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0여년전,
12월이되면의사인아버지께서는내게한독약품달력을건네주셨다.

당시로서는최고로좋은질의명화프린트달력이었는데,나에게는가장훌륭한장식품이었고,

그것은또내가서양미술을알기시작한동기도되었다.

중고교시절부터결혼초까지이달력은어김없이내방에걸려있었으니,

나는수많은명화속에서지낸셈이다.
지금은몇년에한번겨우전시회에갈까말까할정도로미술과는상관없이살고있고,그래서

40년전보다그림을보는안목이더나아지지도않았지만,아직도세계어느미술관엘가도낯설지않은것은

아마이달력의그림들때문이리라.

지난해삼월,

카작에살면서잠간한국에다니러갔다가한음식점에들어가니탁상달력이있기에하나달라고했다.
종업원이곤란한표정을짓자동생들은,
"언니,우리집에그런거많아,내가줄게…"했다.
종업원은미안했는지,자신의메모가적힌부분을떼어내고나에게주었는데,

받고보니달력이나탐내는미국거지할머니가되었나싶어좀민망한생각이들었었다.

며칠후,
의사인여동생이한독약품달력을들고왔는데,펼치지도않은포장그대로인새것이었다.
그달력을보자오래동안못만났던친구를보듯놀랍고반가웠다.

아직도이달력이나오는구나!
그것은내청춘,그야말로내청춘의달력이었기때문이다.

그2009년한독약품달력을받아카작으로가져가서고이고이모셔놨다가(못과망치가없어못달고)

미국알라바마까지가져와9월부터보기시작했다.

그달력은여전히품위가있었다.
미국의내집에는좀작은듯했지만(옛날한국의내방에서는너무도멋있고당당했었는데),그래도

한인교회나식품점의달력에비교하면여왕처럼보였다.
아이들은이색다른달력을쳐다보며,
"흠…엄마의달력?"
"그래,멋있지?요즘나오는것들과는수준이달라."
"달력이달력이지뭐."

지나간세월이다보석같지만,

특별히문학이나예술에눈을뜨게해준계기가되었던일들은보석중의보석이다.

한독약품달력이내그림을보는안목을터주었고,
정연희의"목마른나무들"이소설에눈돌리게해주었으며,
후암동피아노선생님의"소녀의기도"가내음악적감성을자극했었다.

누가아나…
언제어디서무엇이되어만날지…지금의작은일들로인하여…

이제,2009년한독약품달력을내리고,
숫자만커다랗게써있는식품점달력과외할머니생각나는교회달력을걸면서나는여전히감상에젖는다.

올해는별선택의여지가없는달력들을받아걸지만,
그래도남은날들에대한희망에가슴이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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