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미안하고…
남편과딸과함께시어머니가계시는왜관으로갔습니다.

왜관에는무궁화호밖에는서질않아서유명한KTX아직한번도타봤어요.

느리긴해도좌석은비행기의이코노미보다훨씬넓고편했습니다.

명동롯데

잠시후기차방송이,

식당칸에서는와이파이가된다고해서컴퓨터와스마트폰을들고

식당차로가서커피부터시켰습니다.아메리카노가3700이었던같습니다.

이렇게벌면서파업을하시는데요?”

불쑥그런말이나왔습니다.그런데,

인터넷은안된다고했습니다.

분명히안내방송에서된다고들었는데요…”

,열차는됩니다.”

그런데된다고방송을하나요?거짓말아닌가요?”

그게,다른열차에서쓰는녹음방송이라서빼야하는데…”

성질내면된다고다짐을하는데도자꾸성질났습니다.

이런고칠시간은없으면서파업시간은있나보지요?”

시어머니댁거실,딸들이그린그림과도자기가있다.

서울김천간의경부선열차는저에게슬픈열차였습니다.

40년전,

가슴콩닥콩닥하며시댁에갔다가눈이퉁퉁붓게울며돌아오는그런기차였습니다.

그래서지금도열차를타면신경이날카로와지는가봅니다.

그때나지금이나아무도나를반기지않는곳엘내가가야하나하는

쓸데없는생각이자꾸들었습니다.

좁은거실은화초가다차지했습니다.

왜관근처의파리바게트에들어가니빵이거의팔리고없었습니다.

서울에는맛나고좋은것들이많은데도사들고것은제가기동력이없기때문입니다.

사려면바쁜서울사람들에게물어보고부탁을해야하기때문입니다.

그래서초라한선물꾸러미가되어버렸습니다.

택시로어머니가계신아파트로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소고기탕국을들통끓여놓고기다리고계셨습니다.

미국가기전에는,

시댁에때면기차역에내려서바로시장으로가서장을봐가지고

시댁에도착하면곧바로부엌으로직행,저녁밥을지어야했었는데,

이제는해주시는밥을먹을있으니그동안많이좋아진것이지요.

추운겨울수돗가보다훨씬좋은목욕탕

어머니께서는평생그래오셨듯이알뜰하게살고계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90가까이되시는연세에정신은젊은이못지않게또렷하시고

주관이나철학이분명해서마음이놓였습니다.

옛날에는너무주장이세다고생각했었는데지금은오히려그러시는게좋아보입니다.

말씀속에슬쩍슬쩍비치는삶의지혜도있으니까요.그러나,

가까이서모시는자식들은다른생각일지도모릅니다.

저야2년에한번씩와서그저듣기만하고훌쩍떠나버리면그만이지만

매번같은말씀을들어야하는자식들은답답할수도있을테니까요.

딸들이구워다준도자기찻잔

어쨋거나저는없습니다.

맏아들인데도훌쩍미국에떨어져사는저희가무슨할말이있겠어요.

그래서시어머니나시누이들,시동생과배우자들모두에게

미안하고감사하는마음밖에는없습니다.

다음날

막내시누이가차를가지고와서칠곡군구경을시켜준다고했습니다.

함께딸이제일좋아했습니다.만일막내고모가나타났으면

그냥할머니집에갇혀서학습시간했는데

다행이밖으로나가게되었으니까요.

학습시간이란,

어머니의훈계시간입니다.

누군가붙인명칭인데,훈계라기보다는그냥말씀을끊임없이하시는것인데,

누구든지붙잡히면꼼짝없이몇시간이고들어야합니다.

다른사람이교대해주기전까지요.

딸은그날새벽에화장실에갔다오다할머니께붙잡혀두어시간학습했습니다.

다행이아빠가교대해주었지만요.

남편은낙동강전투현장을보고싶어했고,저는어디건상관없었습니다.

시어머니학습시간도이젠괜찮습니다.

모처럼뵙는데밖으로나가기가미안했습니다.

아들들은이렇구나짧은만남에아들을내보내고얼마나서운하시겠어요?

그렇다고혼자남아있기는싫었습니다.

4대강사업중하나인낙동강(洑)라는곳엘들렀다가

6.25때낙동강격전,박정희기념관을둘러보았습니다.

꾸며서구경하긴좋았지만돈들이어디서나오는지궁금했습니다.

구미시를들러금오산?기슭을한바퀴돌아왜관으로갔습니다.

구미는처음가봤습니다.하기야,시댁근처에본곳이별로없습니다.

미국서오면항상보쌈집에서만났었는데이번에는오리고기집에서만났지요.

싸고맛좋은집을개발했다네요.

충청도에사는시동생가족만빼고모였습니다.

우리는밥값내는것으로동생들에게고마움을표현합니다.

항상느끼는것이지만,

시어머니는사위들앞에아주당당하십니다.그리고

사위들도장모님께아주합니다.무슨비결이있을까요?

그들에게진심으로감사합니다.

정말고맙고한편미안하기도합니다.

어르신모시는일이쉽지않을테니까요.

혼자꿋꿋이잘계시는어머니께도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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