 한 수 접고 동지애를 발산시키는 체제이다.

그렇기에 이미 카이사르는 자신의 딸인 율리아를 폼페이우스와 결혼시킴으로써 정치적인 동지애를 장인과 사위라는 혈연관계로 끈끈하게 맺게 되지만 이 책의 처음 시작처럼 안타깝게도 딸 율리아는 출산 도중 사망했다는 비보를, 더군다나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 아우렐리아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

엄청난 비보였을 텐데도 군인은 군인인지라 애도의 기간을 거친 후에 카이사르는 본격적인 브리타니아와 갈리아의 여러 부족을 분개 별로 무너뜨리며 정복의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영역 활동에 있어 카이사르는 주도면밀하게 본국의 정세 또한 놓치지 않고 있었고 이는 사위였던 폼페이우스가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넘어선 로마 만민의 인기를 차지하고 있던 카이사르에 대해 견제의 눈길을 돌리면서 본격적인 공화정 말기의 정세를 그려낸다.

 

확실히 저자의 필치는 세밀하고 노련하다.

많은 방대한 로마의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주요 등장인물들이 나올 때마다 독자들에게 기억력 회생을 시켜주는 친절성, 비록 야만족이라고 칭했던 갈리아의 한 부족과의 싸움에서도 상대 부족장의 전쟁 옷을 묘사한 부분들은 철저한 고증의 자세와 성실성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냉철하자면 끝없이 냉철하다가도 유머와 지성, 뭇 여성들과의 염문에도 그 흔한 원망조차 듣기 어려웠다던 카이사르의 처신은 이제 본국에서의 핏줄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태,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혼미한 공화정을 뒤엎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으로의 진입을 마칠 준비를 하려는 자의 정신적, 육체적인 자세가 냉혹하게 그려진다.

 

서로가 서로가 취하는 바를 원하는 것이라면 한 눈은 지그시 감고 한 눈은 매의 눈으로 섭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작은 소도구라도 쓸모가 있는 법, 카이사르에게 오랜 원한을 품고 있는 보니 파의 카토와 비불루스와 폼페이우스의 연합, 드디어 로마로 복직해 원로원에 입성한 부투스의 존재는 이후 루비콘 강을 건너기까지의 긴박한 상황들과 이후 정국을 어떻게 그려낼지 다음 편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만일은 없지만 항상 생각하는 상상이 있다.

카이사르의 계획대로 자신이 초대 황제에 오르고 차근차근 로마 제정으로의 초석이 다져졌다면 과연 로마제국은 어떤 모습으로 지금의 유럽 정세를 변화시켰을지, 읽으면서도 내내 여전히 그의 죽음이 안타깝게 여겨질 뿐이다.

 

카이사르에 대한 평, 이 문장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 “카이사르에 관한 한 술책은 습관이 되지 않아. 불가피한 것일 뿐. 폼페이우스는 누구를 속이려 할 때 스스로 거미줄 속에 뒤엉키네. 그래, 그가 거미줄들을 잘 다루기는 하지. 그래도 거미줄은 거미줄이야. 그에 반해 카이사르는 태피스트리를 짜지.” -p. 349~350

 

자, 이제 판은 정해졌고 얼만큼의 정교한 태피스트리를 통해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할지 독자들은 여전히 목마르다.

                                                                                                                          
                                            

 

선한 이웃

선한이웃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책을 모두 읽고서 한참 동안 어떻게 써야할지 기준이 잡힐 질 않았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등의 작품을 통해 익히 알려진 작가가 그리는 1987년 6월은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왔는지에 대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오랜만에 나온 출간작의 배경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야기는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모티프로  출발한 만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대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제목만 보고서 내 나름대로의 착각을 한 점도 한몫을 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선한 이웃, 말 자체의 어감은 부드럽게 다가오지만 이  책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들은 누가 선한 이웃이고 누가 악한 이웃인 지 조차도 모호할 정도의 판단력의 기준에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책은 운동권의 실세로 지목된 미지의 인물인 최민석이라고 불리는 자를 잡기 위해 당시 흔하게 벌어졌던 대학생들과 경찰들의 대치상황을 통해 이 작전에 투입된 김기준이란 인물, 그리고 연극 연출가인 이태주와 배우를 꿈꾸는 여인이자 이태주의 페르소나인 김진아란 여인, 그리고 김기준의 상사인 관리관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그려진다.

