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혼자가 되다
이자벨 오티시에르 지음, 서준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어릴 적 읽은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과 15 소년의 표류기는 미지의 세계, 그것도 무인도라는 섬에 정착했을 때의 무궁무진한 삶에 대한 일말의 희망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던 책이었다.
특히 로빈슨이란 인물이 홀로 남겨진 섬에서 스스로의 생활을 해나가는 과정은 그럴듯한 모습과 함께 누구라도 이런 식이라면 홀로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을 것이란 상상을 더해주는데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방향의 제시를 해 준 책으로 인해 과연 로빈슨의 생활은 가능했었는지에 대한 해석과 관점을 달리 보이게 한 책이 있었으니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인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란 작품이었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동화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길목에서 던져줄 수 있는 희망과 긍지, 자신감과 꿈을 간직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 읽은 글이란 점을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지만 냉철한 각도에서 달리 받아들여지는 미셸의 책은 크게 인상이 남은 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읽으면서 또 한 번 미셸의 책을 동시에 생각해 가면서 읽게 했다.
이 소설은 세계 최초로 혼자 배를 타고 세계 일주에 성공한 여성 항해사 이자벨 오티시에르가 쓴 장편소설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극의 상황에 몰리게 될 때의 인간의 선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행한 행동에 대해 어떤 시선과 관점,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 준 책이다.
서른을 막 넘긴 루이즈와 그녀의 남자 친구 뤼도비크, 두 사람은 동거를 하면서 살아가는 커플이다.
유머 넘치고 자유분방하며 쾌활한 퀴도비크의 계획에 따라 선뜻 내키지는 않지만 안식년을 이용해 배 항해를 시작한다.
돌고 돌아 남아프리카까지 가기로 결정한 그들의 계획은 남미 대륙의 끝인 파타고니아와 혼 곶 사이에 있는 천해의 자연보호구역인 어느 무인도에 몰아친 폭풍우로 인해 배는 종적을 감추게 되고 그나마 구명정만 간신히 건지게 된다.
이후 그들은 한때 고래잡이가 성행하던 시절 이 곳에 기지를 세우고 번창했던 사업을 엿볼 수 있는 각종 유물들을 보면서 이 난관을 헤쳐나가려고 애를 쓰게 된다.
변변한 옷이나 식량조차도 없던 그들 앞에 도사린 것은 굶주림과 변덕스러운 기상변화, 곧 불어닥칠 겨울의 추위로 인한 식량 비축까지….
책에서 익힌 지식들을 이용해보려 하지만 전혀 이용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곳, 보호 동물인 펭귄을 잡아 털을 뽑고 말리다가 쥐에게 상납당하고 강치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은 급기야 서로에 대한 원망과 미움, 걷잡을 수 없는 절망을, 특히 그들 사이에 놓인 사랑마저 언제 했는지에 대한 기억조차도 물러서게 만든다.
둘이 의지하되 서로 혼자임을 느끼게 되는 과정, 관광 크루즈선이 보였을 때의 두 사람의 각기 다른 행동은 걷잡을 수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미셀이 그린 책에 나오는 정반대의 크루소를 그리고 있는 점을 타당하다고 느끼게 해 주는 책,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경험과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 일종의 경고라고나 할까?
무수히 많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낱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 인간들은 너무나도 자만심이 가득하다는 사실,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도 전혀 손을 쓸 수 없고, 이성마저 마비시키는 굶주림은 아무리 사랑으로 맺어진 연인이라고 할 지라도 각개의 독립적인 고독과 혼자라는 자각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는 과정들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도전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독자들은 루이즈가 기가 빠지고 절망, 굶주림에 빠진 뤼도비크를 남겨두고 홀로 섬을 탈출했을 때와 다시 돌아올 때의 기간 사이에 느꼈던 감정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구조의 손길을 찾고자 떠난 길이 자신이 찾은 기지에서의 아늑함,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잠, 다시 원기를 회복했지만 다시 돌아가길 머뭇거렸던 행간의 의미를 통해 인간 각자의 삶에서 이성을 제치고 본능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이행한 루이즈에게 차가운 눈길을 보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책은 섬에서의 ‘저편에서’와 극적으로 구조된 루이즈의 세상 나오기 편인 ‘이곳에서’를 통해 상반된 삶의 모습을 보인다.
보통의 우리들인 인간들이 갖게 되는 궁금증, 정말 그곳에서 로빈슨 크루소 같은 생활을 하고 구조된 한 여인의 경험을 그저 신기하고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세태와 이를 이용한 매스컴의 보도와 기자의 눈에 비친 또 다른 영역 활동은 루이즈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고 진실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다는 사실 이면에 또 다른 망설임을 통해 인간으로 지닌 양심의 끝없는 가책을 보여줬단 점에서 저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살기 위한 본능,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해야만 공존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 이성으로 돌아왔을 때의 겪게 되는 루이즈의 행동을 통해 결코 자연이 우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단 점에서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자연은 그대로 그곳에 항상 있지만 인간들의 무분별한 행동과 자만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는 소리 없는 몸살과 아우성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한 책이자 저자의 계절 변화에 따른 풍경 묘사는 인상적이면서도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루이즈가 정신적인 충격을 딛고 일어서는 의지를 담고도 있는 책이기에 여러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지게 한 책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