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선한이웃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책을 모두 읽고서 한참 동안 어떻게 써야할지 기준이 잡힐 질 않았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등의 작품을 통해 익히 알려진 작가가 그리는 1987년 6월은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왔는지에 대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오랜만에 나온 출간작의 배경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야기는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모티프로  출발한 만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대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제목만 보고서 내 나름대로의 착각을 한 점도 한몫을 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선한 이웃, 말 자체의 어감은 부드럽게 다가오지만 이  책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들은 누가 선한 이웃이고 누가 악한 이웃인 지 조차도 모호할 정도의 판단력의 기준에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책은 운동권의 실세로 지목된 미지의 인물인 최민석이라고 불리는 자를 잡기 위해 당시 흔하게 벌어졌던 대학생들과 경찰들의 대치상황을 통해 이 작전에 투입된 김기준이란 인물, 그리고 연극 연출가인 이태주와 배우를 꿈꾸는 여인이자 이태주의 페르소나인 김진아란 여인, 그리고 김기준의 상사인 관리관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그려진다.

 

이태주는 연극으로서 줄리어스 시저에 대한 공연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번역한 대본을 수정하고 배우들을 캐스팅하면서 무대에 올리지만 한 줄의 번역을 바꾸면서 이내 연극이 끝남과 동시에  경찰에 끌려가게 된다.

자신과 동료 배우들이 서로 다른 대우를 받았다는 눈초리는 이내 연극계에서 외면당하고 그 자신 또한 미행의 두려움을 느끼며 재기를 노리던 중 진아를 만나게 되고 그는 진아를 내세워 엘렉트라 란 연극을 올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을 듯한 세 사람의 조합과 만남은 국가의 철저한 계획과 통제하에 길러긴 정보요원 길들이기와 시대의 흐름에 상관없이 자신의 맡은 바대로 임무를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김기준이란 인물이 실패한 작전에 대한 만회를 위해 최민석 잡기에 올인하는 과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 빨갱이를 잡고 좌익분자를 색출하는 일은 정치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민석을 쫓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최민석을 쫓았다. 그냥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충실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제대로 일하는 방식이었다._144쪽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양심대로 행동했을 뿐인 결과로써의 참혹한 사실들을 접하는 과정에서의 독자들은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되며 이후 반전의 결과물을 또 한 번 접하면서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 생존 때문에 악이란 것에 자신도 모르게 발을 내딛고 살았다는 자각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의 국가 개입을 통한 한 개인의 인생을 망치는 과정들이 여전히 시대의 아픔을 전달해준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주도권 하에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라 할지라도 당시 시대의 흐름은 이토록 쉬운 일도 하기 어려웠다는 사실, 철저한 강약 공세을 쥐고 두 사람을 쥐고 펴락 했던 관리자란 인물이 생각했던 그 나름대로의 선의의 정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은 연극 작품을 통해 은유의 문법을 통한  이태주의 주장이 섞이면서 몰입도는 힘들게 하지만 한쪽에선 여전히 본 적이 없는 실세 최민석을 잡기 위해 모든 설계도에 그려진 것처럼 착착 옭아매기 위해 조여 오는 김기준과 또 다른 쪽에선 연극에 대한 논쟁으로 그려진 반대의 상황을 통해 과연 이 설정을 통해 진정한 나 자신은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 “범죄를 규정하는 건 의도가 아니라 결과야. 강요에 따랐든 자발적이었든 간에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범죄는 범죄야, 선의의 거짓말도, 어쩔 수 없는 범죄도 없어. 진실을 감추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그냥 악일 뿐이라고.”-p 246

 

 

의도한 바는 아닌 선한 행동으로 인한 결과물이 결국 악으로 인식되었을 때의 태주처럼 과연 우리들은 선한 이웃이었을까? 아니면 악한 이웃이었을까?

30년이 흐른 지금의 우리들 모습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선한 이웃은 어떤 기준으로 불렸을 때의 모습이었을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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