 

이태주는 연극으로서 줄리어스 시저에 대한 공연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번역한 대본을 수정하고 배우들을 캐스팅하면서 무대에 올리지만 한 줄의 번역을 바꾸면서 이내 연극이 끝남과 동시에  경찰에 끌려가게 된다.

자신과 동료 배우들이 서로 다른 대우를 받았다는 눈초리는 이내 연극계에서 외면당하고 그 자신 또한 미행의 두려움을 느끼며 재기를 노리던 중 진아를 만나게 되고 그는 진아를 내세워 엘렉트라 란 연극을 올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을 듯한 세 사람의 조합과 만남은 국가의 철저한 계획과 통제하에 길러긴 정보요원 길들이기와 시대의 흐름에 상관없이 자신의 맡은 바대로 임무를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김기준이란 인물이 실패한 작전에 대한 만회를 위해 최민석 잡기에 올인하는 과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 빨갱이를 잡고 좌익분자를 색출하는 일은 정치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민석을 쫓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최민석을 쫓았다. 그냥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충실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제대로 일하는 방식이었다._144쪽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양심대로 행동했을 뿐인 결과로써의 참혹한 사실들을 접하는 과정에서의 독자들은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되며 이후 반전의 결과물을 또 한 번 접하면서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 생존 때문에 악이란 것에 자신도 모르게 발을 내딛고 살았다는 자각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의 국가 개입을 통한 한 개인의 인생을 망치는 과정들이 여전히 시대의 아픔을 전달해준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주도권 하에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라 할지라도 당시 시대의 흐름은 이토록 쉬운 일도 하기 어려웠다는 사실, 철저한 강약 공세을 쥐고 두 사람을 쥐고 펴락 했던 관리자란 인물이 생각했던 그 나름대로의 선의의 정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은 연극 작품을 통해 은유의 문법을 통한  이태주의 주장이 섞이면서 몰입도는 힘들게 하지만 한쪽에선 여전히 본 적이 없는 실세 최민석을 잡기 위해 모든 설계도에 그려진 것처럼 착착 옭아매기 위해 조여 오는 김기준과 또 다른 쪽에선 연극에 대한 논쟁으로 그려진 반대의 상황을 통해 과연 이 설정을 통해 진정한 나 자신은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 “범죄를 규정하는 건 의도가 아니라 결과야. 강요에 따랐든 자발적이었든 간에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범죄는 범죄야, 선의의 거짓말도, 어쩔 수 없는 범죄도 없어. 진실을 감추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그냥 악일 뿐이라고.”-p 246

 

 

의도한 바는 아닌 선한 행동으로 인한 결과물이 결국 악으로 인식되었을 때의 태주처럼 과연 우리들은 선한 이웃이었을까? 아니면 악한 이웃이었을까?

30년이 흐른 지금의 우리들 모습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선한 이웃은 어떤 기준으로 불렸을 때의 모습이었을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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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증명

악마증명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처음 도진기란 이름의 작가를 대한 것이 바로 ‘악마의 증명’이란 책이었다.

소재 자체도 신선했지만 저자의 이력면에서 더욱 흥미를 이끌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 외국처럼 자신의 활동분야에서 주 전공은 전공대로 활동하되 또 다른 번외의 외전처럼 제2의 창작활동이란 전혀 상반되면서도 연관성이 있는 소재를 통해 독자들과의 만남을 모색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직 판사로서 그가 그동안 쌓아왔던 장편들을 대하면서 한국적인 주 무대를 그린 점, 그런 가운데 법정에서 자신의 일을 보다 상세히 다루고 그 안에서 오고 가는 여러 정황들을 보통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토로하는 상황들이 또 다른 한국적인 맛을 느끼게 해 준 덕에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 또한 갖게 했다.

