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황 남인수의 망향가 ‘내 고향 진주’

1955년,내가초등학교4학년이었던어느날저녁무렵이었다.

저녁밥을짓고있던어머니가부엌에서뛰어나오셨다.그러면서"아,저노래가벌써레코드판으로나왔네"하시면서감회가깊은듯멀리서들려오는노래를듣고계셨다.그노래는진주극장에서스피커로흘러나오는노래였고,남인수선생이부른’내고향진주’였다.

당시만해도진주극장에선초저녁부터음악을크게틀어온시내가쩌렁쩌렁울리게했다.요즘같으면소음공해라며어림도없는일이지만,문화시설이열악했던당시에는극장에서들려주는가요가시민들에게위안이되었던시절이었다.’호랑이담배먹던시절’의얘기이긴하지만.^^

경쾌한전주에이어3절로된’내고향진주’는남인수선생의달콤하며간드러진음성으로진주시민들의가슴에박혀왔었다.

삼천리방방곡곡아니간곳없다만은/비봉산품에안겨남강이꿈을꾸는/내고향진주만은진정못해라

유랑천리십년만에고향찾어왔노라/마음에채쭉치며달려왔노라

고향에그누라서가고싶다않을까만/의곡사종소리에의암이슬피자는/내고향진주만은진정가구퍼

뛰는가슴적시면서고향찾어왔노라/옛이름부르면서물어왔노라

고향이반드시야변했으리없다만은/촉석루어데가고이발을울리느냐/내고향진주만을진정그리며

삼백육순사시절을울고보내왔노라/환고향그날만을바래왔노라

기록을보면이노래는남인수선생의애끓는망향가望鄕歌였다.

이노래가만들어진1955년어느날(아마도봄쯤?)선생이속해있던’토미와그악단’이순회공연차진주를방문하게되었다.당시섹스폰연주자엄토미씨(이분은후에진주출신이봉조씨에게섹스폰연주를가르쳤다)와손석우,노명석씨등이남인수선생을중심으로악단을만들어전국을순회하고있었다.

기차가마산을떠나진주로향했을때남선생이작곡가겸작사가였던손석우씨에게와서부탁을했다고한다.

"손형,이번진주공연이내겐10년만이오.나는여태껏고향노래를부른적이없소.그래서늘마음의짐이되어고향의죄인처럼진주를생각할때마다가슴이아팠소.진주노래를이번공연때꼭부르고싶소.노래를부탁합니다."

손석우씨는굿아이디어라며좋다고했지만고민에빠졌다고한다.그는진주를전혀몰랐고한번도가본적이없었다.진주를모르는데어떻게그고장의노래를만든단말인가.그렇지만거절하기엔남선생의고향사랑의정이너무나절절해서남선생에게오히려부탁을했다고한다.

좋소.그러면진주에대해이야기를좀해주시오.산이며강,전설이며생각나는모든것을.

남선생에게들은이야기로진주를상상하며차중에서만든노래가’내고향진주’였다.

요즘은마산에서진주까지기차로한시간도채안걸리지만당시엔교통사정이나빠서너시간은족히걸렸을것이다.

진주에서의공연은대성공이었다고한다.진주는물론인근사천,삼천포와하동,남해,의령,고성과산청,함양등지에서몰려든인파는장사진을이루었다고한다.아마어머님도이공연을보신듯했다.

내기억에도55년당시진주극장은지붕이있었는지알수없다.6.25동란으로극장지붕이날아가밤하늘의별빛아래영화를본기억이있으니까.물론촉석루도전쟁으로불타잔재만남았을터였다.그래서노래의3절에’촉석루어데가고이발을울리느냐’는구절이있다.

진주공연의마지막시간에남인수선생은이노래를불러고향사람들을울렸고,유니온레코드에서발매되었다.

우리가요사에큰족적을남긴가황歌皇남인수南仁樹선생은1918년10월18일경남진주시하촌동194번지(속칭’드무실’)에서태어났다.본명은강문수였지만최창수라는아명兒名이있었다.이를두고경주최씨였던선생이어머니장하방여사가부친사후진주강씨에게개가하여이름을바꾸었다는얘기도있다.

선생은진주제2공립심상소학교(현봉래초등학교)를졸업했는데,내초등학교선배이기도하다.

선생은1938년21세때’눈물의해협’이란노래로데뷔했고1938년’애수의소야곡’이크게힛트하면서독보적인가수의길을걷게되었다.선생은당시가요계의큰별이었던현인선생과쌍벽을이루며서민들에게타고난미성美聲으로명가요들을선물했다.’이별의부산정거장’을비롯한주옥과도같은노래들로후세에’가황’이란칭호를얻었다.

선생은1962년6월26일45세의한창나이에폐결핵으로서울백병원에서타계했다.

고향진주에서는1996년부터2008년까지’남인수가요제’를열어선생을기렸지만,일제강점기당시강압에못이겨친일가요몇곡부른게’친일파’로낙인찍혀가요제는중단되었다.

다만,진주진양호에선생의동상과노래비가세워져있다.참으로안타까운일이다.

남인수선생을생각하며추억한토막.

내가봉래초등학교를다닐때인50년대중반선생의자택이학교부근에있었다.교문에서내려와(봉래는계단을한참올라가야운동장이나오고,운동장에서계단을한참올라가야교실이있었다)백미터정도직진하면작은네거리남쪽오른편에아담한양옥집이선생의자택이었다.

자녀는아들둘,딸둘로넷이었고,큰딸명자씨가나와같은학년이었던걸로기억한다.

진주출신으로유명한가요작곡가들이있다.

이재호,손목인,이봉조,정민섭선생등이있지만그분들이만든고향의노래는별로기억에없다.

그래서가황의망향가’내고장진주’가더가슴속에사무치는지도모르겠다.

윗사진은촉석루를배경으로남강변에서찍은사진(남인수선생은왼쪽끝인듯),아래사진은’황성옛터’를부르는선생의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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