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살카 저주의 기록
에리카 스와일러 지음, 부희령 옮김 / 박하 / 2017년 6월
인류사의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들을 간직한 책이라면, 더군다나 내 조상들을 포함한 현재의 나에게 올 어떤 미래적인 비밀들을 알게 된다면?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책을 접했다.
201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최고의 화제작으로 올랐던 저자의 첫 작품으로 내용이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보인다.
벼랑 끝,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집에서 살고 있는 사이먼-
사실 부모와 함께 살던 집으로 오래된 유서 깊은 양식을 간직한 집이지만 위치 자체가 바닷바람과 해변 가까이 있는 까닭에 수시로 폭풍과 비바람, 파도로 인한 해변 침식으로 집은 점차 물과 절벽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상태를 보이고 있다.
가난한 사서로서 생활하는 그는 엄마가 어느 날 바다에 뛰어들어 익사한 채 죽은 뒤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어린 여동생을 홀로 키우며 살다시피 했지만 여동생마저 정착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집을 떠나버렸다.
근근이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집 앞에 소포 하나가 배달이 되고 그 소포 안에는 오랫동안 고적상으로 일해오던 사람이 자신의 손에 넘어온 이 책을 본 결과 그 책 속의 이름을 찾아 결국 사이먼에게까지 오게 된 것-
고적상은 아마도 이 책에 관련된 인물들이 사이먼의 조상들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고 하는데서 사이먼은 관심을 두게 되면서 이야기는 책 속의 등장인물과 현재의 사이먼의 상태를 교차해 보이면서 진행된다.
책 속에는 17세기가 배경이 되고 유랑 극단을 이끌던 극단주, 벙어리 소년 에이모스의 만남과 활동이 그려지면서 유랑 극단 속에서 동고동락을 했던 주요 인물들이 나온다.
현재 자신의 상황은 결코 좋지만은 않기에, 사이먼은 실직 상태가 되고 친한 친구처럼 여겼던 앨리스와 연인인 듯 연인이 아닌 사이인 중간지대의 사귐, 여동생 에놀라가 돌아옴으로써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데….
책은 타로 카드에서 보이는 여러 그림들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주고 루살카라는 슬라브 신화에서 나오는 물의 요정을 차용함으로써 이 책의 여인들이 모두 죽는 방식인 익사를 통해 사이먼 가문에 얽힌 비밀과 연관이 된다.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사이먼의 엄마, 모두 같은 날짜인 7월 24일에 죽음을 맞았고 책에 써진 대로라면 자신의 하나뿐인 혈육 에놀라마저 같은 날짜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암시를 느낄 수가 있다는데서 사이먼은 이 책에 대한 비밀과 가문의 비밀, 이것을 풀어나가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며 싸워나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은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환상적이고 주술적인 방식의 묘사, 그 안에서 잉태되고 태어난 존재가 버림받으면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과거의 유랑극단의 삶을 통해 사이먼과 연결을 이어주고 있으며 이는 곧 현재로 돌아와 가족 간의 사랑, 남매간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그 밖에 불륜이라는 또 다른 비밀을 통해 서서히 미스터리처럼 얽힌 부분들을 풀어헤친다.
책은 상당히 두껍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며 그리는 이야기의 흐름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기에 읽기에 수월함을 주는 저자의 글 흐름의 방식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저주에 걸린 가문의 비밀을 푸는 과정에서 느끼는 삶에 대한 생각들, 그 가운데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여행길에 오른 네 남녀, 사이먼과 앨리스, 에놀라와 도일의 동반 여행은 자신들에게 걸린 저주를 모두 거부하고 새로운 삶으로의 희망을 여는 여정의 길처럼 느껴지기에 독자의 시선으로 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게 한 책이기도 하다.
무수히 많은 사연들이 오랜 세월 겹겹이 쌓이고 쌓인 이야기를 한 번에 풀기는 어렵지만 풀리기 시작하면 서서히 쉽게도 풀린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깨달을 수 있으며 인간사의 모든 감정들을 들여다봄과 동시에 또 다른 희망이라는 판도라를 찾으러 가는 이들에 대해 격려를 보내고 싶어 지게 한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