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작을 떠나며…군인처럼 살기
이복잡한세상에어떻게살것인가?

"너희는하나님의대사(ambassador)이다."

"너희는그리스도의편지이다."

"군인처럼살기를…"

우리가즐겨걷던천변

한나라가있는데,그나라에는왕이있고,

왕의사신으로나가는대사,왕의편지,그리고왕의군인,이런일을수행하는사람들이있다.

나는대한민국에태어나서이승만대통령부터이명박대통령까지한나라의수장을지켜보았다.

지금은오바마대통령도지켜보고,카작의나자르바예프대통령도지켜본다.

알마티시내

평생을떠돌아다니며사는내인생.

그래서군인처럼사는것이몸에배었다.비록왕의군대는아니지만,언제나부르면당장

전쟁터로달려갈준비가되어있는군인처럼,나의생활은간단하고항상임시였다.

이제8개월의카작생활을마치고미국의내집으로돌아간다.

이곳,

알마티는내인생의또다른전쟁터라고생각하고왔었다.

나는암에걸렸고,미국의사는방사선치료외에는당장치료할것이없다고했었다.

나는하나님께매달리는길밖에는없다고생각하고왔다.

이슬람지도자와함께

그러나여기서나는후방지원부대에배정받았다.

전방에서영적전쟁을치르는선교사들을후원하는지원부대.

그들의열정과고충을지켜보며,

돈몇푼으로그들의사역을지원한다고생각한것이얼마나교만한일이었던가반성했다.

천산의공기는맑았고,생활은단순했으며,아파트문만나서면노점상의채소와과일이반기는,

까마득히지나가버린내젊은시절,거기로나는돌아온것같았다.

처음도착했을때,그릇이없어플라스틱페트병을잘라쓰기시작했는데,

오늘떠나면서마지막몇개를버렸다.

쌀한자루와밥솟,칼과칼판,수저,냄비와후라이판,

이것으로두식구알콩달콩살았는데,어제남은것다넘겨주었다.

아직도차장이돈을받는버스.

30센트만내면꺼먼연기를내품으며어디든지데려다주는괴물.

댕댕댕댕!아무리울려도비켜주지않는사람과차들을참을성있게기다리는전차운전사.

아파트앞에항상대기하고있는낯익은택시운전사들.

이들로인해

우리는돈없는외국인으로인정받아강도당할기회를면했다.

눈덮인새벽길을남편과손잡고걷던천변.

지금은천산의눈이녹아내려그물에서아이들이수영을한다.얼음장처럼차다.

아침이면따끈하고구수한해바라기씨빵을구워주던람스톨수퍼마켓.

그빵이식기도전에우리는집으로돌아가면서다뜯어먹었다.

나중에는아예우유까지사서천변공원벤치에앉아아침식사를했다.

유황온천.

한국인이리모델해서운영하는데아주깨끗하다.내어머니의밥상같은식사도너무맛있다.

노천온천도있고,여름에는수영장도개장해서아이들과부모가함께즐기는곳이다.

단체수련회도할수있고.

한국교육원.

토요일오전이면한글학교와함께비지네스맨들이모여친교를나눈다.

극장도있고,회의실도많고,교실도많은아주큰건물이다.한인행사의중심지.

꼭주벡타워.

전망대는수리중이라서못올라가고,케이블카만타고산위로올라갔다.

알마티시가지가한눈에보인다.

저기아래로,

남편과손잡고새벽얼음판을다니던러시아어학원이있다.

덕분에지금은길거리간판을떠듬떠듬읽는다.

내가제일좋아하는질료니바자.(녹색시장)

고려인아줌마들이꽉잡고있다.

"어머,이것도싸네,저것도싸…"하다보면팔이떨어지게물건을사서백팩에지고양손에들고

그러나멀어서두번밖에는못가봤다.전차타면보통한시간.

슐레이만데미렐대학교.

남편은이번학기에두명의석사졸업생을배출했다.떠나기전날까지논문심사를했다.

수고했다고감사장대신에카작전통의상을주었다.

같은과교수들과학생,각단과대학학장들이모여송별회를해주었는데,터어키식키피르(요구르트)

기름밥(고기볶음밥)을맛있게먹었다.

러시아정교회대성당

무엇보다감사한것은,

병원에갈일없이건강하게살게해주신것이다.

아마도군인처럼산심플한생활이그분마음에도드신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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