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물대포

원조물대포가거기에있었다.
혁명과화합의자리(RevolutionandReconciliationPlace)에.

오랫동안,미국남부의인종차별정책은악명이높았다.
그중에서도버밍햄의1963년은최악이었다.
흑인과백인은철저히분리되어학교는물론,교회,식당,변소,버스,장의사등을따로썼다.
흑인청년이백인처녀의이름만불러도붙잡혀가죽도록두들겨맞았었다.
소위말하는흑백분리정책(Segregation).
그래서,
흑인들은일어섰다.어린학생들까지시위에나섰다.40킬로그램이하의몸무게는물대포에날라갔다.

50년전,버밍햄의물대포는평등한인권을갈구하는흑인들의꿈을박살내려했지만,
2008년,서울의물대포는미국소고기먹으면죽는다고울부짖는건강관리자들의몸둥이를씻겨주었다.

"Bull"Conner.
1960년대버밍햄경찰국장.별명대로무지막지하게흑인들을탄압했던인물이다.
그는물대포와경찰견을동원해서어린학생과종교지도자,시민들을잡아들이면서26년동안그자리를지켰다.
이에대항한마르틴루터킹목사와다른종교지도자들을중심으로한민권운동이더격렬해지자,

불코너의흑인탄압도더욱심해져결국은미전국에알려지게되었다.
이사실을보도한뉴욕타임스를상대로불코너는소송을제기하기도했다.

"닭을기르다보면흰닭은흰닭끼리,검정닭은검정닭끼리모여모이를먹는것을볼수있지요…흑인을

어떻게생각하냐구요?아,그사람들,노래좋아하는사람들이지요.학교에서도,직장에서도어디서나즐겁게

노래를부르며지내는걸봅니다."
당시뉴욕타임스에증언을한백인할머니의말이다.이것이남부백인들의마음이었다.

우리일행중의한청년이무릎을꿇고기도를하고있다.2010년에.

1963년케네디대통령은의회에새로운민권법안(CivilRightsActof1964,CivilRightsLaw)을내어놓았다.

그리고다음해,이법안은존슨대통령에의해서명되었다.
이법의주요골자는흑인의참정권과공공시설이용,고용의평등등이다.
존슨대통령은이법안에서명을하면서,"앞으로우리는남부(백인)표를다잃을것이다."고했다한다.

남부에살면서나는화합이라는단어에대해깊이생각하게되었다.
"여기백인여자들얼마나깜찍한지알아?선을딱긋고,자기들영역으로절대넘어오지못하게해.

우리가그선밖에있을때는아주친절하게잘해주지,그러나자기들영역을넘겨볼것같으면태도가

싹돌변해."
반세기를여기에서살아온동양할머니의말이다.

백인여자들만그런것은아니지…우리한국사람들끼리는안그런가?
지방사람들이서울에발붙이기가쉽지않다하고,
뭐,강남에는새로운귀족사회가형성되고있다며?

기득권을포기하는것처럼용감한것은없다.
남부백인들은공짜로타고난그피부색의기득권을포기하기가어려웠나보다.
그래서인권운동이일어났고,또화합이이루어졌다.
혁명과화합의공원.
20세기흑인인권혁명과피부색사이의화합이어떻게이루어졌는지이공원의물대포는말하려한다.

21세기서울의물대포와는그래서그의미가사뭇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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