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실로…

평생교육원의미국친구들이쫑파티하러가자고했다.
"소화도안되는음식에이야기도재미없고…그래서안가기로했어요."
한국친구에게그이야기를했더니,
"그냥,그러려니하면서만나는거예요.너무기대하지말고…"
그러면서그녀는이런비유를했다.
"그관계가말예요,마치응접실과거실의차이같은거예요."

사진:위키피디아에서

응접실과거실.
미국집은대개응접실(formallivingroom)과거실(livingroom,familyroom)이따로있다.

응접실은항상깨끗하게정돈되어있어손님맞을준비가되어있고,손님이오면그야말로포멀(formal)하게

대화를나누는곳이다.
반면,
거실은식구들이모여튼튼한소파와리클라이너에퍼질르고앉아TV와신문잡지를보거나,

아이들은피아노를연습하고(주로한인가정),나는그곳에서빨래도개고전화질도한다.

사진:위키피디아에서

미국사람들과의모임엘갔다오면나는마치물에다빙초산을타서마시고온것처럼속이이상하다.
만반의준비와신경을쓰고가보면기껏사람들과똑같은인사말이나주고받고,악수와허그를하다돌아오는

것이다라서,피곤하기만하고남는것이별로없는것같아무척허전기때문이다.
그런데한국친구는,
그러려니…하란다.

선배부인박여사는좋은집에사는데,내가가면항상응접실에만앉게했다.
그녀는취미도고상하고깔끔해서그우아한응접실에앉아대화를하노라면

나도덩달아우아한사람이되곤했다.그러나그게다였다.
그냥,벌서다가돌아온느낌만들고더이상친밀하게되지가않았다.

부잣집으로시집간내친구는,
젊었을때놀러가면자기안방까지데리고가서

따듯한아랫목에앉아차도마시고딩굴거리며놀아주더니,

몇년지나더부자가되고나니까나를응접실의비싼소파에반듯하게앉혀놓고이렇게말했다.
"얘,너를위해서하는말인데,우리집에놀러올때는화장좀하고와라.

맨날아기둥둥업고부시시해서달려오지말고…

그게너와나를위해다좋은거야."
나는더이상아무때나그녀에게달려갈수가없었다.그녀의멋진집에도발도붙일수가없었다.

우리엄마는딸들이결혼할무렵비싼자개장을샀는데,
딸들이아이를낳기시작하자

놀러온손자들이보행기를타고그비싼자개장에막부딪치고긁고난리를쳐댔다.

아이들을끔찍이예뻐하시던부모님은손자들을그방에서쫓아내는대신

‘더해라,더해봐라,아무렴그옷장이내새끼보다더귀할까!"하셨다.

나는응접실보다거실에초대받는것을좋아한다.
안방도좋고,부엌의식탁도좋다.
대화와먹을것이풍성한곳이면어디든지좋다.

깨끗하게치워진응접실에혹시먼지라도떨어트리거나주름이라도잡히게해서

내가다녀한흔적이불쾌하게남을까봐겁나는응접실보다지저분한거실이더좋다.

거실같은모임이좋다.

그친구는미국에온지얼마안되었는데도미국사람들을많이사귀어서그런지

나보다훨씬먼저깨달음이온것같다.
그렇다.
그려러니…하면된다.
응접실에앉으라고하면응접실에앉고,거실로오라고하면거실로가고…

그렇지만,
나는항상거실로초대받기를원한다.
푸근한주인마음이있는거실로…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