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들의 몰락

며칠전친구들을만났을때다소변한모습들을볼수있었다.

몇년전만해도사흘들이만나다가몇달만에만나선지전과는눈빛부터달라보였다.

얼굴은한결멀쑥해지고살이올랐지만,초롱초롱하던눈빛은많이풀어져있었다.

만나면소리가커서옆사람들의눈치를봐야했지만목소리역시작고부드러웠다.

R은친구들중에서도목소리크기로둘째가라면서러워할만큼유난히소리가굵었다.

잘모르는사람이들으면싸우기라도하는듯핏대를올리고육두문자를예사로입에올렸다.

간혹친구들이"너는임마목소리가와그리크노?"하고핀잔을주면싱긋이웃으며"야,내는이래비도지리산정기를받았다아이가,너거놈들하고는질이다리다"하고목에힘을주었다.

술이한순배돌면그의십팔번이낭자하게흘러나왔다.

"너거알제?내가대학졸업맟고서울에서중학교선생질하다가갑자기할아부지가위독하다꼬연락이오는바람에고향으로내리간거말이다.가서봉께할아부지위독한거는거짓말이고벌써신부깜을정해놓고장개보낼라꼬불렀더라쿵께.아,참환장하겄데.방에다가가다놓고꼼짝을몬하게하는기라.할수없이억지장개갔다아이가.그래서마느래꼬라지만보모간이디비진다쿵께."

그래서우리는R이야말로마누라를손아귀에쥐고큰소리치며사는줄로알았다.

몇년전만해도R의가부장적권위는참으로대단했다.

친구들이모여술추렴을하는데그의아내로부터전화가오면위세가당당했다.

"봐라,머땜에전화질이고.언성노파지기전에빨리끈어라고마.사람썽질도쿠지말고,이따집에가서보자."

우리는걱정이되어"야,마누라한테그리무작하게말하고집에가서갠찬나"하면그는싱긋웃으며"에레기,빙신자슥들.마느래하나또몬후아잡아서절절기나.그래가꼬세상을우찌사노"하고비웃었다.

그랬던R도지난1년여건강때문에병원출입이잦아지고는많이변했다.

이번에만나그의건강을물으며"너거집사람은별일없제?요새도후아잡고사나?"하고물었다.

그의대답은의외였다."후아잡는기머꼬,이사람들이간큰소리하네.요새마느래한테잘못비모밥도몬얻어묵고쫒기나는거모리나."하고는"글안해도오늘너거만나로나온다꼬마느래한테허락받니라혼났다아이가.아침묵은설거지꺼정해주고나왔다쿵께."

그러자옆에있던Y가빙그레웃으며말을받는다.

"니는호부(겨우)설거지항거가꼬생색이가.내는오늘여게나올라꼬설거지에다집안청소까지했단말이다."

Y의말에R은씩웃더니"맹새기대통령호위무사(경호실근무)에다가포도대장꺼정하고나온놈이마느래눈치본다꼬설거지에다가집안청소꺼정했다꼬.니꼬라지가우째그리댔네."하며염장을지른다.

Y는씩웃더니"봐라,지금은그리싸도니도울매안남았다.아매올안으로청소에다가쓰레기봉투까지안갖다내삐능가내하고내기하자"하며약을올렸다.

주거니받거니하던둘의시선이한순간내게쏠린다.

부지런히생선회를입으로나르던내가손을멈추고"와낼로쳐다보네"하고둘을훑어봤다.

Y가웃으며"그래,니는너거마누라한테우찌하고사네?"묻는다.

나는아무렇지도않게"내는너것들해쌋는거벌써몇년전부터하고있다아이가"하며별것아닌듯말했다.

말이떨어지기바쁘게R의큰소리가날아들었다.

"치아라,고마.우리서이중에한놈도사내새끼겉은놈이엄네.자,술이나묵자."

셋은가장으로서의몰락을한탄하며술잔을비웠다.

이번주간은시간여유가있어징검다리휴일을가졌다.

날씨도따뜻하고해서오랜만에홍제천으로나갔다.평일오후인데도많은사람들이나왔다.

그래,가장의권위는몰락했지만건강은지켜야겠지.

건강해야만이그나마아내의잔소리에서벗어날수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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