 

이번에 그동안 각 출판사에서 내놓았던 작품들과 미처 발표하지 못했던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발표한 저자의 작품들은 여전히 다시 읽어도 당시의 흥분과 느낌을 되새기게 한다.

 

특히 ‘악마의 증명’같은 경우는 쌍둥이란 점을 이용해  한 사람의 범죄를 증명한다는 기막힌 설정 때문에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

그런 이 작품을 여러 개의 이야기들 속에 첫 번째 주자로 내세운 점은 나만이 아니라 독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동감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기에 첫 주자로 내세운 것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저자의 글들은 하나의 성격을 이어가는 형태의 글이 아닌 다양한 문학적인 시도를 한 작품들이 섞여있다는 점이다.

 

읽으면서 섬뜩했던 ‘죽음이 갈라놓을 때’ 란 작품에서 전혀 도진기 작가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냉혹함을 보였던가 하면 남편을 죽인 여인의 정당방위 주장을 위해 혈기 넘치는 변화사의 활약을 그린 ‘구석의 노인’ 같은 작품은 법 안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증거물과 정황들을 가지고 판결을 내린다고 해도 그 결정이 오랜 인생을 살아온 한 노인의 눈에 비친 인생의 또 다른 면을 통해 들여다보는 방향 전환점과는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그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제대로 알고 이런 법 진행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간사의 새옹지마와 같은 느낌을 여실히 보여줬단 점에서 두 번째로 좋은 작품 대열에 꼽아본다.

 

또한 시간의 연속성의 되풀이로 인한 환상을 곁들인 ‘시간의 뫼비우스’는 당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시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짜릿함을 느낄 수가 있었고, 그 밖의 작품들 또한 분위기가 전혀 다른 내용들을 전해 주기에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이제는 현직 판사라는 법복을 벗고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길을 택한 도진기 작가가 과연 다음 작품에선 자신의 신분과 활동에 힘쓰면서 썼던 작품과는 어떻게 다른 작품을 선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특히 책 말미에 저자가 쓴 내용 중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던 ‘악마의 증명’ 이란 작품의 표절 문제로 방송매체와의 대립을 두었던 결과물의 저간 사정을 짧게나마 알게 된 것이 좋았다.

창작자로서의 자신의 자식처럼 여겨진 작품에 대한 당시의 고통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단 점에서 차후 이러한 소설도 좋지만 단편을 통해서 한국적인 추리 스릴의 장르를 개척할 수 있다는 노력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인 만큼 외국의 소설과 비교해 읽어도 좋은 책이란 생각을 해 본다.

 

도진기 작가의 건필을 빈다.

머그컵을 받았습니다.

컾과 책

 

위블지기 님으로부터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컵을 선물 받았습니다.

요즘은 흔하디 흔한 머그컵이 많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굿즈란 이름으로 해당 금액 이상이면 컵을 주는 행사가 있는지라 집에 컵이 조금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특정 문구, 원하는 문구를 새겨주시는 센스와 함께 머그컵을 받고 보니 아까워서 어디 사용하겠나 싶더군요.

가족들이 연신 탐을 내긴 하는데, 아직은 사용할 엄두도 못내겠고 아는 지인들에게 사방팔방 자랑하는중입니다.

전 얼마 전 읽은 최갑수 님의 글 중에서 발췌해 신청했는데, 선택한 문구가 읽고 썼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네요.

 

먼저 전에 주신 엽서 또한 고이 간직 중입니다.

위블러거들의 분위기에 맞는 엽서 선정과 선물을 주셨는데, 미처 올리질 못하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같이 올려주시면 좋을것 같단 생각을 하신 위블지기 님의 생각에 동참하고자 올려봅니다.

 

 

컵과 우표

 

엽서는 제 나름대로 다시 사진을 찍어 스마트 폰 홈배경 화면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멋진 풍경과 함께 선물 받았을 때의 기분도 느껴보고, 이제는 머그컵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없는 선물대잔치라서 정말 기분 좋네요.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위블지기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