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아침에 들었던 음악 세 곡

아침에눈을떠면침대옆의라디오부터먼저찾는다.

방송은정해져있다.KBS클래식에프엠이다.대체로’새아침의클래식’부터시작해서오전7시의’출발에프엠과함께’를듣는다.’출발’에서일기예보를듣고잠자리에서일어난다.

오늘아침도예외는아니었다.’출발’을여는진행자의멘트에서6.25전쟁이야기를꺼내더니가슴저미는세곡을잇달아보내주었다.

첫곡은코플랜드(Copland)의’보통사람을위한팡파르(FanfarefortheCommonMan)’였다.울려퍼지는금관악기의팡파르와심금을툭툭치듯들려오는타악기소리를들으며잠시6.25사변을생각했다.

6.25가터졌던건내가다섯살이었던1950년도였다.다녔던옥봉성당의성모유치원을졸업한지한달정도되어서다.

지금도유치원졸업사진을보면감회가새롭다.

6.25가터지자우리가족은살았던장대동집을떠나뒤벼리뒷쪽에있었던할아버지의과수원으로피난을갔다.당시할아버지는얕으막한야산에서복숭아,배등과일농사를짓고있었다.두살아래여동생과나는과수원옆의방공호에서지냈다.

그러다가공산군이진격해온다는소식을듣고과수원에서가까운도동백사장으로피난을갔다.어린나이였지만지금도기억이생생하다.수백명의사람들이백사장에천막을치고있었다.

하루는당시의미군폭격기B29가백사장위를아주낮게날았다.사람들은폭격이라도하는줄알고모래밭에바싹엎드려있었다.폭격기는남강교를폭파시켰다.덤으로옥봉성당의종탑도날아갔다.사변이끝나고봉래국민학교를다닐때몇년동안옥봉성당의종탑은복구되지못하고그대로있는걸보았다.

남강교가폭파되자우리가족은보따리를쌌고합천쪽으로피난을떠났다.그때다섯살배기였던나는60여리를걸어갔다고후에어머님이말씀하시는걸들었다.

<영화’금지된장난’의한장면>

두번째음악은전쟁영화’금지된장난’의주제음악’로망스(Romance)’였다.낭랑하게흐르는기타의애조哀調띤선율을듣자나도모르게콧날이시큼해졌다.

이영화를50년대후반중학교다닐때단체관람으로본기억이났다.영화의줄거리는잊어먹었지만머리에떠오르는것은전쟁으로부모를잃은소년이어찌어찌하여이웃집소녀를알게되었다.두어린이는소꿉놀이를했는데그게십자가로무덤을만드는놀이였다.어른들이그놀이를못하게했지만아마도계속했었지.

그영상에흐르는음악이’로망스’였다.그리고맨끝장면.부모가죽은줄도모르는소년이인파속으로엄마를외치며뛰어가는장면을생각하면지금도마음이짠하다.

영화를떠나그곡은6,70년대귀에못이박히도록들었다.

내가군제대후고향에있을때기타배우는동호회였던’세고비아기타클럽’을만들었고,통기타를배우며’로망스’도따라했던추억이있다.결국손재주가없어기타는배우다가말았다.

오랜만에’로망스’를듣자니그70년대초반의추억들이생각나서가슴이찡해왔다.

세번째음악은소프라노신영옥씨가불어로노래한영화’쉘부르릐우산’주제음악이었다.

이곡역시젊은시절폴모리아악단의연주인가로즐겨들었던곡이었다.영화도티비에서본것같은데기억에없다.

6.25사변이발발한지어언65년이흘렀다.그폐허의터전위에서한지도자의’조국근대화’와’민족중흥’을이루기위한염원에힘입어오늘의대한민국이우뚝세워졌다.

공산도배들이일으킨6.25동족상잔의비극을절대로잊어서는안될것이다.

얼치기종북들이여,가슴에손을얹고오늘의대한민국이어떻게이루어졌나를생각해보라.

아,대한민국이여,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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