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고향이란 무엇인가

내가사는동네에도목련꽃이청순한자태를드러냈다.목련꽃을볼때마다나는꼭사십년전서울에서만났던이꽃의그청초하면서도매혹적이었던기억을꺼집어내본다.

1974년4월초순,직장을옮기게되어아내와첫돌을갓지난아들을데리고고향을떠나변두리지역이었던화곡동에도착했을때우리를맞은건골목길담장너머에서화사하게웃으며맞아준목련꽃이었다.

드넓은세상에내던져진것같았던내게소박한몸짓으로따스함을안겨주었던목련.고향에선거의볼수없었던이꽃이내게지울수없는이역異域에서의고달픔을다독여주었다.

요즘내심기는좀그렇다.2년여에걸쳐만들었던책도출간되어해방감을만끽할만도한데좀우울하다.

오는4월하순부산에서사촌동생이사위를보게되어내가다녀오기로진작결정했다.그때만해도내생각은모처럼가는걸음이니부산서결혼식에참석한후진주에들러부모님산소에도다녀오리라마음먹었었다.

그런데며칠전아들의식사초대로모인자리에서내생각을얘기했더니아내가제동을걸고나섰다.분명고향에가면또고주망태가될터이니그냥부산서바로상경하라는것이었다.

아내의말에아들도동의했다.아버지혼자가시지말고5월쯤제가두분을모시고작년처럼고향을다녀오자며내고향방문을말렸다.

곰곰생각해보니모든게내탓이었다.그동안고향에간답시고훌쩍집을나와가족들의속을좀썩히긴했었다.

그뿐이랴.고향에가면이곳저곳을휘젓고다니며친구들을불러내어한잔하는게다반사였다.

때로는택시를타고내가살았던동네부터다녔던초등학교를둘러향교,말티고개를넘어초전등지로한바퀴돌곤했다.별로넓지않은중소도시에서택시요금이삼만여원까지나오도록쏘다녔으니아마내가슴속에바람이들어도적게든게아니었다.어느해는거의두시간여시내를걸어서돌아다닌적도있었으니까.

그처럼고향은내게절실했고고향땅을밟으며같은말투의사람들과함께한다는게한없이좋았었다.

내게있어고향은과연무엇인가.

햇수를꼽아보니고향에산게스물아홉해요서울에산건마흔해다.그렇다면오래산이곳서울이더추억도많고삶의애환도많을터이다.그런데도서울은아직까지도낯선동네요타향이다.참으로이상하다.

유려한한강을보아도남강만못하고,자연경관이잘아우러진북한산이나동네안산을찾아가도밋밋한비봉산만도못하니이건도대체무슨심사인가.

참으로알다가도모를일이다.

그렇지만이런게아닐까.그힘들고어려웠던시절,육이오동란이후세끼밥도먹지못하고칼바람에벌벌떨어야만했던그고단했던시절의짙은그림자가내가슴속깊이못처럼박혀있어그랬을지도.

아침,저녁매캐한연기가방구들벌어진틈사이로스며들고그헤진장판바닥위에서동생들과뒹굴며까르르웃어댔던그시절의상념들이아직도내머릿속에지워지지않고남아있을지도.

어머니의회초리가장단지에붉은핏자국을만들고,동네앞뚝에풀어놓은장작을두팔에받혀들고낑낑거리며골목길을오갔던그때의질긴아픔이아직도내심장에아로새겨져있을지도.

그래서일흔이내일인지금까지도그모진추억들이나를휘감아벗어나지못하게하는지도모른다.

동네길목의고목古木같던목련나무에청초한꽃송이가올해도어김없이찾아왔다.

그러나못난늙은이는아직도고향을그리며깊은잠에빠져들지못한다.

이불면不眠의밤을저목련은알고있겠지.

그래서더애틋한자태의목련꽃이나를향수鄕愁에젖게하는지도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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