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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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첫날이다.
한 장 남은 달력에 한숨이 돌아온다.
또 한해 간다.
돌이키는 지난날들이 아쉽기만 하다. ​

옷 젖을 만큼 비가 온다.
이 비가 멎으면
어제까지만 해도 아름답던 저 나무들이
훨~훨~ 벗고 겨울나기 하겠지?​

* 한 달 남은 12월도 즐겁고 건강하세요! _()_

바다 위에 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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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 [看月庵]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는 작은 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창건한 암자이다. 무학이 이곳에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간월암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작은 암자를 지어 무학사라 부르던 절이 자연 퇴락되어 폐사된 절터에 1914년 송만공 대사가 다시 세우고 간월암이라 불렀다.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보낸 어리굴젓이 궁중의 진상품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또한 굴의 풍년을 기원하는 굴부르기 군왕제가 매년 정월 보름날 만조시에 간월도리 어리굴젓 기념탑 앞에서 벌어진다.

법당에는 무학대사를 비롯하여 이곳에서 수도한 고승들의 인물화가 걸려 있다. 이 암자는 바닷물이 들어오면 작은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린다. 이곳에서 보는 서해의 낙조가 장관을 이루어 관광객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해설은 안내서에서 발췌

부소담악 (芙沼潭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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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수 위에 떠 있는 병풍바위, 부소담악(芙沼潭岳)–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에 가면 부소담악이라는 절경을 만날 수 있다. 부소담악은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인데, 길이가 무려 700m에 달한다. 조선시대 학자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예찬한 추소팔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절경이다. 부소담악은 처음부터 물가 절벽이 아니었다. 본래 산이었지만 대청댐이 준공되면서 산 일부가 물에 잠겨 물 위에 바위 병풍을 둘러놓은 듯한 풍경이 되었다.
부소담악은 부소무니 마을 앞 물위에 떠있는 산이라 하여 ‘부소담악’이라 불리운다. 2008년 국토해양부가 전국의 하천, 호수, 계곡, 폭포 등 한국을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하천 100곳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무진정(無盡亭)의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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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정(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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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정(無盡亭):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기품 넘치고 신비로운 조선 건축의 멋 무진정은
조삼(趙參)선생께서 후진양성과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지으신 정자로서
다함이 없다는 자신의 호를 따라 무진정(無盡亭)이라 이름하였다.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소재

아래 영상을 보셔요 ^^

부채 같은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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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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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 [慶州陽南柱狀節理群]
2012년 9월 25일에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공유수면 일대에 위치한 주상절리군이다.
주상절리군은 신생대 제3기의 에오세(5400만 년 전)에서 마이오세(460만 년 전) 사이에 경주와 울산 해안지역 일대의 활발했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당시 지표로 분출한 용암이 낮은 곳으로 흘러 급랭하면서 수축되었는데, 이 때 만들어진 육각 또는 오각 기둥 모양의 수직단열이다.
이곳 해변에는 10m가 넘는 정교한 돌기둥들이 1.7㎞에 걸쳐 분포해 있으며, 주름치마, 부채꼴, 꽃봉오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몽돌길, 야생화길, 등대길, 데크길 등 해안 환경을 고려한 테마로 1.7㎞에 걸쳐 주상절리 전 구간을 산책할 수 있는 파도소리길이 조성되어 있다.
해설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

월정교의 야경과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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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교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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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교 반영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던 교량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된 것을 2018년 4월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교량으로 복원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63-1에 위치하는 통일신라시대의 교량(橋梁)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되어 없어진 것을 고증을 거쳐 2018년 4월 복원을 완료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9년(760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경주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 10.28일에 다녀 옴. 해설은 안내서 및 다음백과에서 발췌함)

천사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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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대교(千四大橋)는 전남 신안군에 있는 국도 제2호선의 교량으로, 암해읍의 암해도와 암태면의 암태도를 연결하는 연륙교이다.
국내 최초 사장교와 현수교를 동시에 배치한 교량으로 총연장은 10.8㎞이며, 2019년 4월 4일 개통을 했다.

금성대군 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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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 無頂은 단종 복위를 추진하다 역적으로 몰려 사사(賜死)된 금성대군의 20세손이다. 당시로 봐서는 역적의 자손이었지만 그분이 자랑스럽다. 그분의 의로운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정권 찬탈의 불의를 보면 못 참는 형이다.  그  당시 금성대군의 자손들은 역적으로 몰려 숨어 숨어 살아 자손들이 번창하지 못했다.
다행히 1738년(영조 14) 신원(伸寃)되어 281년만에 역적의 누명에서 벗어나서 영월 창절사, 순흥 성인단, 청안 향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지난 8월 영주에 문화 답사를 갔다가 우연히 ‘금성대군 신단’을 보고 왔다. 그때 담은 영상을 중심으로 금성대군을 소개하고자 한다.

금성대군 [ 錦城大君 ] : 1426~1457
조선 세종의 여섯째 아들. 순흥에서 유배시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관노의 고변으로 사사되었다
이름은 유(瑜).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며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세조)의 동생이다. 1433년(세종 15) 금성대군으로 봉해지고, 1437년 자식이 없는 방석(芳碩)의 후사로 입적되었다. 1455년(단종 3) 수양대군에 의해 모반혐의로 삭녕(朔寧)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광주(廣州)로 이배되었다. 1456년(세조 1) 성삼문 등 사육신이 중심이 된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자, 이후 유배된 순흥(順興)에서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모의하여 군사를 모으고 의병을 일으켜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고 하였으나, 거사하기 전 관노의 고변으로 사사(賜死)되었다. 세종의 아들 8명 중 수양대군의 모반에 반발하여 분기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분의 사당 청당사(靑塘祠)는 나의 고향에서 1Km 정도 떨어진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416에 있으며, 금성단 (錦城壇)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금성대군이 처형된 곳에 세워진 단이다.
청주 금성대군 제단 (淸州 錦城大君 祭壇)은 충청북도 청주시 미원면 대신리 산 49번지에 있으며 2005년 8월 12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9호로 지정되었다.

아래 영상에서 ‘금성대군 신단’을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