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7년 6월 24일

모래바람

모래바람

모래바람 진구 시리즈 4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7년 6월

서양과는 달리 추리 미스터리의 장르로써 왕성한 활약을 하고 있는 한국 작가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도진기 작가다.

그의 이력에서 보듯 판사로서 익히 다진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동안 한국의 독보적인 장르의 대표 주자로 활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 이번에는 처음으로 판사라는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서의 첫출발을 알리는 동시에 전문 작가로서의 보다 활약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을 접했다.

 

‘진구 시리즈’로 알려진 책의 연작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별개의 이야기를 쏟아낸 저간의 작품을 토대로 이번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에 대한 궁금증이 타 책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게 했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의뢰인과의 만남을 위해 대형 벤처투자회사 제이디애셋에 들어선 진구와 그의 여자 친구인 해미는 유연부와 마주치게 된다.

 

유연부-

어릴 적 초등학교부터 중학시절까지 동창으로서 진구와 지내온 두 사람, 아버지들끼리도 선의의 경쟁처럼 서로 학문에 대한 열정을 쏟아붓는 사이였기에 서먹하게 헤어지는 진구와 연부의 관계를 해미는 의아해한다.

 

알고 보니 의뢰인은 바로 제이디애셋의 창업주이자 회장으로서 자신의 아들과 자신의 비서인 연부가 가깝게 지내고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자 반대의 뜻으로 연부의 뒷조사를 의뢰하게 된 것.

다른 때 같으면 선과 악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 짓지 않고 사건 의뢰를 맡았을 진구가 거절하자 해미는 연부와 진구의 과거를 궁금해하는데….

 

책은 진구 시리즈답게 진구의 힘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어릴 적 아버지들을 따라  중국 실크로드 탐사 과정을 따라나섰던 두 사람, 그곳에서 진구 아버지는 목숨을 잃고 연부 아버지마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망자의 신원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 힘든 과거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이들의 관계 형성을 그리고 있고 본격적인 살인이 발생하는 중반 이후부터는 살인자가 먼저 쉽게 밝혀지고 그 이후에 밝혀지는 비밀들이 드러남으로써 보다 인간관계에 얽힌 감정과 복수, 복수시도를 행하려 했던 행동들과 가책, 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행보를 통해 다시 한번 인간 안에 내재해 있는 그 무언가가 어떤 계기를 통해 본색을 드러내는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전작들이 트릭과 살해 현장에 대한 검증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이 있었다면 이번의 책은 작가가 그동안  경험하고 들었던 사건을 전문가의 법률 지식으로 한층 포장해 좀 더 인간관계의 심도를 높였다는 점이 다르게 다가오게 한 책이다.

 

“사람들이 왜 살인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살다 보면 정말 저 인간만은 죽여버리고 싶다, 그런 마음을 먹는 대상이 한두 명쯤은 있게 마련인데, 왜, 양심 때문에? 아니, 모순이지. 죽이고 싶은 마음이 벌써 들었는데 다시 또 무슨 양심 때문에 그걸 안 한다는 거야. 이유는 간단하고 유일해. 잡힐까 봐서야. 범행여지에는 강한 처벌보다 높은 검거율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어.(생략)  살인? 우습지. 수학적인 확실성이 아니라서 내 맘에 들진 않지만, 어떻든 발각 가능성이라는 파라미터만 낮춰주면 살인을 결심한다는 결과 발생의 확률은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게 분명해 -p 270

 

물고 물리는 연부와 진구의 관계는 또 다른 감정의 소산을 유지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면서 마지막 연부의 대사를 통해 서늘함마저 느끼게 하는데, 살인을 해아만 했던 그 당시의 오묘한 자연의 조화인 모래 바람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한 것인지, 아니면 이 사건들이 벌어진 정황들 모두가 그저 한 손에 쌓였다가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만큼 흔적조차도 볼 수 없었던 모래 바람처럼 사라지길 바라는 진구의 바람 때문이었는지…

 

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을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과거와 현재의 인간 관계도가 시원스럽게 해결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 주는 미지의 여운을 남긴 작품이다.

 

그동안 출간된 작품들이 일부가 영화로, 또 진구 시리즈는 드라마로 만날 수 있다니 책을 읽은 느낌과는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해보게 한다.

 

아울러 더 발전된 한국형 추리 스릴러계의 대표 작가로 거듭나길 응원함은 물론이다.

 

                                                                                                                          
                                            

에타와 오토와 러셀과 제임스

에타와오토에타와 오토와 러셀과 제임스
엠마 후퍼 지음, 노진선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노년의  83세인 에타-

그녀는 전직 교사로서 남편인 오토를 남겨두고 바다를 보기 위해 무작정 집과 농장을 떠나 동쪽으로 도보 여행을 시작한다.

남편인 오토는 자신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아내가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홀로 집에 남아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이런 그녀의 인생에서 남편 외에 또 다른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러셀이다.

전쟁이 벌어지자 동네 남자들은 모두 전쟁으로 떠났으나 그 자신은 신체의 불구로 인해 홀로 남은 남자가 되어 버렸고 이후 친구인 오토와 에타 곁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우정과 연모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에타가 돌연 떠났다고 하자 그녀의 뒤를 따라 찾아 나선다.

 

책의 제목인 네 개의 명칭은 위의 세 사람 외에 제임스 라 부르는 코요테다.

이 코요테는 에타의 눈에만 보일뿐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없이 오로지 에타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여행 중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동물이자 동지로써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점차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치매’란 병을 앓고 있는 에타에게 남겨진 기억이란 어떤 의미일까?

 

혹자는 즐거웠던 것들만 기억하려 애쓰려 하고 혹자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봄으로써 희로애락의 모든 것들을 감싸 안으려 하기도 하지만 에타의 경우엔 아마도 젊었던 시절 오토가 전쟁에 나가고 그 전쟁 중에 에타에게 보낸 전쟁의 참상과 동료의 죽음을 비롯한 상흔의 상처를 기억하며 그 길을 더듬어봄으로써 자신의 한 시절을 기억해 내려는 것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해보게 한다.

 

여행을 하면서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시점의 반복을 통해 마주치는 각개의 기억들, 이 속에는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편지를 주고받음으로써 로맨스를 키웠던 오토와의 사랑이야기, 뜻하지 않게 이 여행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는 와중에 느끼는 또 하나의 여정은 저자가 그리는 노년의 삶의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인간은 기억이란 것에 대해 자신이 기억한 것만이 가장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또한 그러한 점을 보여 주는데, 한 사건을 두고 각기 세 사람이 기억하는 것들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 그런 가운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버린 인생에 대해 저자의  표현은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인생의 노년에 접어들게 되면 지나온 모든 것들을 반추해 볼 때 과거보다는 앞으로 남은 인생에 대한 생각과 정리를 하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에타가 평생토록 보지 못했던 바다를 찾아 나선 행동을 그리는 이 책은 지나온 과거를 통해서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기억의 여지로 남겨둘 것, 상실해야만 하는 부분들은 과감히 그것을 인정하고 감싸 안으며 떠나야만 하는 순례라는 형식을 통해 노년의 인생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싱어송라이터 뮤지션이란 직업이 무색하게 전문적인 소설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책인 만큼 가슴 뭉클함이 전해져 오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